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집을 돌아 일상의 삶을 마주하다...나카무라 요시후미 <다시, 집을 순례하다>

건축 / 전상희 기자 / 2021-07-12 00: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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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룡점정(畵龍點睛). 용은 눈동자를 찍을 때 완성되고 집은 사람이 살 때 완벽해진다. 아무리 멋진 집이라도 말이다. 바로 이번엔 그 이야기다. 일본의 주택설계 전문가인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전 세계의 위대한 건축가들이 지은 주택을 순례하고 <집을 순례하다>는 책을 펴낸 바 있다. 이때에는 집에 초점을 맞췄더랬다. 하지만 이번엔 사람으로 완성되는 집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시, 집을 순례하다>에 담았다.

 

어중간한 동네다. 재개발된 것도 아니고 시골 냄새를 풍기는 것도 아니다. 한때 유행하던 전혀 서양적이지 않은 서양식 2층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찬 그런 동네,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은 모습으로 줄맞춰 늘어서있는 그렇고 그런 동네다.


재미있는 일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동네에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집이 한군데쯤은 있기 마련이다. 골목에서 가장 긴 담벼락을 차지하고 있던, 커다란 개가 늘 컹컹거리며 겁을 주던, 친구들과 나란히 서도 가릴 수 없는 커다란 대문을 가진 부잣집이다. 도대체 누가 살고 있을까?


용기를 내 커다란 대문의 초인종을 눌러 집 구경을 청한다. 당돌한 아이들의 침입에 주인아주머니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재미있는지 연신 깔깔대고 웃으신다. 확실히 방의 개수부터 다르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서재와 옷방까지, 온 가족들이 한 방에서 지지고 볶아야 하는 집과 달리 가족수대로 아니 가족수보다 더 많은 방들이 있다. 조심스레 방방마다 돌아다니며 빠끔히 들여다본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짜릿한 공기가 가득하다.


사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공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은밀하면서도 친근한 공기다. 다른 사람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짜릿하면서 어색한, 동시에 나와 결국 다를 바 없다는 안도감의 내음이랄까. 저자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동네 집 구경의 기억을 들추어낸다. 그리고 구경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해봤던 멋진 집으로 손을 잡아 이끈다. 20세기 건축의 거장들이 짓고 직접 살기도 했던 곳들을 순례하며 있었던 모든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것도 아주 친절하고 디테일하게.


직접 찍은 사진들을 펼쳐들고 수첩에 적은 그림을 보여준다. 고양이와 개가 드나들던 통로까지 세심하게 그려져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도 그때 느꼈던 생각과 감정의 흐름을 모두 포함해 들려준다. 마치 그의 눈을 바라보며 정말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전편 <집을 순례하다>도 그랬다. 르 코르뷔지에의 어머니의 집, 루이스 칸의 에시에릭 하우스, 알바 알토의 코에타로 등의 거장이 지은 ‘작은 집’에 대한 이야기는 역시 친절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르다. 이야기하는 방법은 같지만 거리감이 다르다. 뭔가 더 뜨겁고 좀 더 살갑다. 그건 집을 건축의 시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생활의 시점에 초점을 두고 바라봤기 때문이다.


집은 살기 위해 짓는다. 위대한 건축가들의 작품도 사람이 살아갈 때 완성된다. 안도 다다오, 찰스 임스와 레이 임스 부부, 찰스 무어, 피에르 샤로, 루이스 바라간, 안젤로 만자로티 브루노 모라스티, 한네 키에르홀름과 파울 키에르홀름, 필립 존슨. 이상의 8명은 모두 20세기 중후반 건축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긴 거장들이다. 저자는 이들의 집을 순례하며 그들이 짓고 직접 살면서 완성시킨 서로 다르지만 결국 같은 완전한 건축을 소개한다. 이 집들은 모두 거주자가 주인공이 되어 생활인으로서 그 집에서 일상을 누리며 살아 숨 쉰 곳이다.

일상의 삶이 주인공이 되는 집


필립 존슨은 “건축을 배우는 유일한 방법은 길을 나서서 직접 그 건축물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20대 건축을 공부하며 첫 작품으로 부모님 집을 지은 바 있다. 하지만 초보 건축가의 자의식과 경쟁의식, 시행착오를 겪으며 결국 부모님 집이 실패작임을 인정했다. 그는 이 뼈아픈 깨달음으로 건축은 체험하며 배워야 한다고 믿게 됐다. 그리고 대학시절부터 자신을 매료시킨 20세기 명작 주택을 찾아 길을 떠났다.


