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철의 무물(無物)...스스로 드러나는 존재들에 대한 경외

칼럼 / 육상수 칼럼니스트 / 2021-11-02 02: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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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는 꾸미지 않은 진정한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존재
1000번의 궤적이 남긴 먹의 세계
불간섭이 낳은 원시 회화의 시원성
아무것도 아닌 것을 에워싼 숨결
▲ 14_Mumool 20-9 455.0x379.0cm Acrylic on canvas 2020

 

 

아무것도 아니거나 혹은 그래야만 했을 어떤 메타포가 깊은 울림에 갇혀 있다. 소리와 진동으로만 보고, 읽고, 들을 수 있는 이 내밀함의 전서(傳書)는 작가 최상철이 수신자의 우편번호를 지운 채 우송한 흑백 내러티브다.

작품은 검은 물감을 뒤집어쓴 돌조각들이 캔버스 위에 1000번의 궤적을 남긴 자의적 향연이다. 검은 돌은 구르는 소리와 진동으로 무게를 낳고, 파장을 남긴다. 어쩌면 작가에게는 천 번의 천둥소리일 수도, 천근의 무게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정지 됐을 때 남겨진 것은 먹의 울림이고 향연이다.

최상철은 '그리지 않음으로 그림을 완성'하는 작가다. 이는 작품을 에워싸는 수사가 아닌, 마땅히 그래야 하는 필연이다. 어떠한 인위도, 덧방도 아닌 그의 작품 <무물(無物, Mumool)>이 고스란히 전하는 진실이자 도덕이다.

 

 

▲ 01_Mumool 21-8 130.3x193.9cm Acrylic on canvas 2021

 

 

▲ 07_Mumool 20-12 162.2x130.3cm Acrylic on canvas 2020

 

 

그는 붓의 재주와 손의 감각을 신뢰하지 않는다. 대신 돌의 ‘구르다’가 남긴 그 고단한 흔적에 온전히 의지한다. 최소한의 개입마저도 욕망의 한 부분이어서, 그마저도 떨치고 싶었지만 달리 방안이 없어 무기력해 했다.

그가 선택한 1000이라는 숫자는 단지 멈춰야 하는 때를 정하고 싶어서 임의적으로 결정한 숫자에 불과하다. 수십 년간, 작가 최상철은 조형적 논리를 애써 지웠고, 작가에게 주어지는 자의적 권위나 특권을 모두 내려놓고자 했다. 또 미술(가)에서 제례의식과 같은 ‘모방과 장식’에 대한 일체의 관습도 거부했다. 그에게 회화는 어떤 것의 재현이나 표현이 아니며, 의미와 가치를 담아내는 수단은 더더욱 아니다. 굳이 간섭했다면, 경계의 담장 밖에서 배회하는 방관자의 헛기침 정도이다.

그는 “회화는 꾸미지 않은 진정한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존재함”이라 했다. 의미로 획정되기 이전의 어떤 상태, 언어와 형상으로 포착될 수 없는 ‘그 무엇’이 스스로를 드러낼 때, 회화는 존재의 이유를 가진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것은 우주 물질이 스스로 지닌 질량에 순응하는 이치와 같다.

회화는 모든 사물은 형태를 갖추기 이전의 무분별과 혼돈의 세계로부터 발원했다. ‘무언가를 드러냄’은 ‘드러나지 않음’의 존재성과 동시성을 가진다. 결국 ‘드러나지 않음’은 ‘없음(無)’이 아니라,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즉 ‘없음의 존재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물과 이치는 ‘있다-없다’에서 ‘없다-있다-없다’로 귀결되는 자연의 질서에 다름 아니다.

 

 

▲ 05_Mumool 21-10 227.3x181.8cm Acrylic on canvas 2021

 

 

최상철의 <무물>은 카오스의 상태를 잉태한 무차별적이고, 무제한적인 잠재성으로, 다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의 기호이자 체계이다. 비가시성이 가시성을 초월하는 초현실의 단면이면서 원초적 감각들이 유영하는 실존의 세계다.

작가는 그것은 “아마도 아주 오래 전에 누군가가 나뭇가지를 집어들고, 바닥에 무심히 그었던 선(線)과 같은 흔적일 것”이라고 말한다. 최초의 그림은 무엇으로 잘 그리고자 하는 욕망이나 개념조차 없이 그려진 그림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최초의 그림을 그리던 세상과 조우하고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태가 이끄는 궤적으로부터 조화가 탄생하고, 자리하는 그 경이로운 순간을 구르는 돌의 흔적에서 확증하고자 했다.

궤도를 이탈한 열차는 무한궤도에 올라 타 무중력 세계로 달려가듯, ‘스스로 그렇게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무한의 경외심만이 진정한 회화를 낳을 수 있다. 의도와 사유를 벗어난 무념의 상태야 말로 미메시스의 부당성을 절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직한 울림과 진동은 이제 작가의 심장을 떠나 온전히 감상자의 몫으로 자리한다. 붓 끝이 사라진 회화의 잔상에서 회화의 시원과 무의식의 단초를 찾을 수 있을지, 벌써부터 이유 모를 조바심이 일고 있다.

 

 

▲ 13_Mumool 21-12 130.3x97cm Acrylic on canvas 2021

 


전시 장소: art space3
전시 기간: 2021.10.28 -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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