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역사를 찾는 공간

칼럼 / 편집부 / 2021-08-24 21: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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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타카마 사막의 위성 사진. 왼쪽 구름에 덮인 검은 데가 태평양

 

칠레의 다큐멘타리 영화 감독인 파트리시오 구스만(Patricio Guzmán)은 우리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진 감독은 아니다. 그러나 구스만 감독은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기록한 <칠레 전투(La Batalla De Chile)> 3부작(1부 <부르주아지의 봉기> 1974년, 2부 <쿠데타> 1976년, 3부 <민중의 힘> 1979년)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다큐멘타리 감독이다.

그가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처음 소개된 것도 <칠레 전투>가 1998년 제3회 서울 인권 영화제에 소개되면서였다. 그리고 작년 전주 국제영화제에 2010년 작품인 <빛을 향한 그리움(Nostalgie De La Lumiere)>이 소개되었다. 이 영화는 거의 칠레의 북부,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곳인 아타카마 사막에서 촬영되었는데, 그 아득한 사막을 둘러보기에 앞서, 칠레의 역사에서 이 영화와 관계된 부분을 간단하게나마 집어보자.

 

▲ 구스만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

 

1818년 스페인의 지배에서 독립을 했을 때의 칠레 영토는 지금처럼 남북으로 길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중엽부터 지금 칠레의 중.남부에 거주하던 원주민인 마푸체 족의 땅을 점령했다. 이 영화에서 고고학자 라우타로 누녜즈는 이렇게 말한다. “19세기는 그야말로 비밀에 덮여 있어요. 인디오를 몰아낸 걸 인정하지 않아요.(……)역사에 빚이라도 진 듯 근세사를 살피지 않아요.”

물론 칠레는 역사에 큰 빚을 졌고 그 빚은 청산되지 않아서, 소수 민족으로 전락한 마푸체 족은 지금도 칠레 정부와 싸우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지난 세기의 학살은 차치하더라도, 지금의 칠레 정부가 마푸체 족을 고문.살해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피노체트가 반대파에게 한 것처럼. 구스만은 피노체트와 관련된 영화들을 꾸준히 만들었는데(<칠레, 끈질긴 기억(Chile, La Memoria Obstinada)> 1997년, <피노체트 재판(Le Cas Pinochet)> 2001년, <살바도르 아옌데 (Salvador Allende)> 2004년 등), 그가 마푸체 족에 대한 영화도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내 희망사항이다.

 

▲ 천문대 아래 바위의 암각화.


그리고 이 영화의 배경인 아타카마 사막, 특히 초석(硝石) 광산 지역은 칠레가 볼리비아와 페루 연합군을 상대로 한 태평양 전쟁(1879∼1883)에서 이겨 빼앗은 것이다(이 전쟁의 결과로 볼리비아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 되었다). 이 전쟁은, 애당초 볼리비아 땅에 있던 초석 광산의 대부분은 칠레 사람들이 개발.소유한 것이었는데, 세금을 받지 않기로 했던 볼리비아 정부가 초석에 수출세 부과하자 칠레 사람들은 세금 납부를 거부했고, 이에 볼리비아 정부가 초석 광산을 접수하고 칠레 사람들을 추방해서 벌어진 전쟁이었다.

미국이 피노체트를 부추겨 쿠데타를 일으킨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옌데가 국유화한 칠레 구리 광산의 지분을 미국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생각하면, 이 또한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것이 역사의 되풀이일까? 이렇게 빼앗은 아타카마 사막은 지금도 칠레 경제를 받치고 있는 가장 큰 기둥이다. 그 뒤로,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보다는 적었지만, 쿠데타나 선거로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다.


 

1970년의 선거에서는, 공산당의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었던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후보에서 물러남으로써 인민연합의 단일 후보가 된 사회당의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이 되었다(지난 해 서울 시장 선거와 비슷하다). 이것은 냉전 시기에 서구에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 선 유일한 경우로, 아옌데 정부는 복지 확대와 토지 개혁, 대기업 국유화 등 사회주의 정책을 펴 나간다.

 

그러나 아옌데의 경제 정책은 실패 하는데, 칠레의 주 수입원인 구리(아타카마 사막의 구리 매장량은 세계 1위로, 초석 이후 칠레의 가장 큰 수출 품목이었다)의 국제 가격이 미국의 농간으로 폭락한 것과 기득권자들이 사재기 하는 바람에 시중에서 생필품 품귀 현상이 벌어진 것, 그리고 ‘자본가들이 선동(!)’한 파업 등이 큰 원인이었다(<부르주아지의 봉기>는 이 시기를 기록한 필름이다).

