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 주부들을 대상으로 목공예를 가르친다. 다들 수업은 잘 나오지만 강의기간이 끝나서까지 조각도를 붙잡고 있는 사람을 못 봤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가르쳤던 사람들에게 좀 마음이 기운다. 변변찮지만 그래도 위로가 되는 얘기다. 어쩐지 인간적이라서 그렇다. 한참 신나서 이것저것 깎다가 어느 순간 흥미가 식어버린 충북 괴산군 도정리 아주머니들의 질기지 못한 끈기를, 우리는 부끄럽게도 참 잘 알고 있다. 어느날 문득 서랍이나 창고를 뒤적이다 보면 하다가 말아버린 몇 개의 취미생활이 먼지와 함께 우리를 찾아오기 마련이다.
조금만 찾아봐도 배움의 기회는 많다. 대도시가 됐든 작은 마을이 됐든 이런저런 강좌가 열리지만 어딜 가나 배우는 사람은 많고 가르치는 사람은 적다. 배우는 사람이 곧 떠날 사람이라면, 가르치는 사람은 계속 남아있을 확률이 더 높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시간에 대한 관념이 좀 다르다. 배우는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관심이 지속되는 시간은 유한하지만, 가르치는 사람들은 오랜 기간 관심사를 붙잡고 완성에 이르는 기나 긴 시간을 참고 기다렸기 때문에 이제는 나눌 만한 재산을 얻었다. 인형 만드는 목조각가 한명철이 붙잡고 기다렸던 세월은 40년이다. 서른 즈음 회사 문 앞에 놓여있던 돌을 가져와 망치와 끌로 깎아 얼굴 모양을 만든 것이 발단이다.
10년도 짧다
가장 오래 걸린 인형을 물었더니 20년이라 한다. 그런데 아직 멀었다고 한다. 그는 곧바로 거실에 걸려 있던, 하회탈을 닮은 인형을 하나 꺼내왔다. 흉터처럼 얼굴 왼쪽이 다 갈라져 있다. 애초에 죽은 나무의 뿌리로 만든 인형이라서 그렇다. 죽은 나무라 해도 작품을 목적으로 칼을 쓴다는 것은 그가 생각하기에 나무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다. 그 상처를 가라앉히려면 평생도 모자란다고 보는 그는 콩기름을 바르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옷으로 닦는다. TV를 볼 때도 끊임없이 수건으로 매만진다. 그렇게 20년을 만졌더니 매일 걸레질한 덕분에 노상 반질반질한 시골집의 마루처럼 매끈해졌다.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면 앞으로도 수시로 사랑을 줘야 한다. 애초에 말할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난 인형에게 그는 그렇게 대화를 청한다. 부지런히 숨을 불어넣는 한 그가 만드는 인형은 무생물일 수가 없다.
일찍 완성하고 지속적으로 관리를 받는 스무 살짜리 인형도 있지만, 어떤 인형은 10년의 기다림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육체를 갖추었으나 팔로 혹은 다리로 쓸 만한 재료를 10년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기다림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미완의 인형을 잔뜩 쌓아놓는 동안, 역발상으로 부족한 재료가 신선한 아이디어를 안기기도 한다. ‘천사 후보생’은 날개가 한 쪽뿐이다. 해운대 해수욕장을 걷던 중, 오랜 세월에 걸쳐 풍화된 끝에 조개처럼 얇아진 분홍빛 항아리 파편 하나를 발견하면서 시작된 작업이다. 아직 완전한 천사가 되지 못한 이 후보생은 발뒤꿈치를 들고 양팔까지 써가면서 균형잡기 연습 중이다. 한 쪽밖에 없는 초라한 날개로 날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작가가 항아리 조각을 두 개 발견했다면 영원히 만나지 못했을 천사다.
‘천사 후보생’의 가여운 날개는 그가 언제나 땅을 바라보면서 걷는 사람이라고 일러준다. 그리고 그는 목표로 삼은 인형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꺾지 않는 사람이다. 몇 분만 산책하다 보면 길에서 무수히 많은 작품의 재료들을 만날 수 있으니 굳이 나무를 해칠 필요가 없다. 꺾여 떨어진 나뭇가지와 떨어져 딱딱하게 말라버린 열매는 그가 가장 즐기는 아이템이다. 버려진지 오래된 친구들일수록 더 좋다. 이미 잘 건조되어 있어 다루기 더 편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1년은 더 두고 쓴다. 곁에 두고 오래 보고 있으면 언젠가는 영감이 찾아오고, 그러다 새로운 재료를 만나 결합하면 가속이 붙으며, 그렇게 시간을 길게 두고 기다리는 동안 인형은 성격과 이야기를 지닌 확실한 캐릭터가 된다. 그가 만드는 거의 모든 인형에는 ‘천사 후보생’ 이상으로 풍성한 스토리가 있다.
