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있는 소박함을 공간 추구
아이들 공간 위한 설계 노하우
‘구조 우선’적 시공방식
잉글랜드의 웨스트 미들랜즈 주에 있는 울버햄프턴의 부시베리 힐 초등학교는 화사하고 고요한 공간이다. 목재와 흰색 마감의 조화로움은 학업과 놀이에 적합한 고요한 배경이 되어준다. 이 건물을 지은 Architype는 환경친화적 건물(목재를 적극 활용함은 물론이고)을 잘 짓는 것으로 유명한 회사인 만큼, 이 학교는 매우 수준 높은 환경적 공간을 가지고 있다.
이 건물이 영국에서 ‘패시브하우스’의 기준에 맞춰 지어진 최초의 학교인지는 확실치 않다. 패시브하우스는 스웨덴의 보 애덤슨 교수와 독일의 볼프강 파이스트가 1990년대 초반에 만든 매우 엄격한 지속가능성 건축 기준으로서, 기밀성과 단열효과를 극대화한 ‘구조 우선’적 시공 방식을 택하고, 가능하면 기계 환기 시스템도 도입하는 것이다.
패시브하우스의 기능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패시브하우스는 오직 신선한 외부 공기에 의한 후열 혹은 후냉만으로 건물 보온효과를 얻고 실내 공기질도 최적화시키며 그 외의 추가적인 공기 재순환을 요하지 않는 건물이다.’
패시브하우스의 진정한 의미
Architype의 조나단 하인즈 감독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패시브하우스의 핵심은 남용되고 있는 탄소 절감 목표치보다 더 구체적인 에너지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초한다는 점이다. 연간 평방미터당 구체적인 에너지 목표에 따라, 계산되지 않은 에너지까지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대개의 경우 소프트웨어 모델링 단계에서는 낙관적이게 마련인데, 패시브하우스의 경우에는 추정치에서부터 매우 비관적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패시브하우스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요소가 들어맞아야 한다. 열이 발생하는 현상을 모두 제거하고, 단열을 충분히 하고, 건물의 기밀성도 빈틈없어야 한다. 하인즈는 “복잡한 건 아니다. 하지만 매우 치밀한 추정치에 기반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평균적인 비용을 들여 패시브하우스를 성취하고 싶다면 품격 있는 소박함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복잡한 건물로는 엄두도 못 낼 테니.”
소박한 친환경 건축
부시베리 힐 학교 건물에서 실현시킨 것이 바로 이 품격 있는 소박함이다. 학교는 개방적인 분위기여야 하되,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등교하므로 학생들 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후미진 구석이 없어야 하며 복도가 너무 요란해서도 안 되었다. 패시브하우스가 융통성이 없거나 정형화되어 있다는 논란을 사전에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학교 설계 과정에서부터 학부모 및 교사들과의 논의를 거쳤다. 학교에 대한 그들의 희망 사항 및 예전 건물에서 발견되었던 문제점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요구를 참작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예전 건물이 복도가 너무 길어 보였던 것과는 달리, 새로운 건물에는 복도가 없다. 그 대신 천장을 높이 터서 일광이 잘 들게 하고 보온과 통풍 시스템에도 적합하도록 공간을 배열했다. 건물을 2층으로 지은 것은 외벽의 구역을 최소화하여 단열 효과를 높이기 위한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건축가는 내외부 벽, 통로 바닥과 지붕에 조립식 목재 패널을 사용했다. 글루램 기둥을 써서 내부 공간을 널찍하게 만들었고 목재 삼중창을 달았다. 바깥에는 처리하지 않은 영국산 소나무로 만든 목재 외장에 벽돌을 혼합했다. 이는 건축주 측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예전 건물 외장이 벽돌이었기에 지속으로 그 느낌이 이어지길 원했기 때문이다.
