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집, 대전 목운정

건축 / 육상수 기자 / 2019-02-18 20:2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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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들어오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았던 그 작은 큐브가 갑자기 낯설어진 것이다. 가족은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숨 쉬지 않는, 역사도 서사도 없는 집을 탈출하기로 결심하고 언젠가 읽었던 소설 <영혼의 집>을 떠올렸다.

다락에서 본 2층 거실 

 

대문을 낀 북향의 거대하고 하얀 목운정의 파사드는 가히 압도적이다. 양 옆에 일렬로 늘어선 다른 주택들은 한눈에 집의 규모와 구조가 어느 정도 예측이 되는 반면 이 집은 저 하얀 벽 뒤의 실체가 무엇일지 매우 궁금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2층 안방으로 향하는 복도


 

역동적으로 달린 창문들과 택배함 그리고 검정색 철재프레임의 탄화목 대문 덕에 하얀 벽면은 2차원 속에도 리듬감이 살아난다. 이 집의 사람들도 창문의 리듬처럼 단정하면서도 저마다 개성적인 삶의 리듬을 가졌을 거라는 기대를 안게 되는 집이다. 


집에 대한 취향 세우기


2층 거실 천장에는 아이들을 위한 그물 놀이방이 있다.


 

남편 이완술 씨와 부인 임영민 씨는 보운, 예운, 지운, 세 아이가 커버리기 전에 마음껏 뛰어놀 집을 짓기로 결정하고 이런 저런 책과 인터넷을 두루 뒤졌다. 그러다가 찾은 집이 김동희 소장이 설계한 공주의 주향재다. 작은 집이지만 작아 보이지 않고 작은 부분까지 신경 쓴 것처럼 보이는 집이었다. 사는 사람들도 편안해 보였다. 친절한 상담을 해주는 김동희 소장을 직접 만나고 나서 그에게 다섯 식구의 공간을 맡기기로 부부는 합의를 보았다. 시공도 소장이 소개해 준 망치소리에서 진행했다.


복함공간인 1층 거실


 

김동희 소장이 제안한 두 개의 설계 중 하나가 큰 변화 없이 받아들여진 것이 지금의 집이다. 이 집에는 두 가지 반전이 있는데 밖에서만 보면 엄청 커다랄 것 같지만 대문 안에서 보면 너른 마당을 낀 ‘ㄴ’ 모양의 건물이다. 2층에 다락이 있는 구조다. 꽤 높은 다락 덕에 밖에서도 그렇게 커 보인 것이다. 이 주택지구에서 아마 마당은 제일 크고 집은 제일 작을 것이다.


2층 세 딸의 방은 개방형으로 이뤄져 있다.


 

또 다른 반전은 김동희 소장 특유의 노랑과 빨강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노톤 취향의 임영민 씨는 소장이 제안한 몇 가지 색 포인트를 빼 주십사 했다. 그래서 색이 들어간 유리블록도 다섯 개 중 세 개만 남겼다. 그나마 하나를 뺀 나머지 둘은 실내에 있어서 영롱한 빛을 뿜어내지 못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단정한 느낌이 드는 것은 만족하지만 부부 침실 동쪽 창에서 들어오는 아침의 일렁이는 노란 빛을 보고는 ‘소장님 말을 들을 걸 그랬나’ 하기도 했다. “한 십 년 살다가 해달라고 하면 해주실 거 같기도 해요.”


이 집의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간결한 안방

 

3층 다락방은 다용도로 쓰인다.


 

아닌 게 아니라 살면서 변할 곳이 몇 군데 있긴 하다. 지금은 쌍둥이가 아직 어려 함께 방을 쓰기에 열려 있는 공동 공부방에 언젠가 벽이 생기면 각자의 방을 갖게 될 것이고, 부부 침실로 가는 길 책장 앞의 그물도 아이들이 크면 바닥을 채워 책상을 놓을 계획이라고 한다. 임영민 씨는 벌써 아이들 다 키우고 난 뒤의 다음 집을 상상하기도 한다. 집을 짓고 나서야 예쁘게 보이는 벽돌집에 오르내림은 없는 그런 집이 될 것이다.

목운정 곳곳


아이들을 위해 마당을 안쪽으로 배치햇다.


굵직한 목기둥에는 행거를 매달아 수시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나무와 구름이 머무는 집, 이 집은 한국목조건축협회 목구조 건축물 품질인증 제도인 5스타 심사를 통과했다. 한마디로 제대로 지은 목조주택이라는 소리. 2×6구조재에 2인치 단열재를 또 댔다. 에너지효율등급 인증도 신청했는데 결과는 아직이다. 

 

목은정은 3중 구조의 단열로 지은 집이다.



더 두꺼운 구조재로 지은 집에는 살아보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처음 지낸 여름으로 이야기를 해보자면 최고 무더위에 더위야 어쩔 수 없었다 해도 습도에 대해서는 아파트와 비교해서 훨씬 쾌적했다. 에어컨을 틀었다 껐을 때도 시원한 공기가 더 오랫동안 유지되기도 하고 말이다. 겨울은 아직 나지 않았지만 따뜻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관으로 들어와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식탁과 부엌이다. 부엌과 식탁은 집 안 가운데 꽉 들어차는 묵직한 매스감도 있지만 그 위로는 박공 지붕천장까지 뻥 뚫린 구조라 집의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한다. 참나무로 마감한 이곳은 엄마의 입김이 가장 강력한 곳이기도 하다.

