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동 현대한옥, 80년의 시간을 증언하다

건축 / 송은정 기자 / 2019-01-30 01: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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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복원과 현대적 재해석
현대한옥과 현대건축
사람의 삶에 관한 이야기
구가도시건축 조정구 건축가

 

 그러고 보면 한옥은 언제나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전통의 복원과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두 명제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한옥을 언급할 때 의례 설명되는 전통, 역사성, 정신성 등과 같은 제한된 언어가 한옥을 지난 세기의 보존해야 할 유물 내지는 화석으로 한계 짓는다는 점이다. 어찌되었건 역사학자와 건축가, 목수 등 각자의 위치와 논리 속에서 한옥은 지금까지 기어이 제 명맥을 이어왔다.  

 

 

의도치 않게 ‘한옥 전문 건축가’라는 수식어가 붙은 구가도시건축의 조정구 소장을 만나 새삼 한옥에 대해 물었다. 여기서 ‘의도’하지 않았다는 말의 의미는 그가 일구어낸 일련의 작업이 결코 한옥에 국한되어 있지 않음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오해를 사게 된 데는 최근의 진관사 템플스테이부터 대구 삼덕동의 임재양 외과, 서울 가회동의 여러 채의 한옥 등 표면적으로 드러난 작업물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 한옥은―정확히는 현대한옥― 현대건축이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 중의 하나일 뿐 전통의 재현과는 거리가 멀다. 건축주의 삶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한 하나의 틀로써 한옥은 그저 존재할 따름이다. 이는 그곳에서 살아갈 개인의 기억과 생활양식에 따라 콘크리트집일수도 혹은 목구조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



“결국은 사람의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현대한옥 작업과 몇 년째 진행 중인 도시답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건축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이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죠. 집에서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도록 돕고요. 한옥의 현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 거주자인 건축주와 세부사항을 상의한 뒤 편리하게 지낼 수 있도록 기능성을 더해 변형하는 것이지요.” 건축주가 특별히 요구하지 않는 이상 한옥을 ‘한옥답게’ 재현하는 일은 그의 작업에서 논외의 대상이다.

응답하라 1930

 


얼마 전 리노베이션을 마친 가회동 31-31번지 한옥 역시 앞서 언급한 작업방향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도시와 공간에 켜켜이 싸인 시간의 흔적을 애써 지우는 대신, 그것을 존중하고 현재의 것과 함께 품으려는 시도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뤄졌다.

 


그 결과, 31-31번지 한옥에는 3개의 시간의 축이 공존한다. 1930년대 중반의 초기 모습과 1960년대 한 차례의 보강 이후, 그리고 2013년 현대까지 세 축이 모여 근사한 ‘시간의 집’ 한 채가 세워진 셈이다. 한때 집집마다 유행처럼 번졌던 30년도 더 된 나왕 문짝을 그대로 두되 단열을 위해 창호 시스템을 보강한 것처럼 낡은 것과 새 것이 한 공간에서 조화롭게 녹아들어 있다.  

 


대청 앞에 깔린 촌스러운 타일 바닥이며 마당 한가운데 비스듬히 누운 감나무, 붉은 벽돌로 쌓은 오래된 담벼락 모두 한옥의 지난 시간을 증언해 주는 몇 안 남은 존재들이다. 특히 담벼락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다시 시공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고집을 부려 남겨둔 것이다.  

 

 


“현대한옥의 작업은 영화 <설국열차>의 제작과정과도 닮은 점이 있어요. 레스토랑, 온실, 학교 교실처럼 감독이 열차 칸마다 서로 다른 역할과 분위기를 부여했듯이, 한옥 또한 제한된 공간과 규칙 안에서 끈질기게 차이를 만들어내야 하죠. 얼핏 보면 대부분의 한옥이 비슷하게 느껴지겠지만 디테일을 통해 다름을 주려고 합니다.” 조정구 소장의 경우라면 시간의 흔적을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차이를 구현하는 식일 테다.


한편으로는 “무엇을 살리고 또 없애야 하는지를 정리하는 작업이 어렵다.”라고 고충을 털어놓는 조정구 소장의 말처럼 오래되었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보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예를 들면, 지금의 별채 옆에 있었던 장독대는 그늘 때문에 과감하게 없애 버렸다. 장독을 가지고 있는 집이 많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크지만 실용성을 먼저 고려했다.


 

평일임에도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으로 복닥복닥한 골목과는 달리 한옥 내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공기는 차분하고 실내는 아늑해 보인다. 마당을 중심으로 ㄱ자 형태의 건물 한 채와 맞은편의 별채가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어서일 테다. 낮게 틀어둔 보일러 덕분인지 훈기마저 돌고 있어 한옥은 추울 것이라는 오래된 선입견이 단박에 깨졌다. 연구실 겸 손님맞이를 위한 용도로 쓰일 계획이어서인지 일반적인 주거공간보다는 살림살이가 단출하다.

 

건축주가 수집한 고가구를 공간마다 넘치지 않게 제자리를 찾아 놓아둔 것이 전부다. 불필요한 가전제품과 소품들을 덜어내고 나니 한옥의 단아한 공간감이 오히려 증폭됐다. 넓어진 공간만큼 더 많은 짐들을 꾸역꾸역 이고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한옥은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고 또 비울 것인지 조용히 묻는다.

 


조정구 소장은 ‘마당’이 우리 집의 원형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이야기해왔다. 이곳에서 우리는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을 깨닫는가 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아주 약간의 공간에 감사해하며 텃밭을 가꾸고 식구들과 이를 정답게 나눌 기회를 얻는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가기 위해 신발을 신고 가로지르는 행위의 낯설음은 설렘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이렇듯 마당이 중요한 까닭은 그곳에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결국은 사람의 삶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구가도시건축 조정구 건축가

 

글 송은정 기자 | 사진 박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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