Clay of Eidos : 추상을 위한 절대 조형... 김지원 <두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촉각적 에이도스>

편집부 / 기사승인 : 2026-09-26 00: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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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옆구리에 튀어나온 창을 뽑아낼 용기가 있는가? 창끝에 매달린 너와나의 관계성을 이해만 한 것인가, 아님 이해를 한 뒤 해석까지 마쳤는가? 속칭 ‘상호관계’라는 통속 드라마에 갇힌 개체는 여전히 돌같이 무거운 생의 의미를 부여잡고 있다.
 


<김지원 작가 노트>

나는 너의 얼굴에서 내가 보고 싶은 그것만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여기에는 공범성이 아니라 타자성이 있다. “내 안에 있는 타자에 대한 관념을 뛰어넘어 타자가 나타나는 방식, 우리는 그것을 얼굴이라고 부른다.” …… /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p.230

플라톤의 에이도스(eidos)란 그리스어 동사 ‘eido’(눈으로 보다)에서 파생된 명사로 외모, 겉모양, 꼴, 형상으로 번역된다. 이렇듯 어원적으로는 빛에 기반한 사물의 형상으로, 시각이 진리와 가까운 감각으로 인식되던 서구 철학계에서는 명백히 인식 가능한 본질이라 할 수 있다.

두 눈을 감으며 가장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감각에 집중해 보았던 적이 있다. 그것은 나를 스쳐간 무수한 타자들의 얼굴이 개별적인 잔상으로 굳어진 형상이라기보다, 나와 타자가 피부를 맞대고 느낄 수 있었던 두 심장의 진동, 겨울의 어느 날 나의 손보다도 더욱 따스했던 누군가의 체온, ‘나는 너를 애정한다’라는 뚜렷한 표현 없이도 감지할 수 있는 비언어적인 것의 미묘함이었다. 어떠한 것이 나의 마음을 강하게 쥐고 흐트러트릴 때 나는 어디에서든 그러한 기억이, 가장 깊은 부분에서부터 시작된 혈류처럼 나의 몸을 따뜻하게 덥혀주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몸의 기억은 완전무결함을 비집고 끊임없이 들이미는 연약함의 얼굴에서 잊으려 노력했던 스스로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게 하였다. 타자의 눈과 손이, 그 이전에 전제되는 그들의 시각이 나의 눈과, 두 입술과, 척추가 되어주며 기존 몸의 구성 체계를 끌어안고, 바꾸어나가고 있던 것이다. 

 


여성의 신체에서 두 입술로 은유되는 가장 깊은 곳이 이미 연약한 감각의 중심을 감싸안아 보호하고 있었듯, 스스로가 타자를 바라보려 하는 시각 또한 그들의 얼굴과 뒤섞여 기원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본능처럼 머무르는 것을 느낀다. 신체에 남아있던 두 몸의 밀착감을 더듬으며, 어둠 속에서 태어났던 형상은 그 좁은 틈새를 점유하고 있던 핏덩이 같은 얼굴들이었다. 슬픔 어린 표면까지 쌍둥이처럼 매만지던 우리의 손끝이, 스스로가 미워 견딜 수 없었던 나의 얼굴을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던 것이다.

누군가의 미약함에서 나의 한계와 그에 대한 사랑을 읽어내고, 나의 얼굴에서 너의 눈이 떠오르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 보이지 않던 곳에서 시작된 에이도스가 구원의 빛이 서린 얼굴로서의 에이도스로 들어서고 있다.

 

· SpaceTone Gallery @spacetone_gallery
· 2026. 9. 11 - 10. 17. 1pm - 6pm (공휴일, 일・월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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