모든 인형에는 사연이 있다
사연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현실의 인간이 곧 인형이 되기도 한다. ‘진숙이’ 혹은 ‘눌린 여자’로 불리는 작품은 흔하게 볼 수 있는 노란색 커피캔이 몸통이다. 어린 날부터 지켜봐왔던 친구 진숙이의 팔자가 그렇다. 선생님을 아버지로 둔 진숙이는 번듯한 집안에서 나고 자랐으니 더 나은 혼처를 찾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러지 못했다. 혼기를 놓친 후 후처로 들어갔다가 아이를 낳지 못해 늘 기죽어 살아온 게 진숙이의 인생이다. 밥 한 끼 정도는 바깥에서 해결할 수도 있을 텐데, 아내를 만만하게 보는 남편은 매일 세 끼를 다 차려달라고 안달이다. 발에 밟혀 찌그러진 캔을 보고 그는 평생을 남편한테 눌려 살아 왔던 진숙이를 떠올렸다. 그리고 인형 진숙이 발 밑에 작은 인형을 달아놨다. 밥 달라는 남편이다. 현실과 다르게 언제든지 진숙이가 차버릴 수 있을 만큼 볼품없는 남자다.
때로는 역사 속의 인물이 인형이 된다. ‘자산거무’는 정약전 생가를 다녀온 뒤 만든 작품이다. 배경은 피비린내 진동하는 200여 년 전의 신유박해(1801)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왕조의 천주교 탄압으로 흑산도에 유배된 정약전은 연고 없는 지역에서 서당 훈장으로 겨우 자리를 잡게 되는데, 영영 섬을 벗어나지 못하고 거기서 생을 마감하게 되지만 거기서 보낸 16년의 세월이 그렇게 끔찍하진 않았을 것이다. 마을의 훈장을 뒷바라지한 여인 덕분이다. 거무라는 이름의 젊은 첩으로, 섬에서 태어났기에 물질에 능해 고기가 필요할 때면 그녀는 언제든 바다로 뛰어들 줄 알았다. 인형의 까무잡잡한 얼굴은 정약전 이상으로 매력적인 캐릭터 거무에게 감정이입해 그녀를 오래 생각하고 상상한 결과다. 물질하느라 하루가 늘 고달팠을 섬 소녀의 얼굴이 하얗고 맑을 리가 없다.
진숙이는 어린 날부터 지켜봐왔던 친구지만 작품의 소재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가까이에 있어서 잘 몰랐다가 어느 순간 의미를 재발견한 것이다. 한편 작가 한명철은 30만원의 월급을 받던 시절 10만원을 주고 정조대왕의 친필을 샀을 만큼 고문서와 골동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이는 역사에 대한 그의 깊이를 말해준다. 지식이 많다 해도 역사 속의 인물을 모티브 삼아 인형을 만들기까지는 진숙이의 재발견에 준하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익히 알고 보는 것과 거기에 의미와 생명을 부여하는 것은 좀 다르다. 그가 기다리는 것은 재료만이 아니다. 슬픔과 흥미로움을 두루 갖춘, 주어진 재료와 미래의 재료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도 함께 기다린다. 그의 작업은 점점 더 늦어지고 있다.
40년간 놓지 않은 칼
이제는 인형 하나하나에 정교한 이야기를 설계하면서 여유롭게 작업하지만, 젊은 날에는 1년을 돌아보면 서른 개의 인형이 쌓여 있었다. 이야기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더 빨리 더 많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30여 년간 축협과 농협 등 지역 금융권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고 더 큰 예금액을 유지해야 한다는 지점의 압박에 늘 시달렸다. 집에 오면 아무도 성과를 재촉하지 않는 딴 세상이 펼쳐졌다. 그저 순수하게 만드는 즐거움에 취해서 끊임없이 자르고 붙여가며 지금의 다락방에 박스로 보관되어 있는 무수한 인형을 만들었다. 그런 손재주는 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할아버지는 대장간의 대장장이였고, 평생 마차를 만드느라 손바닥이 발바닥 같았다는 그의 아버지는 농부였던 그 시절의 동네 가장들과 다르게 기술로 여덟 명의 자식을 고등학교까지 다 보냈다.
