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김성수...꼭두에 새진 희망

아트 / 전상희 기자 / 2021-07-15 16: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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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물상과 동식물의 모습을 나무에 새긴 한국의 고유한 전통문화 유산
떠나는 이들에겐 동반자로, 남는 이들에겐 위로자로 존재

 

 

나무는 소년에게 자유를 꿈꾸게 했다. 그리고 소년은 나무와 함께 자유로워졌다. 이제 소년은 어른이 되어 나무에 희망을 새긴다. 다소 투박하고 거친 질감이지만 그것은 분명 담백하고 고운 희망이다. 무표정하기에 너이기도 하고 나이기도 하다. 낯설고도 친근한 모습의 꼭두들은 모두 조각가 김성수가 만난 사람들이다.

열 가구 정도 밖에 살지 않는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나무들로 둘러싸인 곳이다. 작품들도 작업실 주변의 나무들로 만든다. 주로 참나무와 느티나무, 피나무를 사용한다. 꼭두에 대한 연구를 하다 보니 예전에 상여에 쓰인 꼭두들이 대개 피나무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연필을 깍듯이 쉽게 깎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듯. 사실 피나무 뿐 아니라 대부분의 나무들이 그렇다. 가볍고 쉽고 그래서 고맙다. 그에게도 나무는 그런 존재다.
 


나무, 가볍고 쉬운 그래서 고마운

어린 시절 골수염을 앓고 그 후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면서 몸이 불편해진 그의 손에 결국 들려진 것은 나무 조각들이었다. 영남대 조소과를 졸업한 김성수는 원래 나무 뿐 아니라 철을 이용한 제법 규모가 있는 작업들도 했었다. 하지만 1999년에 다시 수술을 받은 후에는 가볍고 다루기 쉬운 나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나무를 만지며 누워있다 보니 역시 누워서 자유를 갈망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특히 아픈 손자를 보며 더 애달파하시던 할머니의 깊은 사랑에 대한 기억은 선명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 놀지 못하는 손자에게 늙은이 가는 길에 다리 낫게 해달라고 빌라셨다.

그렇게 손자를 아끼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그가 엉엉 울며 봤던 상여와 상여 위에 앉아 있던 꼭두들에까지 기억은 이어졌다. 우리네 삶의 마지막을 내려다보고 위로하고 함께 걸었던 꼭두들은 그렇게 그의 삶에 찾아와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희망으로 사람을 만나다

 

불편한 몸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집어든 나무는 이미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자유와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 자유는, 그 나무는 그의 일상이 되었다. 물성을 갖고 있는 나무는 생명체로서 그가 자유와 희망,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재료였다.

나무가 본래 갖고 있는 재질감을 살리고 싶다는 김성수 작가의 작품들은 있는 그대로의 나무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나무에 알록달록한 색감을 입혀 나무 특유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표현해낸 작품들도 많다.

그중 <새를 타고 나는 사람>은 그의 대표작이다. 단순화시킨 새 모양의 나무에 사람들은 가볍게 올라타 있거나 불안하게 서있거나 열심히 매달려 있다. 힘겨워 보일 듯도 한데 오히려 사람들은 발랄하고 유쾌하다. 힘겨워도 희망을 향해 날아가고자 하는 현대 소시민들의 순수한 모습들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그는 말한다.


 

앞으로 그의 작품 세계는 희망을 향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아니,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이어질 것이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낯간지러워 부끄러워하면서도 결코 그 곁을 떠나지 못하는 아파트 경비 아저씨, 야근에 찌들어 있는 회사원, 심술이 나 볼이 퉁퉁 부은 여자 아이, 세상 모든 일이 궁금한 동네 어르신 같은 평범한 사람들. 바로 그가 만났던 그리고 만날 사람들의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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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 

이름은 낯설지만 모습은 낯설지 않다. 우리에겐 나무 ‘인형’이란 말이 더 익숙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형’은 사람의 모습만을 강조한 일본어에서 차용된 단어다. 꼭두는 다양한 인물상과 동식물의 모습을 나무로 깎아 만든 한국의 고유한 전통문화 유산으로 주로 상여에 장식되었다. 그 모습은 호랑이를 탄 남자, 창을 든 무인, 시녀부터 봉황, 용까지 다양하다. 고대 시대부터 근대 초기까지 만들어져 서민들의 삶과 죽음의 경계에 함께 해온 꼭두는 이승과 저승을 오고간다고 여겨졌다. 떠나는 이들에겐 동반자로, 남는 이들에겐 위로자로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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