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철안, 무경계의 증거를 제출하다

아트 / 육상수 칼럼니스트 / 2021-06-28 17: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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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구작가 곽철안 개인전, <무경계 증거 : The Point of pointless>
- 유체로 트랜스퍼한 작품, 무한의 사유를 비행하다
- 공예, 무경계 증거의 한 점으로 존재성 부각
- 현대공예의 대체안 제시

 

사물의 분별, 인지의 차이, 안과 밖, 상대와 절대, 양과 음, 우리가 대면하는 생애와 생애를 떠받치는 모든 이치는 경계에 의해 생성되고 발현한다. 나를 벗어난 모든 것은 경계 밖 이치로 존재한다. 갈등의 구조는 이 경계의 질서가 불분명 하거나 분절되어 각 영역이 혼탁해지면서 경계가 충돌한 결과다.


예술은 경계를 유희하고, 품고, 일체를 이룬다. 또 간극을 메우고 사이를 좁히며 의미를 와해시키고 목적을 지운다. 우주가 빅뱅 이후 중력에 의해 거리를 유지하며 존재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특이점(特異點,singularity)으로 회귀한 후 소멸한다는 빅 크런치(Bic Crunch) 이론처럼, 경계도 하나의 점에 이르러 사라질 것이다. 그 경계의 최후를 통첩하기 위해 곽철안의 사각 몸통 꼭짓점은 유선을 따라 흐른다.

곽철안 작업의 굽이치는 곡선은 경계와 경계 사이를 유영하면서 경계의 허점을 모색한다. 목표는 경계의 허식을 허물고 의심을 걷어내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의 곡선은 360도를 지나 원으로 마감하지않는다. 이 각도를 벗어나면 경계의 틈이 아닌, 경계 바깥의 영역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인상주의 스타일에 빠져 있던 대학시절, 작가는 원목을 잘라 본드로 겹겹이 붙인 뒤 다시 긁어내는 비생태적 조형작업에 동화하지 못하고, 개념과 물질의 합목적성을 위해 디자인 장르에 몰입해 ‘form-giver’ 즉, 주문자 방식에 작가의 기록을 퇴적하는 방식에 빠져든다. 충돌에서 조화로, 다양성보다 유일함을 매개로 차별화된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을 도모한다. 하지만 유일성은 디자인 생태계의 생산성 체계와 필연적으로 상충한다. 그 오류를 벗겨내기 위해 디자인의 기능과 효율을 제거하는 일련의 실험은 ‘기와‘ 시리즈에서 새로운 조형의 질서와 마주한다. 조형은 어떤 물질을 만나는가에 따라 착지점이 다르다. 그의 조형이 기와를 만나면서 물성의 디자이너에서 물성의 세계관을 톱아보는 작가 곽철안의 세계관이 열렸다.

초기 작업 ‘RNI table’은 기능과 조형을 한 몸으로 표현한 매우 독특한 작업이다. 하지만 이 작업은 환경 변화로 된서리를 맞고 사라진 도도새 처럼 작가 곁을 떠났다. 물질에 대한 억압과 그에 따른 정신적 후유증에서 벗어나려는 그의 의지는 ‘개념의 물질화’ 등식을 낳았다. 최소한의 물질로 최적의 개념이 성립할 수 있다는 확신이 지금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흔들리는 나무에서 내려와 뿌리의 소리를 듣기위해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는 진지성도 그 뒤를 따른다.
 

곽철안 작품의 본궤도는 'dragon_chair' 시리즈다. 경제성을 이유로 홀대 받는 합판은 빈곤한 재료로 보편적 물질로 인정하기 어렵다. 스스로는 아무런 역할도, 가치도 없는 합판이지만, 재료를 학대하는 작업에서 일찌감치 손절매한 그에게 합판은, 자신의 개념을 물질로 이식하는 최적, 최상의 재료였다. 개념으로 도포된 합판의 네 면은 작가의 손에서 빠져나가면서 유체로 트랜스퍼한 채 무한의 사유를 비행한다.


공예적 기반에서 잉태된 작가에게 ‘물질’은 사유를 매개하는 중력이면서 행위와 사고, 관습과 기질을 상징하는 에너지이고, 디자인은 형태의 자유함을 구가하는 수단이면서 물질 에너지를 파동으로 변환시키는 도구다. 작가는 파동의 시그널에 개념을 투입, 상투적이면서 경직된 경계를 해체하면서 무경계의 세계를 순례하고자 한다. 공예를 근거로 물질을 탐닉하고, 디자인으로 형태의 질량을 구축한 결정체의 개념은 경계와, 경계의 경계를 무너뜨려 피아(彼我)를 해체한다. 마치 몇 겁의 우주를 쫓다보면 결국 지금의 세상이 허상임을 깨닫게 하는 실존의 사막처럼.

곽철안 작업의 모티프는 즉시성(卽時性)에 있다. 그는 어마 무시한 전략을 취하지 않는다. 즉시성은 순례자의 방랑처럼 혹은 회생을 기원하며 방생하듯 물에 흘려보낸다. 물질에서 물질로 끝날 수도, 파동에서 공중으로 흩어질 수도, 끝내 바다에 다다를 수도 있다. 즉시성은 형태가 어떤 변이를 일으킬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작은 입자와 소리로 스며들어 인연으로 남는다. 즉시성은 작업의 발화점이 직관에 따르는 것인데, 즉시와 직관이 만나는 지점에서 작업의 동기화가 이뤄진다. 이는 자연스럽게 동시성으로 전개되는 연못의 파문과 동일하다. 조용히 태동한 원이 사위(四圍)로 사라지는 적막함, 용의 유체로 치환된 즉시성은 어쩌면, 무경계로 향하는 ‘행동주의 물질’로 이해될 수도 있다.


