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모든 책이 들어갈 만한 방대한 공간이 필요해요.” 이슬람 역사를 연구하는 젊은 학자가 요구한 것은 한 가지였다.
일본 오사카의 주택가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목조주택 ‘셸프-팟(Shelf-Pod, 君府亭)’의 외관은 일본의 여느 주택처럼 소박하다. 흙벽 위에 삼나무 판자를 빈틈없이 덧댄 외벽은 햇빛과 바람에 그을려 풍부한 갈색을 띠고, 소박한 삼각 지붕은 주변 주택과 위화감없이 어우러져 있다. 멀리서 보면 작은 새집처럼 보인다. 자갈이 깔린 좁은 길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면 소박한 외관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이곳은 책의 성채다.
자신의 개인적인 연구 공간을 짓기에 앞서 건축주의 요구 사항은 오로지 책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슬람 역사를 연구하는 젊은 학자는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몇 톤 분량의 장서 컬렉션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또한 이 책들은 습기와 곰팡이로부터 안전하게 보관되어야 했다. 건축주의 요구에 화답하기 위해서는 가구를 뛰어넘는 건축적 발상이 필요했다. 건축가 카즈야 모리타는 집안의 모든 벽을 책장으로 만들어 이러한 문제를 간단히 돌파했다.
층고가 높은 복층 주택의 내벽은 온통 격자무늬 책장으로 가득 차 있다. 응접실은 물론 침실과 부엌, 심지어 욕실에까지 예외가 없다. 두께 25mm의 긴 소나무 합판을 전통창호를 짜듯 가로 세로로 겹쳐 짜 만든 이 책장은 지진에 잘 견디면서, 벌집처럼 한정된 공간 안에 최대한 많은 책들을 품을 수 있도록 고안됐다.
책장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흰 벽은 지역에서 채취한 회 반죽으로, 나무와 함께 자연적인 조습 효과를 내 습기로부터 책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 한편 책장의 격자무늬는 이슬람 건축의 기하학적 양식을 떠올리게 하는데, 살롱 한 벽에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이슬람 서체가 집안의 분위기와 위화감 없이 어우러지고 있는 이유다.
집안을 온통 책장으로 채웠지만 결코 산만해 보이지 않는 것은 다분히 나무의 힘이다. 공간을 은은하게 밝히는 소나무의 차분한 빛깔은 이곳에 머무는 누구나 편안하게 책을 읽고 사색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이끌고 있다.
카즈야 모리타 | 교토대학 공학부 건축학과와 동대학원에서 수학했다. 2000년 모리타 카즈야 건축 설계사무소를 설립하고 교토를 거점으로 일본과 해외 각지의 공간을 디자인하고 있다. ‘셸프-팟’으로 오사카 건축 콩쿨 신인상을 수상했다.
[저작권자ⓒ 우드플래닛.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