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공간에 머무는 풍경...이호중 건축가의 '풍경재'

건축 / 유재형 기자 / 2021-06-24 10: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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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이호중에게 공간은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는 소통의 영역이다. 채워짐을 상상한 비움을 염두에 둔 그는 집과 함께 풍경을 지었다. 그가 지은 집 풍경재는 매일의 삶과 풍경이 채워지는 갤러리 같은 공간이다.
▲ 멀리 산자락 풍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2층의 창문

 

서울 신교동의 한 주택가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막다른 언덕 위에 담도 대문도 없는 주택이 한 채 서 있다. 이웃, 지나가는 사람, 강아지, 바람, 햇빛이 드나들 수 있고 심지어는 도둑조차 계단만 올라가면 바로 비어있는 안마당에 들어설 수 있다. 현대인의 불안, 경계심에 아랑곳하는 기색도 없이, 누구에게든 기꺼이 옆구리를 내어주고 있는 주택. 이번에 우리가 만나 볼 풍경재이다.

“담이 없으면 도둑의 마음이 오히려 편하지 않을 걸요? 담벼락에 몸을 숨길 수도 없으니 달빛 쏟아지는 마당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가는 마음 아닐까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이 분이 바로 풍경재의 풍경을 지은 이호중 교수이다. 그는 풍경재를 통해 비워진 공간의 의미, 잃어버린 소통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려 한다. 그의 건축 세계, ‘마당’으로 상징되는 ‘비움’의 공간으로 들어서면 담을 없애고 불안을 떨친 대신 얻은 것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풍경재’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풍경이 담 대신 병풍처럼 펼쳐진다. 가까이는 청와대, 멀리는 동대문, 산자락의 풍경이 다 보이는 이곳은 ‘전망 좋은 집’. 바람의 속살거림과 태양의 온기에 몸을 내맡긴 2층짜리 주택은 주변의 풍경과 심상찮은 친화력을 보여준다. 자연스런 공백이 집에 무한한 소우주를 만들어낸다. 만일 이 자연 병풍에 담을 둘렀다면 단지 아름다운 풍경만 잃었을까? 풍경재는 ‘공간이란 잠시 누구에게 내어주는 자리’이며 ‘채워짐을 상상한 비움’을 염두에 둔다는 이호중 교수의 공간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집이다.

 



비움의 정원

풍경재가 처음부터 이런 풍요를 자랑하는 주택은 아니었다. 풍경재에겐 ‘리노베이션’ 이전 그러니까 그냥 ‘신교동 주택’이었던 시절이 있다. 당시에는 차가 올라오지 못하는 좁은 길에 서 있는, 매우 낡아 삐걱거리는 주택이었다. 거기다 공원지역, 개발제한구역 내에 위치해 증축에 까다로운 제약이 있는 몸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건축주 이성수, 석상희 부부의 눈에는 제법 전망 좋을 것 같은 집이었다.

이호중 교수 역시 그 오래된 공간 안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그는 주택 안팎의 고유한 울림과 시간의 무게를 꼼꼼히 살폈다. 인왕산, 북한산, 남산 등 서울 곳곳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위치였고, 오래된 골목의 정취가 살아있는 곳이었다. 이호중 교수에게 ‘리모델링’을 부탁한 부부는 신교동 주택이 곧 단장될 거란 기대에 부풀었다. 그런데 이호중 교수, 이상하게도 설계 얘기는 꺼내지 않고 부부를 인사동이나 가회동으로 이끌고 다니며 차를 마시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집’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건축주의 취향과 이해를 이끌어 내기 위한 그의 노력이자 준비였다.


 

 


“아파트에 살던 이들이 주택에 살기는 쉽지 않아요. 불안 요소가 없지 않기 때문에 당혹감이 없도록 해야 했지요. 무엇보다도 주택에 살면 생활 방식이 바뀌어 감수해야 할 부분이 있어요.”

