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재해석] 북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 : 달동네 골목에 대한 결례

건축 / 유재형 기자 / 2019-01-10 15: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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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
결국 아파트 숲으로 덮을 예정.
이제, 우리 시대에 남은 건 무엇인지 되묻고 싶어

 

 

 

 

 

 

 

 

 

일러스트 최보람


 

비탈에 서서 ‘나는 비탈이지만 아이들은 곧게 자라고, 나는 비탈이지만 푸른 하늘이 사는 것의 기준이 된다.’ 사람이 숲을 이루고 살아 온 시간을 이곳에서 꼽을 이유는 없다. 누가 잠시 내어준 것뿐이다. 바람과 나무, 뭇짐승들과 이름 모를 풀의 땅이었지만, ‘사정이 딱하다’ 하여 비워준 곳으로 너희의 체온이 옮겨왔다. 

 

 

사철 등 따신 양지가 되지 못해 미안하다. 연탄수레 간신히 오를 만한 경사를 만든 것이 미안하다. 하지만 상수리나무, 돼지감자꽃도 허리 펴고 곧게 자라지 않는가. 낮은 시선으로 세상의 모든 사물을 반기는 평등의 숲이 곁에 있지 않던가. 촛농처럼 한순간에 무너질 힘이래도, 전봇대에 간신히 매달린 100W짜리 백열등에 비춰보면 아직은 쓸 만하다. 

 

지금은 마을버스 종점 주점에 나앉은 누구의 아버지 되는 자, 삼촌 되는 자와 형과 아우가 되는 남자들이 고단한 삶의 맞은편으로 기본안주를 놓고 희망을 노래한다. 곧 자리를 틀고 일어나면 골목도 취기에 삐뚤빼뚤 함께 오르는 길이다. 슬레이트 지붕 낮은 골방에도 아이가 잠들었다. 다시 새벽이면, 나의 비탈도 고요하다.
 

 


사는 것이 팍팍하다 느껴질 때 불암산(507m)을 찾았다. 불암이 어찌나 많았으면 이름도 佛岩이던가. 본동 기슭마다 부처가 가득하다. 분쟁도 없이 층층을 이루고 언덕을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불편한 화장실도 경사진 대문도 바람구멍 난 창도 한번 개구지게 웃고 나면 그리 나쁠 것 같지 않아, 상계 방향으로 향을 피워 올렸다.


개발의 흔적을 따라 황폐화된 자리가 을씨년스럽다. 중계본동을 가려면 강북의 8학군이라는 은행사거리를 거쳐 불암산 남쪽방향으로 우회해야 한다. 이곳은 1971년 제정된 도시계획법에 따라 그린벨트로 묶여 있다가 최근 SH공사에서 2600세대 대단위 아파트를 계획하고 있어 철거를 서두르다 시장이 갈리면서 주춤한 상태였다가, 결국 절반은 보존한다고 했던 약속도 제대로 못 지켜질 상황에 왔다. 

 

 

투기용으로 사 둔 투기꾼들은 오금이 저렸겠지만 그렇다고 산 사람들이 행복하지는 않다. 마지막 달동네마저 땅 부자들에게 넘기고 나면 쪽방 사람들은 또 어디로 밀려나야 할지. 한숨은 깊다. 달동네가 사라진다고 가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서울의 달동네도 이제 손에 꼽을 정도만 남았다. 금호동과 아현동, 노원구 상계4동 희망촌과 양지마을 정도가 남았지만 그곳도 이미 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거나 예정돼 있다.

잊혀진다는 ‘외로움’ 보통 중계본동 104마을(이곳의 과거 번지수가 104번지였다)이나 10번 종점(마을버스 10번이 이곳 주민의 발이 되었다) 마을로 통하는 이곳은 1960년대부터 도시빈민들이 이주해와 마을을 형성했다. 5만 3천여 평에 이르는 마을 전체가 경사진 불암산 허리를 따라 북서향으로 형성돼 거울이면 동장군이 행패 부리기에 딱 좋은 지형을 갖췄다. 