 

 

이번 신작에서 노출되는 색(色)은 친절함의 표상이다. 기능을 상실한 물질에 대한 마음의 짐을 덜어낸 자의식의 일종이면서 작가의 천성인 부끄러움(shy)과 입체성(bold)을 대체하는 형식이기도 하다. 먹으로 흐르는 몸체에 이 땅의 색을 입혀 친밀도를 유지하려는 작가의 추상적 말 물음표일 수도 있다.


물질의 고유정신을 조각으로 실현하려 했던 미켈란젤로는 숱한 미완성작을 남겼다. 물질 속에 완전한 형상이 있음을 믿었던 고대인들은 에이도스(eidos), 완전한 형상의 인식론으로 물질을 숭배했다. ‘현대적’이라는 의미는 우주 물질의 근원을 수용한 시대정신을 말한다. 오늘 만들어진 것이 ‘현대성’으로 인식하는 현대인의 부조리는 물질에 대한 모욕일 수도 있다. 물질의 정신을 존중하고, 물질이 대변하는 이데아를 추출하기 위해 곽철안의 에이도스 역시 미완의 박토를 질주하고 있다.

무경계는 ‘완전한 자유’의 체계 안에서 성립되는 곽철안의 리그다. 그 어떤 간섭도 허용하지 않는다. 태양과 흙이 존재하는 한 풀은 자라고 열매 맺고 다시 씨를 뿌릴 것이다. 물질의 형식화는 근대 산업의 무지막지한 생산성이 아닌, 체제의 억압과 주위의 간섭으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도모하려는 작가만의 형상 언어다. 그 언어들은 바람과 강물과 계절의 시간을 따라 우주의 무중력 공간으로 비행할 것이다. 관객은 의심이 가득 찬 눈으로 거리를 두거나, 일단 수용 후 이해를 구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수용자의 태도에 달렸다. 단지 작가는 경계 너머 무경계 공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무경계는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 이전의 시간에 그 기원이 있다. 우리가 사는 무한하고 영원할 듯한 우주도 언젠가 소멸되는 운명에 처해 있다. 어쩌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무한의 우주에서 실체도 불분명한 작은 우주에 매달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스티븐 호킹 박사의 ‘무경계 이론’은 캐릭터의 성격과 캐릭터가 만들어진 본질은 달라, 빅뱅 이전의 상태를 만든 배경을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는 무경계의 관점으로 바라보았다.

11차원의 우주세계에서 우리가 공유하는 것은 불과 3차원이다. 양자역학에서 원자의 미시세계를 들여다보면 물질과 반물질이 공존하거나 또는 물질이 있다가 없어지고, 없다가 다시 생겨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또한 여러 곳에 동시에 유령 같은 ‘상태의 공존’ 현상이 관측되고, 소립자중 광양자(光量子,light quantum)는 현대과학의 논리로 말도 안 되는,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동시에 갖고 비현상적 상태를 띠고 있다. 물리학적으로 규명된 ‘불확정성의 원리’는 미시세계에서 확정적인 유와 무의 개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실존이 확정되지 않은 실존이라는 ‘확률적 존재’를 제시한다. 경계도, 확실함도 없는 우주의 생태계에 곽철안 작업이 그 증거의 한 점으로 어디선가 존재하고 있다.

제아미의 노(能) 미학에 예술이 꽃(궁극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3단계가 있다고 한다. 제3등급은 하얀 은그릇에 흰 눈이 소복이 담겨 있는 상태의 ‘동질성’ 미학이고, 제2 등급은 흰 눈에 덮여 있는 만산 가운데 제일 높은 봉우리 하나만 검게 나타나 보이는 상태의 ‘차별성’ 미학이다. 제1등급은 한밤중에 해가 밝게 빛나는 것으로, 앞서 언급한 제3급과 제2등급이 분별이 가능한 현실계라면 제1등급은 현실의 지평을 넘어 선 무경계의 세계다. 한낮의 산봉우리에 달이 뜨고 낮과 밤이 바뀌는, 현실의 분별이 무너지는 상태를 말한다. ‘내가 먹으니 네가 취하는’ 환상과 실제의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무경계’ 미학이 예술의 궁극(꽃)이라 할 수 있다.

 

 

 

곽철안의 <무경계 증거: The Point of pointless>는 우리에게 모종의 암시와 단서들을 제시한다. 어느 지점을 향하는 저 유선의 몸짓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놀이공원 하늘열차에 오른 관광객의 아우성일수도, 해서체를 따라가는 붓 끝의 떨림일 수도 있다. 어느 것이든, 무엇이든 증거물은 관객의 의식과 체내에 세포질로 각인될 것이고, 작품에 매달린 의도는 각양각색으로 탈각됨과 동시에 작가는 경계의 벽을 허무는 과정을 체득할 것이다.

무소유, 무의식, 무목적, 무의미, 무가치, 무감각, 무반동, 무색, 무심, 무념, 무상...모든 이치는 무(無)의 상태가 전제됐을 때 본질의 이치가 형상되고 그것에 착지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전시작은 무경계의 증거로 제시되면서, 우리 앞에 놓인 ‘불완전함’의 단서를 찾으려는 곽철안 식 ‘물질개념’ 운동이다. 예술의 주입식 의식과 경직된 의도를 배척한, 무경계의 어느 한 점에 이르려는 곡선의 유희는 ‘무의식의 의식(The Point of pointless)’을 위한 물질 제례다. 그 공간에서는 누구든지 제사장이 되어 경계의 소멸을 집행할 수 있다.

유선을 끝을 따라 경계가 해체된 곳에서, 우리는 만나야 한다.

 

▲ '갤러리웅'에서 2021.6.17 - 7.10까지 열리는 개인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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