아일랜드 싱크대 옆으로는 다섯 식구가 넉넉하게 앉을 수 있는 원목 식탁도 있다. 부엌가구와 다용도실의 수납장과 부부침실의 붙박이장까지 모두 빈스70의 작품이다. 알만한 메이커보다 설계도를 보는 태도도 좋았고 원하는 것도 단번에 캐치해 준 곳이라 만족했다.


주방은 가구회사 빈스70 수제에주문 제작했다.


 

자작합판 벽을 따라 한 층 올라가면 각자 원하는 색으로 꾸민 아이들 방이 있다. 첫 번째 방은 열려 있어 쌍둥이가 쓰는 책상과 책장, 작은 소파가 있다. 작은 아치 너머에는 함께 쓰는 2층 침대가 있다. 언젠가 쌍둥이들이 크면 열려 있는 방은 복도만 남고 각자의 공간이 될 것이다. 5학년인 첫째 보운이 언니의 공간은 벌써 독립되어 있다.

연신 밝은 벽과 나무가 점령한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2층 맨 끝에 자리한 무령왕릉 컨셉의 안방. 부부의 방 앞까지 공용 서재로 꾸며 철저하게 아이들을 위한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부부만을 위한 쉼의 공간은 남겨두었다. 박공지붕 아래 아치 모양으로 천장을 짜고 짙은 녹색 계열의 벽지를 발랐다. 낮은 문 너머 낮은 침대 하나 놓고, 신혼 때 마련했던 식탁 조명을 살려 머리맡에 밝혀 두었다. 아침이면 그 노란 유리블록이 힐링의 시간을 주는 곳이다.

직접 집을 짓고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이 세상 하나뿐인 집이라면 설계의 작은 실수 같은 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가족 구성원이 관리해야 하는 주택이라면 더 그렇다. 비 맞아 뒤틀려 버린 데크도 손 봐야 하고, 언젠가 외벽도 다시 칠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새 집 흰 벽에 뭘 그리기라도 할까봐 걱정하기도 했지만 손 때 묻는 것이 세월과 추억이라고 생각하면 자꾸 생기는 얼룩도 별 일 아니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북쪽 면에 대문을 배치해 대지를 역활용하는 설계를 구사했다.



복합문화공간, 집


1층의 거실과 부엌부터 2층의 방과 책 읽는 그물, 그리고 3층의 다락까지 아이들의 놀이와 탐구 공간이 되지 않는 곳은 없었다. 그만큼 이 집은 아이들을 위해 최적화 된 집이라고 볼 수 있다. 3명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먼저 책가방을 현관 앞 다용도실에 벗어놓고 일단 야외 활동을 한다.

여름 내 주차장 밑에 마련되어 있던 풀장이 빠진 자리에 해먹이 이제 막 자리 했다. 해먹에 앉은 아이들은 선선해진 가을바람을 충분히 쐬다가 좀이 쑤시면 그 옆에 그네도 타고 비눗방울도 맘껏 만들어 날리고 요새 핫한 발목줄넘기도 한다. 운동장이 따로 없다. 그러니까 목운정은 아이를 위해 마당을 택했다는 말이 뻔한 주택의 수식어가 아닌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연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다.

 

아이들이 동식물을 키우면서 생명에 동화되어 가는 과정은 마당 있는 집을 짓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흙을 뿌리고 놀다가 언니 방이 있는 2층에 벌써 흙을 뿌려 놓았으니 말 다 했다. 이 ‘배드민턴 칠 정도의’ 마당이 없었다면 아이들은 넘치는 에너지를 다 분출하지 못했을 것이다. 에너지가 이렇게까지 넘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살았을 지도 모르고 말이다.

마당은 생태학습장도 된다. 이건 막내 지운이가 엄마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에디터로서 모두의 알 권리를 위해 몰래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거미도 잡아와 관찰할 만큼 생물에 관심이 많은 막내는 집을 지으면 마당에는 화살나무를 심자고 했다. 노린재가 살면 그 냄새 때문에 날파리가 근처에 살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다. 

 

학교에서 가져와 키우던 게가 죽었을 때는 쌍둥이가 마당에 잘 묻어주고, 애도했다. 이 모든 놀이와 관찰은 외부와의 연결이 차단된 청정한 아파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저희는 아이들 특성이, 정말 올 수밖에 없어요.”


목운정의 기족들


 

방과 공간이 아닌 새로 지은 집 자체도 아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집 짓고 나서 아이들은 가끔 엄마에게 “엄마, 나는 커서 이런 집 지을 거야. 나는 이런 집이 좋아.” 라고 말해주곤 한다. 엄마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씨앗을 심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씨앗은 영혼의 집 농장이 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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