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사색] 의자와 속물

라이프 / 서주원 / 2019-04-15 14: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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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의 소파로도 유명한 르 코르뷔지에의 LC-2를 시작으로 의자를 좋아하게 됐다. 처음엔 그저 멋진 의자를 감상하는 걸로 족했다. 그러다 점점 욕심이 생겼다. 단 한 번도 로또를 사본 적 없지만, ‘복권에 당첨되면 의자부터 사리라.’는 자기 모순적 언어를 늘 머릿속에 떠올리곤 했다. 의자들의 실제 가격을 알고 난 뒤 생긴 부질없는 소망이었다. 당장은 소유할 수 없으니 우선 향유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았다. 좋은 의자가 있는 곳은 직접 찾아가 앉아 봤다. 제일 좋았던 건 알바 알토의 파이미오 체어였다.

의자를 위대한 예술 작품 감상하듯 바라봤던 난,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기자 끝을 모르고 침울해졌다. ‘완벽한 조형미가 취향이어서….’라는 낯 좋은 언어는 비싼 의자를 갈망하는 속물근성을 숨길 수 없었다. 가벼운 주머니는 불공평한 세상을 향한 볼멘소리만 낳았다.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도 세일 기간의 소파 하나조차 살 수 없었다. 법정 스님의 의자를 알게 된 건‘새로 이사 갈 집엔 못해도 필립 스탁 정도는 들여놔야지.’라는 무리한 구매 결정을 내릴 무렵이었다.

11월 휴가 때 길상사를 찾았다. 블로그에서 우연히 본 법정 스님의 의자가 궁금해서였다. 스님이 살아생전 앉으셨던 나무의자였다. 조형성도 아름다움도 찾을 수 없는, 그저 기능에만 충실한 의자였다. 사진보다 실물이 더 충격적이었다. 못 쓰는 나무를 주워 만들었을 법한 의자였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앞에 서서 한참이나 그 의자를 바라보았다.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태어나 세상에 해를 입혔으니 조금이라도 돌려주고 가고 싶다.’라는 지인의 말도 생각났다. 한참을 잘못 왔구나 싶었다. 한편으론 두렵기도 했다. 내려가 세상에 섞이면 다시 속물이 될 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길상사에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났다. 순간의 얄팍한 감상은 절대 <무소유>에 닿을 수 없다는 걸 절감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덜 속물이 되려고 그간 나름의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거리의 구세군 냄비를 지나치지 않은 정도를 선행이라 말할 수는 없다. 순수한 의도가 아닌 그저 죄책감을 덜어내려는 불순한 목적에서 시작한 거니까. 그날 낡아빠진 나무의자를 보면서 머릿속에 했던 생각들을 잊지 않으려 속으로 되뇌지만 나는 아직도 한참이나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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