도쿄에서 오사카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를 지나 멕시코를 거쳐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덴마크까지. 카메라와 스케치북 하나 들고 7년 동안 떠났던 주택순례는 말 그대로 순례길이 되었다. 그동안 믿어온 좋은 건축, 집을 짓는 옳은 길에 대한 신앙은 거장의 숨결이 오롯이 느껴지는 집들을 찾으며 깨어지고 재정립된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산티아고로 떠났다 돌아오는 순례자들처럼 그는 그렇게 떠났고 돌아왔다.


전편의 순례를 마치고 잠시 쉬어갈 즈음, 그를 다시 순례길에 오르게 한 것은 안도 다다오의 손편지였다. 늘 혁명적이고 독특한 디자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곤 하는 그의 건축 중 특히나 건축가의 횡포라며 완성 당시 엄청난 비난을 받은 곳이 있었다. 출입을 위한 구멍 하나만 반듯하게 뚫려 있는 무뚝뚝한 콘크리트 상자와 같은 ‘스미요시 연립주택’이다. 안도 다다오는 직접 손편지를 써 그 집으로 저자를 초대했다. 외관만으로 충분히 오해를 살 만한 이 집은, 하지만 사람들의 비난과 달리 25년째 거주자가 애지중지하며 생기를 불어넣어 따뜻한 일상이 가득 채워진 곳이었다.


또 다른 순례길은 저자가 방에 붙여놨던 사진에서 시작되기도 했다. 찰스 무어가 동료들과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춥고 황량한 해안 낭떠러지 위에 지은 집합주택 ‘시 랜치’. ‘바다의 목장’이라는 뜻을 가진 이 집합주택은 벼랑 끝에 비스듬한 경사면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면서 10개의 정사각형 유닛으로 만들어졌다. 그 중 한 곳에서 평화롭게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찍힌 사진 한 장이 바로 저자를 이곳으로 이끈 것이다. 

 

이번 순례에서는 그 집에서 직접 하룻밤을 보내며 더욱 생생하게 일상의 감동을 전했다. 삶이 모두 다르게 흐르듯 10개의 유닛은 모두 다른 모습으로 서로 연결되어 존재했다.


삶처럼 흐르는 주택이 제일 좋은 것만은 또 아니다. 멕시코가 낳은 세계적인 주택과 랜드스케이프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은 멕시코시티에 자신이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시간을 보낸 집을 지었다. 집은 육체뿐만이 아니라 마음이 편히 살 수 있는 장소이어야 하고 자기 자신과 곧바로 대면하는 장소여야 한다고 주장한 그의 집답게 이곳은 조용히 서 있는 듯 설계되었다. 

 

이 집에 담고자 했던 것은 평온과 침묵, 그리고 추억이었다. 이 뚜렷한 철학은 그 공간의 중심에 침묵으로 평온을 만들어냈고 선명한 색채로 추억을 쌓았다. 멈춰 서서 집을 바라봄으로써 자신을 마주할 수 있어야 진정한 집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그 외에도 유리렌즈를 통해 자연광을 최대한 끌어들여 ‘유리의 집’이라고도 불리는 피에르 샤로의 ‘메종 드 베르’, 3년 동안 27번이나 설계도를 고친 끝에 완성해 직접 살다가 마지막 숨까지 거둔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 주택은 단지 잘 만들어진 ‘용기’에 지나지 않는다며 흔한 기성품으로 만든 ‘찰스 임스, 레이 임스 부부의 일직선 집’, 전나무가 무성한 해발 1500m에 돌로 벽을 쌓아 완성한 조립식 건축 ‘까사 그랑데’, 그리고 덴마크를 대표하는 여류건축가가 36년째 살고 있는 ‘키에르홀름의 집’까지. 그의 순례길은 일상에 대한 고민과 삶에 대한 철학이 집이라는 형태로 완성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으로 보여 진다.


건축에서도 특히 집만큼 인간의 삶에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삶을 지키기 위해 집을 짓고 집을 짓기 위해 순례길에 오른다. 그리고 그 발걸음을 따라 가다보면 결국 우리는 출발 지점으로 돌아와 집을 짓고 삶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먼저 순례길을 다녀온 그는 두렵지만 기꺼이 순례자의 길을 떠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통해 한 줄기 용기와 위로를 건넨다. 정말이지 이 남자, 참 다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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