옛날 주택이라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 복잡한 동선, 춥고 더우며 답답한 실내, 유지와 보수에 잔손이 많이 가는 집. 거실은 좁고 방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어 살기에 불편했으며 증축에 한계를 지녔던 신교동 주택. 여러 제약 속에서 최적이 무엇인가를 고민한 이호중 교수는 풍경재를 스케치해 부부에게 보여주었고, 마침내 풍경재의 풍경이 현실 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주택이 들어서기 전부터 있었던 자연은 존중되었고, 비움을 통해 대지 전체는 하나의 정원이 되었다.

DESIGN IST DASEIN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는 보통 사람의 로망이다. 이 가운데 ‘푸른 초원’을 ‘언덕’으로만 바꾸면 풍경재가 될 것 같다. 풍경재는 언덕 위에 당당하게 그림처럼 서 있고, 건축이 풍경 속에서 표현할 수 있는 절묘한 몸짓을 보여 준다. 특히 눈여겨 볼 것 중 하나는 주택 외관과 주변 환경의 각별한 조응이다. 여기에는 외관에 사용된 목재의 자연스러운 색감이 한 몫하고 있다. 목재의 풍부한 표정과 변화가 깊이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 다양한 고급 목재를 혼합해 꾸민 벽면 우드디자인

 

 

 

“디자인은 밸런스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리든 목재든 콘크리트든 철이든 재료의 물성을 관찰해서 다른 물성과 밸런스를 맞출 수 있게 해야 해요.” 풍경재 스케치를 시작했을 때 이미 이호중 교수는 외부에 목재를 쓸 생각이었다고 한다. 집은 ‘시간의 기억을 담는 그릇’이니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목재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외장재로 ‘방킬라이’를 선택했다. 환경에 반응이 빠른 방킬라이가 노출콘크리트와 비슷하게 회색으로 변할, 가까운 미래를 그려본 것이다. 하지만 시간에 따라 색이 변화하는데 건축주가 이것을 이해해줄까? 나무의 물성, 색상의 변화에 대한 이해가 따르지 않으면, 변해가는 맛을 즐기지 못하면 목재는 사용하기 어려운 소재이다.

“재료가 재료로서의 물성을 표현하는 것을 원했어요. 파운데이션하지 않은 건축. 마감이 마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어요. 물론 원목은 잘못 쓰면 뜯어내야하기 때문에 잘 알고 사용해야 하지요. 재료 하나의 선택에도 본성과 변화에 대한 이해, 문화적 수준이 요구되는 것이 건축입니다. 현대인은 세월을 느끼고 즐기려는 마음이 없어요. 시간에 따라 늙어가는 멋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너무 새로운 것만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이호중 교수의 우려는 다행히 풍경재에서 불식되었다. 건축주 부부가 담과 대문이라는 경계를 없애는데 이어 외장재의 변화 역시 과감하게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건축가와 건축주의 이해와 소통으로 풍경재는 지금 비와 햇빛과 시간의 손길을 받아 회색으로 멋스럽게 변해가는 중이다.

 


풍경재에서 주목할 또 다른 한 가지는 갤러리처럼 펼쳐지는 실내 공간이다. 갤러리라고 해서 작품을 전시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내 자체가 하나의 ‘회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거실의 개념이 없는 좁은 실내였다는 풍경재의 옛 고백은 믿기지 않는다. 주방과 거실은 통합되었고, 벽면에 쓰인 나무가 이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있다. 이 실내 디자인을 위해서 이 교수는 직접 목재 회사에 가서 나무를 관찰했다고 한다. 그가 벽면을 꾸미기 위해 고른 나무는 결이 아름다운 다수종 고급목재들이다. 여러 목재를 혼합하여 거실과 주방, 다실과 2층으로 올라가는 사이의 벽면을 마감하니 지금의 ‘월 갤러리’가 만들어졌다. 다양한 색상의 목재는 실내에서 각자 자신의 색을 뽐내는 동시에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나무들의 돌출 정도에 차이가 있어서 재미있고 빛이 실내로 쏟아져 들어오면 벽면이 살아 움직인다.