기술은 기술로 대물림됐다. 그의 동생은 보일러 전문가로 기술력을 인정받아 대기업의 상무로 은퇴했다. 한편 기술 유전자는 대를 이어가면서 예술 언저리로 방향을 틀기도 했다. 여동생은 미대 출신이다. 또 다른 남동생은 가구를 다룬다. 작가는 어린 날부터 형제들과 함께 그림을 즐겼고, 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한 뒤에는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집으로 가져오는 대신 인형을 만드는 것으로 잊었다. 시간이 흘러 직장에서 어느 정도 지위를 얻었을 때, 그는 은행 2층의 빈 방에 동네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아 벽에 걸었고 동네의 주부들을 모집해 인형 만들기 강좌를 시작했다.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는데 수강생들은 그가 일하던 은행에 계좌를 열었고 통장에 거액을 넣어두었다. 결국 인형은 은퇴 직전까지 그의 직장생활을 다독이고 해결해준 벗이다.
은퇴한 기성세대 대부분이 단체로 관광버스를 타고 지역의 명소만을 순회할 때, 칠순을 바라보는 그는 책과 인터넷 정보를 바탕으로 도시의 골목을 누비기 위해 홀로 비행기를 탄다. 낯선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느라 처음엔 두렵고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한 달간 유럽에 머무르면서 300만원을 썼다. 배낭을 멘 가난한 청춘들과 예산절감 노하우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숙련된 여행자로 발전한 것이다. 그리고 여행은 작품을 남긴다. 그에게 여행은 시야를 넓히는 이색적인 경험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여행지에서도 그는 땅을 보면서 걷고, 작품의 질료가 될 만한 재료들을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조금씩 가져온다.
하인처럼 일하라
집을 떠난 두 아들과 같이 사는 동안, 그는 하기 싫은 일은 하지 말라고,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라면 정성을 다하라고 강조해왔다. 그게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이라고 그는 믿는다. 그래서 그는 40년간 칼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누리는 여행이 아닌 부딪히는 여행을 즐긴다. 집안일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5대째 살고 있는 터에 10여 년 전 집을 새로 올렸고 정원을 조성했는데, 그래서 할 일이 너무 많다. 정원의 울타리 기능을 하는 주목도 지금의 모양을 유지하려면 계속 깎아줘야 한다. 심어놓은 잔디와 이끼, 마당에 심어 놓은 25종의 나무들 또한 끊임없는 관리가 필요하다.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집안일도 만만치 않고, 상추와 고추가 자라는 텃밭에 물도 줘야 한다. 하루도 짧을 것 같은 가사노동이 매일 그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지친 기색이 없다. 식구들과 함께 살던 시절 그는 누군가 쓸고 닦은 걸 보면 성에 차지 않아 청소 도구를 다시 꺼내곤 했다. 그는 재봉틀도 다룬다. 건강을 위해 직접 요거트를 만들어 먹는다. 오디 같은 열매를 따다가 음료수도 만드는 여유까지 있다. 깔끔한 성격에 재주가 많고 손까지 빠른 그는 그리고 농촌생활을 막연하게 꿈꾸는 도시인이 귀담아 들을 만한 조언을 준다. 돈이나 기술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시골에 제대로 적응하려면 그냥 하인처럼 일해야 한다. 삶의 진짜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거꾸로 머슴의 노동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그의 곁에 있으면 자연히 일을 찾게 된다. 함께 밥상을 준비하면서 상추를 따고 알아서 설거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은행에서 근무하던 지난 30년도 그랬고, 아내와 사별하고 두 자식 모두 출가해 모든 집안일을 스스로 해결하는 지금도 그렇다. 그는 여전히 하인처럼 일한다. 묵묵히 일하는 동안 인형이라는 낭만이 삶 속에 스며들었다. 좋아하는 만큼 정성을 들였고, 긴 시간에 걸쳐 소재와 재료를 기다린 끝에 사랑 받을 자격이 충분한 인형을 느긋하게 만들고 있다. 인형의 뼈대를 만들며 숱한 나무를 만지면서 동안 세상의 이치를 보기도 한다. “사과나무랑 배나무가 참 좋아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만큼 가지와 기둥이 튼튼할 수밖에 없어요. 반면 목련은 좀 약해요. 꽃만 피우는 나무이기 때문이죠.” 세상만사는 일한 만큼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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