 

▲ 원주민 유적지


이런 혼란을 틈타 미국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는 1973년 9월 11일에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 궁까지 폭격 한다. 아옌데는 쿠데타군과 싸우다 자살했다고 알려졌는데, 타살 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정권을 탈취한 피노체트는 군부 독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기 시작했다(그는 1991년에 물러난다). 당시에 구스만은 국립 영화사인 칠레 필름에 있었는데, 동료들과 함께 촬영한 필름을 가지고 쿠바로 망명해서 <칠레 전투>를 만든다.

조금 장황하게 칠레의 역사에 대해서 늘어 놓은 것은, <빛을 향한 그리움>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바로 역사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기도하다.


▲ 초석 광산의 광부들

 

▲ 수용소로 사용된 차카부코의 광부 숙소

 

▲ 광부들의 무덤

 

<빛을 향한 그리움>은 구스만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시작된다. 산티아고에서 천체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했으며 과학 소설을 좋아했다는. 구스만은 과장되게 “당시의 칠레는 세상과 격리된 평화로운 안식처였다”고까지 한다. 1941년생인 구스만의 어린 시절이면 194~50년대인데, 이때도 칠레는 “세상과 격리된 평화로운 안식처”가 아니었다. 물론 어린 구스만에게는 집이 평화로운 안식처였는지 모르지만, 칠레라는 나라가 낙원은 아니었다. 더구나 몇 장면 뒤에 “쿠데타가 민주주의의 꿈과 과학을 쓸어갔다”는 진술이 이어져서, 칠레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낙원을 짓밟은 것으로 오해 하기 쉽다. 아니, 구스만이 노린 것은 바로 이런 오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과대 포장을 하지 않더라도 피노체트가 얼마나 끔찍한 짐승인지는 이미 널리 알려졌고, 또 모르는 사람도 이 영화를 보면 자연히 알게 될 터인데 왜 이런 과장을 한 것일까?

구스만은 <빛을…>에서 과거를 찾는 세 가지 방법을 보여준다. 하나는 사막에서 고대 원주민들의 흔적을 연구하는 고고학이고 또 하나는 아옌데 정권이 들어선 다음 해인 1971년에 미국 카네기 재단의 후원으로 설립된 라스 캄파나스 천문대에서 관찰하는 과거의 별(별과의 거리 만큼의 과거). 천문학자와 고고학자가 같은 곳에서 연구하는 이유를 고고학자 누녜즈는 사막이 “과거에 접근하기가 용이해서”라고 말한다. 건조하기 때문에 하늘이 맑고(천문학), 과거의 흔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고학)는 것이다.

 

▲ 천문대

▲ 사막의 밤하늘. 산 위의 건물이 천문대

 

그리고 피노체트에게 살해되어 어딘가에 버려진 가족의 유해를 찾아 사막을 헤매는 할머니들. 이 할머니들은 “땅 속도 볼 수 있는 망원경”이 없음을 아쉬워 한다. 천문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차카부코는 원래 초석 광산의 광부 숙소였다가 버려진 곳이었는데 피노체트가 수용소로 재활용(!) 했고, 시체는 사막 여기저기에 암매장을 했다. 나이가 일흔인 비올레타 할머니는 “오늘 찾는다면 내일 죽어도 행복하게 죽을” 것이라며 “찾기 전에는 못 죽”겠다고 한다.

삽으로 사막을 더듬는 할머니들을에 대해 묻자, 망원경으로 하늘을 더듬는 천문학자 가파스 갈라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찾기 위해 더듬는 것은 비슷한데) 천문학자는 그런 탐색 뒤에도 잘 자지만 할머니들은 쉽게 잠 들지 못 한다, 비교할 수 없다, 사회가 천문학보다는 이 할머니들을 더 이해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하다”고. 이 말이 우리와 멀리 떨어진 칠레에만 해당되는 말일까?

구스만은 차카부코 수용소에 갇혔던 사람, 망명 했다가 돌아 온 사람, 천문학자가 된 실종자의 딸, 사막에서 오빠의 유골을 발견한 할머니 등의 얘기를 들려준다. 또한 창고에 쌓여 있는 이름 없는 유해들도 보여준다. 그리고 “밤마다 서서히 무심하게 은하계의 중심이 산티아고의 창공을 지난다”며 끝이 아닌 끝을 맺는다.

 

 

▲ 가족의 유해를 찾는 노인들

이 영화를 본 한 친구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온통 시로 점철된 영화”라며 감탄 했는데,<빛을…>은 정말아름다운 영화다. 다큐멘타리가 아닌 극영화에서도 이렇게 서정적인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가 않다. 깊은 아픔을 담고 있기에 더욱.

 

박인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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