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양반의 집은 안채와 바깥채를 담으로 구분하는 것이 관례였다. 유교적 질서에 의해 남녀의 역할은 엄격하게 구분되었으며, 사랑방은 안방의 일을, 안방은 사랑방에서 일어나는 일에 간여하지 않는 법도가 형성됐다. 선비가 사랑방에서 학문을 닦고 풍류를 즐기는 공간이었다면 안방은 한 집안의 모든 살림을 관장하는 중심이면서 제사와 같은 대소사를 계획하고 치러내는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하는 중추였다. 가정교육을 담당했던 것도 안방의 일이어서 그 집안의 가풍을 만드는 것도 안방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이처럼 조선 양반가의 안방은 유교적 질서 아래서 폐쇄적인 공간으로 규정되었지만 독자적인 역할과 기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조선의 여인들은 안방을 중심으로 독특한 안방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이런 안방문화의 중심에 있던 것이 안방가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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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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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장 |
안방가구의 배치
보료가 깔린 침상 맞은 편 벽에는 식구들의 사계절 옷을 보관하고 침구를 수장하거나 정리하는데 필요한 장과 농, 반닫이 규모가 큰 가구가 배치되었고, 보료와 가까운 곳에는 문갑이나 귀중품을 주로 보관하는 머릿장을 두고 그 위에 몸단장을 위한 빗접이나 좌경을 올려 두었다. 보료 앞에는 서안을 두거나 바느질에 필요한 생활용구인 반짇고리, 함 등이 놓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안방은 살림의 중추부인 만큼 보관할 물건들이 많았고, 다양한 가구들이 필요한 공간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랑방보다 안방을 넓게 구성하는 것도 안방 공간의 기능에 따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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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층농 807×390×1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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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층농 835×417×1375 |
안방가구의 특징
조선시대의 안채, 혹은 규방은 폐쇄적인 공간이었다. 집안 식구를 제외한 남자의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여자들의 바깥출입도 자유롭지 못했다. 따라서 조선의 여인들의 생활은 규방에서 이뤄졌다. 안방은 또한 문화생활을 즐기던 문화공간이기도 했다. 이러한 안방의 공간적인 특징은 안방가구에서도 드러난다. 안방에 놓인 가구들은 기본적으로 실용성을 중심으로 제작되었지만, 여자들의 미적인 안목과 취향이 가미되면서 사랑방가구에 비해 화사한 문양과 장식이 가미되었다. 안방가구에 주로 사용된 문양은 집안의 안녕과 장수,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길상문이 주를 이루었다. 안방가구에 새겨진 삼강오륜도 등의 장식을 통해서는 안방이 훈육과 가정교육의 산실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안방가구의 중심,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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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재 윤두서의 아들인 윤덕희가 그린 풍속화로 조선 시대 여인의 일상을 유추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조선의 여인들에게 독서는 중요한 일상이었는데 규중요람 내훈 삼강행실 등을 읽으며 유교적 질서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현모양처의 길을 걸었다.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사진출처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 |
장은 안방가구의 중심을 이룬다. 계절별 의복, 솜이불, 각종 천 등을 보관하는 용도로 주로 쓰였다. 농과 외양이 비슷하지만 구조상 차이가 있는데 농은 각각의 장을 포개어 2층으로 구성되었으나 장은 기둥이 하나로 구성되어 있어 분리되지 않는 것이 차이가 있다. 장은 규모가 큰 가구를 통째로 짜면서 많은 힘을 유지하기 위해 골주가 농에 비해 굵고 측널 또한 농에 쓰이는 것이 비해 두꺼운 나무를 사용했다. 장은 월자(月)형을 기본 구조로 하고 있으며 전면은 자연스러운 나뭇결 고유의 미를 살려 좌우 대칭으로 구성했다. 장은 형태에 따라 단층장, 이층장, 삼층장, 반닫이장 등으로 분류되며, 용도에 따라 이불장, 실장, 의걸이장 등으로 나뉜다. 재료에 따라서도 화류장, 화각장, 화초장, 주칠장 등으로 구분한다.
사진제공 북촌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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