 

 

달동네를 중심으로 기층 민중의 삶을 풍성한 리얼리즘으로 승화시켰던 소설가 김소진은 그의 단편집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서 개발 속 사라져 가는 옛 추억과 현대인의 상실감을 주인공 ‘나’를 통해 회상하고 있다. 주인공은 유년의 기억이 서려있는 달동네가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것을 확인한다. 옛 추억을 조금이나마 찾아보려고 골목을 떠돌지만, 결국 집을 찾지 못한 나는 아랫배가 묵직해져 오는 것을 느낀다. 할 수 없이 빈집에 들어가 깨진 항아리 속에 똥을 누지만 자신을 지탱해 왔던 그 모태와도 같은 동네가 사라진다는 생각에 눈물을 떨군다. 

 

올림픽과 월드컵이 열리는 동안 아무리 꼭꼭 숨기려고 해도 달동네는 존재했지만, 개발의 광기는 사라지는 것을 함부로 용납한다. 우리 세대의 자식들은 떠올릴 수 있을까. 달동네는 이제 사진 속에서 도시 하층민의 경사진 삶을 얘기하고 있다.

 


저 끝에서부터 다시 골목길 차들이 들어올 수 없는 골목길은 늘 아이들의 차지다. 비석치기, 구슬놀이, 딱지치기 심지어 축구게임도 가능하다. 물론 골대는 전봇대와 집 사이로 놓인 좁은 공간이 되겠지만, 한번 잘못 굴러간 공을 되찾아 오는 것은 무리 중 늘 막내 차지였다. 한 번의 불평도 없이 낮은 곳을 향해 굴러가는 공의 속도를 따라잡는 막내의 숨은 그래서 늘 가빴다. 아이들끼리 숨바꼭질이라도 할라치면 숨을 곳이 너무 많아 술래는 늘 고민이다. 일부는 담장 대신 놓인 한 평짜리 텃밭에 몸을 낮춘다. 지붕이 허리만큼 낮아 아이들이 숨기에 제격이다.




겨울철이면 연례행사로 복지단체, 기업에서 긴 줄로 서 연탄을 나르고 한 장의 사진을 남긴다. 하지만 한편에 놓인 타다 남은 연탄들은 이미 열정을 비운 듯 적막하다. 욕심 없는 사람들의 이부자리를 위해 그도 간밤 뜨거운 한 생을 살았으리라. 골목길 굽이마다 삼삼오오 횡대로 놓인 화분은 어김없이 봄꽃을 피웠다. 달리보면 아파트 단지에 잘 조성된 정원수보다 더 생기 있는 모습이다. 


마을대장 노릇을 하는 듯 가장 높은 십자가 첨탑이 따라 골목을 우회하자 할아버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벽을 넘는다. 말소리는 골목을 부표처럼 떠돌지만 자세히 듣고보면 특별할 것도 없이 “어서 밥 달라”는 소리다. 1970년대 이 마을의 부자는 다름 아닌 번지수를 가진 아이였다. 현재도 가옥의 30%는 아직도 무허가로 남아있다. 

 

 

그 옛날 왕 노릇을 했을 법한 아이의 집에도 비디오플레이어가 있었을까. 무지개 모양 선경 비디오테이프 광고가 새겨진 벽면에서 영화 포스터가 바람 따라 까불거린다. 자세히 보니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이다. 골목길이 책임지는 집이 너무 많아 그냥 104마을로 통칭했지만, 푸른 하늘 위에 아무렇게나 그어진 전깃줄은 갖가지 도형을 만들어 낸다. 이 동네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오른 것은 전봇대이다.

 

  

  

떠날 자는 떠나고 남을 자는 남아 있다. 빈집에는 생쥐마저 보이지 않는다. 그들도 사람이 그리워서인가. 마을은 공간의 정점이다. 혼자 짓고 혼자 사는 것은 집에 대한 결례다. 마을이 공간인 것은 인간의 관계를 담고 있어서다. 하지만 사람이 떠나면 건축 폐기물만 남는다. 낮술에 취한 아비가 비틀거리며 계단을 오른다. 꼭대기를 향한 계단은 그칠 줄 모른다. 다리가 아프기 전에 삶이 먼저 지친다. 중계본동 10번 종점에서 바라본 골목길은 부챗살을 펼치듯 단단히 집들을 단속하고 있었고 그중 가장 빠끔한 길은 산너머 남양주 별내로 이어졌다. 골목은 그곳에서 다시 길을 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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