벽돌은 이 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다양한 색깔을 무작위로 사용해 건물 정면에 생동감을 부여했다. 또한 각각의 벽돌은 한 면만이 부드러웠는데, 건축가는 벽돌의 거친 면을 일부러 밖으로 노출시킴으로써 구조적인 효과를 보탰다. 그 결과 일반적인 벽돌 정면의 지루하고 식상한 느낌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아이들 공간 위한 설계 노하우
내부 설계도 같은 맥락으로 진행했다. 하인즈는 “전반적으로 천연 목재 위주의 재료를 썼다.”라고 말했다. 교실의 천장에는 방음 단열재를 감춘 목재 판재를 쓰거나, 아니면 소리 흡수 기능이 있는 나무 소재의 흡음판을 썼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수업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설계에 주안점을 둔 것이다.
발코니는 학생들이 타고 넘어갈 우려가 있었다. 이에 건축가는 철망에 막힌 구속감을 주기보다는 다양한 높이와 두께를 지닌 합판을 지느러미 모양으로 잘라서 이용하기로 했다. 이는 평판을 겹쳐 만드는 것으로, 명랑한 분위기의 무작위적 효과를 얻기 위해서다. 아울러 억압하는 느낌을 배제해 심미안적 느낌도 전하고 용도도 충실하게끔 한 것이다.
계단은 오크 목으로 만들었고, 난간에는 너도 밤나무를, 그리고 차양 지붕과 난간과 문틀에는 합판을 썼다. 이러한 재료들은 흰색 벽과 대조를 이루는데, 밝은 색깔들을 칠해 시각적으로 어지럽히는 것보다는 아이들과 아이들의 미술작품들이 내부 공간에 생동감을 주게 하자는 건축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흰 벽은 판재를 댄 것인데, 일반적인 석고보드보다 무거워 건물에 열량을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콘크리트 구조물만큼은 갖지 못하지만, 하인즈는 이것이 오히려 장점이라고 여겼다. 따뜻한 날씨가 지속되는 계절에는 열의 질량이 너무 많은 건물은 오히려 과열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건물의 각 부분은 최소한의 태양열로 최대한의 일광 효과를 얻을 수 있게끔 설계했고, 북향의 교실들도 환한 아트리움으로부터 일광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건물의 창문은 밤에 빛이 사라질 것을 감안하여 빛을 안정적으로 머금게끔 만들었는데, 이는 보온 전략에 있어 필수적인 부분이다. 겨울에는 창문을 닫아두고, 열회수가 되는 기계 환기에 의해 신선한 공기가 계속 흐르도록 한다. 교실에는 문을 열어놓을 때라든가 그 밖의 경우에 예비용으로 쓸 수 있도록 개인용 라디에이터를 두었다. 이 경우 열의 질량이 다소 낮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공간이 금세 따뜻해지는 것이다.
기계 환기 시스템의 장점 중 하나는 신선한 공기가 항상 충분히 공급되면서도 이산화탄소 지수는 낮게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전 건물에서 근무했던 교사들은 그 차이점을 바로 알아챘다. 오후 수업 시간에 조는 학생들이 확연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환경 건물의 모델
하인즈의 말에 의하면 패시브하우스 건물은 몸소 겪어보기 전까지는 그 진가를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고 한다. 아직 완공도 하기 전에, 게다가 난방을 전혀 하지 않았을 때조차도, 바깥 기온이 섭씨 4도밖에 안 되었을 때 건물 내부 기온은 17도나 되었다고 한다. 가정용 규모의 가스보일러만으로도 충분히 난방이 된다.
시공을 잘 했을 뿐만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더워지는 현상을 피하면서 단열효과가 높은 건물이 되었다. 재활용 신문인쇄용지를 단열재로 쓴 것은 될 수 있으면 자연 재료를 쓰겠다는 약속의 일부이기도 하며, 이는 탄소 배출을 제한하여 어린이들을 비롯한 건물 이용자들을 유독 화학 가스 유출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교실의 바닥도 고무와 리놀륨으로 깔았고 카펫도 재활용하며 입구의 매트도 재활용 타이어로 만들었다.
이 학교는 환경 성능 기준을 성취한 모범적인 건물이다. 환경 성능을 이론적으로만 성취한 건물은 흔하지만 막상 시공되고 나면 실망을 안겨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부시베리 힐 초등학교야말로 모두를 만족시킨 성공사례라 할 수 있다.
사진 Paul Smoo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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