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영의 <보자기 공예>, 공예의 실존적 가능성을 짐작하다

육상수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1-12-21 21:4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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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 모더니즘, 보자기
생활 속의 미니멀 예술 구현
졸박한 삶을 표현

 

구석기시대의 조상인 호모 파베르, 즉 도구를 만들 수 있는 인류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도구를 발명했다. 하지만 농사를 통해 정착생활이 가능해지면서 도구는 타제에서 마제로, 기능에서 놀이의 도구로 진화되었다. 그 놀이는 다시 의식을 수용하는 예술 활동으로 이어졌다. 노동과 도구의 경직된 관계성은 점차 놀이와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공예의 현재

이름은 그것만의 고유한 세계관을 지닌다. 상형문자는 천체・자연현상・동식물・신・인간・주거・가구 등의 정체성과 문화성, 역사성을 내포한다. 겨우 100여 년에 이른 ‘공예’라는 이름은 여전히 그 의미가 바르게 안착되지 못하고 있다. 기능에서 점점 멀어지는 현대공예는 장인의 예술인지, 예술의 도구인지 그 정체성 또한 모호하다.

디지털경제에서 디자인 산업의 패러다임, 첨단의 기술, AI, 메타버스로 이어지는, 가히 혁명적 변화시대에 공예는 어떤 양식과 지시어를 제시해야 하는 것인가? 경매장에서 24억에 낙찰된 조선 백자와 시장의 만 원짜리 도자 잔 사이에 오늘의 공예가 있다. 현대공예는 확장하는 데에 비례해서 공예가라는 이름은 줄어들고 있다.

도끼, 톱, 홍두깨, 됫박, 고무신, 초롱불, 바가지, 물레, 짚신, 베틀 등은 향토유물관이나 기억에 박제 된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예는 전통과 근대를 거치면서 현재를 숨 쉬고 있다. 하지만 오늘의 공예가 ‘내일의 공예’로 이어질지는 오롯이 공예가의 어깨에 달려 있다.

개인기에 의지하는 공예는 디자인 산업처럼 만인을 위한 장르가 될 수 없고 또 시대와 체제, 종교, 철학을 마주하는 미술일 필요도 없다. 단지 결과물에 이르는 수행 과정을 통해 공예가 스스로 충만의 기쁨과 배려의 안위를 느낄 수만 있다면, 이는 그 어느 장르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공예, 공예가만의 세계가 될 수 있다.  

 

 



모더니즘 아트, 보자기


피에트 몬드리안, 파울 클레, 벤 니콜슨 등 근대 추상주의 대표 미술가들의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기호성, 큐비즘, 신조형주의는 이미 조선 여인의 생활사에서 등장하는 ‘보자기’의 아류임을 주장한다면 국수주의 편견으로 치부될 것인가. 삶의 편의와 예를 갖추고자 천의 기능성을 극대화한 보자기는 미니멀 아트와 모더니즘, 초현실주의를 관통하면서도 졸박한 미의식으로 마감한 한국의 여인들이 상상력과 구상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전통 보자기를 현대화하고 있는 공예가 장윤영의 보자기 작품은 여전히 경계의 장르에 머물고 있는 섬유예술의 시각에서 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전통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고자 디지털 프린팅 기법으로 실사에 가까운 섬세한 표현과 다양한 기법들을 작가는 현재 ‘보자기 사계’라는 브랜드로 활동하고 있는 신예 공예가이다.

장윤영은 패션을 전공한 디자이너로 이미 패브릭 아트와 실용성을 충분히 경험한 작업자이지만, 획일적 상업성에서 탈피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뒤늦게 이 세계에 뛰어 든 준비된 섬유공예가이기도 하다. 그는 대중들에게 보자기 문화의 아름다움과 값진 쓰임에 있어 영향력을 가진 공예가이고 싶은 포부를 갖고 있다. 전통 모티프에 자연의 문양을 현대화하면서도 절제와 간결함을 유지해, 보자기 미학을 현대 공예의 대표적 상징물로 대체하는 중이다.

작가는 전 직장에서 체계화된 조직이 아닌 혼자 모든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데에 다소의 어려움이 있지만, 과대포장 혹은 고급포장으로 여기는 대중의 인식을 일소하고 보자기 문화에 대한 실용적 가치와 회화적 예술성을 보편화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려는 의지로 충만하다. 보자기 공예를 안착시키기 위해 기존의 한계를 넘어 실험적 시도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새로운 소재를 접목하고 다양한 프린트를 구사해 ‘보자기 사계’만의 독창적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오브제 아트, 장윤영의 ‘보자기 사계’

 

의식적인 미의 개념을 초월해 삶의 근원에서 시작된 보자기는 생활 미학의 대표적 공예다.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면서 급격한 서양식 문명화는 보자기의 쓰임을 도태시키면서 일상에서 멀어져 갔다. 하지만 기하학적 패튼, 색채의 조화, 직선 조형, 실용과 장식, 의례와 신앙 등을 실용의 세계에 용해한 보자기는 생활에서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범용성 공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대공예는 미술과 공예 그리고 디자인의 탈경계 지점에 위치하면서 기능성과 심미성을 떠나 독자적 표현의 산물로서 존재한다. 재현이 아니라 표현이며, 이미지가 아니라 사물임을 재인식해야 한다. 전통과 예술, 개인과 자연의 조화를 통해 공예만의 오브제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윤영의 보자기 오브제 또한 무한한 확장성을 열어 두고 있다. 작가 스스로도 시간과 노력을 뿌리로 숙련된 장인이 되기까지 긴 세월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공예는 수행의 결과를 사물로 낳는 장르이다. 그 과정에는 작가의 몸부림과 담담한 태도가 뒤따른다. 공기(空器)는 속이 비어 있는 그릇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도구의 형식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의 세계관이다. 그 사물을 만드는 이는 그 이치에 순응해서 자연의 순리에 따라야 한다. 보자기 또한 그 무한성의 가치에 어느 누가 먼저 접점하는가에 있다. 그 세계는 오랜 전에 열려 있었으니, 장윤영의 ‘보자기 사계’가 그 시류에 먼저 오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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