“DESIGN IST DASEIN, 디자인은 나 아닌 다른 것에 대한 관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분야, 어떤 것이든 단점 속에도 부유함이 있고 밝은 면이 있어요. 그것을 관찰하고 끄집어내어 밸런스를 맞추려 하지요.”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목재를 관찰하고 그것을 가져와 벽면에 회화를 구현한 것. 이호중 교수의 안목과 디자인 감각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가족들은 거실을 지날 때, 마당을 거닐 때 조금씩 새롭게 변화해 나가는 집의 풍경을 감상하게 되었다. 일상적인 것들도 각별하게 체험할 수 있는 것은 목재를 사용한 주택의 큰 매력이다.

건축은 움직인다

풍경재는 단순히 비바람을 피하며 잠을 자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과 상생하고 소통하는 공간이다. 가족, 이웃, 환경 등과 교류하는 공간. 그런 의미를 모아 이 교수가 풍경재에 특별하게 만든 방이 있으니, 바로 한실 분위기로 꾸민 찻방이다.

“거실은 전체적으로 반사회적이면서 개인적인 공간입니다. 또 동시에 가족 간의 소통이 가능한 공간이지요. 현대에는 거실이 공간의 기능을 잃고, 집 안에서도 가족끼리 단절되어 안타깝게 생각해요.” 찻방은 그런 안타까움에서, 소통의 바람에서 탄생시킨 공간이다. 물론 가족들이 손님을 자기 방에 모실 수 있도록 각 방에는 특징과 이야기들을 담았다. 단지 찻방은 도구를 통해, ‘차’를 통해 관계적 상황, 소통의 모습을 만들어나가는 한 예이다. 이호중 교수는 찻방이 생기면 급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여유가 생기고 가족 문화가 바뀔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남는 공간을 찻방으로 꾸며 탄력성을 부여했다. 응접실이 될 수도 있고, 낮잠을 즐길 수도 있고, 서재가 될 수도 있는 공간. 공간의 쓸모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공간을 지나치게 기능적으로 구분하거나 구성하지 않고 얼마 정도의 해체가 가능하도록 미완성으로 짓는 것. 그것이 소통의 시작입니다.” 여기서 이호중 교수가 말하는 해체는 형태적으로 비틀어진 상태가 아니다. 여분의 해체, 여지의 해체로 공간을 열어놓았다는 의미이다. 건축은 고정된 것이지만 사실은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무엇인가와의 반응을 통해 조금씩 움직이는 것. 존재하는 모든 것은 주변에서 신호를받고 반응하기 때문이다.

“풍경재는 매일매일 삶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 같은 공간입니다. 2,30년쯤 후에는 이곳이 아예 동네 찻방으로 변신하지 않을까요?” 환경과 사물이 긴밀하게 반응하며 변화하는 풍경재라면 아마도 그런 변신이 가능할 것이다.

이호중 교수와 담소를 주고받는 사이 마당에는 저녁 빛이 들어와 스민다. 빛은 잠시 머무르고 바람은 움직이고 비어 있는 공간은 그 흔적을 기억한다. 관계를 담 안에 가두려는 마음을 비우자 공간은 오히려 확장되었다. 멀리 인왕산 자락까지 모두 풍경재의 품에 안겨온다. ‘비움’을 통해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것을 처음엔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주택이 가진 한계를 장점으로 극복한 풍경재는 이제 골목의 명소가 되었다. 사람과 자연, 공간이 만나 생활을,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풍경재. 앞으로도 이곳에 모든 풍경이 조화롭고 아름답게 채워지기를 바라며 실내에서 내려다 본 마당에는 이호중 교수가 직접 그린 ‘마음의 꽃’이 만개하였다.

 

 

 


건축가 이호중 : 독일 콘스탄츠 과학기술대에서 조형디자인을 전공했으며, 독일 비스바덴 과학 기술대학 및 동 대학원에서 실내건축을 전공했다.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실내건축설계학과 디렉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작품으로는 현대중공업 명덕복지회관 기본 계획, 대한 적십자사 역사전시관설계, 삼성동 ‘더 미켈란 147·107 프로젝트’, 도곡동 ‘동부센트레빌 재건축 프로젝트’, 서초동 ‘더 미켈란 88평형 팬트하우스’, 청담동 ‘시윤 빌딩’, 하남주택 '선린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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