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종묘에는 있고 종로타워에는 없는 것

전시&책 / 김수정 기자 / 2019-01-12 22: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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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미학 | 승효상 지음 | 느린걸음 펴냄

 

2011년 겨울에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종교도 없고 종교가 있다 한들 러시아 정교일 리도 없던 나는, 순전히 관광의 목적으로 시내의 성당들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 성당 투어의 첫 번째 주자로 낙점된 성당은 지나가다 눈에 띈, 관광 책자에도 나오지 않는 자그마한 동네 성당이었다.

 


묵직한 철제문을 열고 들어서자 층고가 높은 돔 형태의 공간이 드러났고, 내부는 연기인지 햇빛을 받은 먼지인지 구분되지 않는 희뿌연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군데군데 칠이 벗어진 프레스코화와 작은 십자가, 기도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알 수 없는 기운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허무하고 또 간절해져서, 옆에 있는 누구라도 붙잡고 기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건축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때였지만 그 이후로 공간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이 자못 심대하다는 것, 좋은 공간이 좋은 사람을 만든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던 것 같다.

 

7년이 지나 건축가 승효상의 ‘빈자의 미학’을 읽으면서, 과거 그 공간을 가득 채우며 나를 압도한 기운의 정체가 ‘건축가의 시대성’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승효상은 시대성을 “건축가가 지닌 일종의 항상성으로, 시대를 관조한 작의가 투영된 건축의 사상적 배경”이라고 정의한다. 그 문제의식의 농도가 짙을수록 건축은 더욱 의미 있고 생명력 있는 존재가 되는데, 소설에 비유하자면 구성과 문체 위에 있는 ‘주제’ 같은 것이다. 내 식으로 경솔하게 표현하자면 ‘소울(soul)’이다. 종묘에는 있고 종로타워에는 없는 그것이다.

승효상이 건축에 있어 시대성을 강조한 이유는, 그것이 없으면 건축은 시대의 수동적 반영에 그치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아돌프 로스(Adolf Loos)가 “장식은 범죄”임을 선언하며 지어 올린 단순한 건축물이 당대 아르누보의 자장 아래 화려한 장식으로 뒤덮여 있던 빈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왔던 것처럼, 건축은 시대의 반영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함은 물론 미래에의 비전을 제시해야 할 직능적 의무”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 지점에서 건축가는 기능인에서 지식인으로 나아가게 된다.

 

 한국의 현실로 돌아오면, 조금 착잡한 기분이 든다. 몇몇 건축가의 개인적 고투와 무관하게, 한국의 건축 문화는 자본주의라는 강력한 자장 속에서 아파트로 수렴하며 지리멸렬해지고 말았다. 지극히 축소된 시대성의 진공은 부동산이라는 경제적 가치가 채운 지 오래다. 좋은 입지의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는 나를 포함한 대다수 국민의 현실적인 꿈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좋은 삶’에 대한 모색을 멈추지 않아야 하듯 ‘좋은 건축’에 대한 질문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승효상은 이 선언문을 써내고 23년째 그만의 건축으로 그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자료제공 느린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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