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가 기다리는 계단

김수정 기자 / 기사승인 : 2024-07-22 16:20:35
  • -
  • +
  • 인쇄

 

런던에 사는 애서가를 위해 건축 스튜디오 플랫폼파이브는 특별한 서재를 만들었다. 탑처럼 상승하는 독특한 외양은 좁은 공간의 한계가 만들어낸 뜻밖의 성취다.

이 집에서 2층으로 가려는 사람은 누구나 이 계단을 거쳐야 한다. 손님을 초대했다면 조금 긴장해야 할 수도 있겠다. 계단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 주인의 취향과 기호가 낱낱이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런던에 있는‘북타워하우스(Book Tower House)’는 좁은 대지 위에 지어진 아담한 2층 주택이다. 애서가이자 까다로운 취향을 가진 건축주는 수백 권에 달하는 장서를 효과적으로 수납할 수 있으면서 한 편의 예술품처럼 장식적인 서재를 원했다. 건축가는 좁은 공간이라는 제약 위에서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뜻밖에도 계단에서 찾았다. 잉여 공간으로 남기 마련인 계단과 계단참을 서재로 만든 것이다.

계단과 맞붙은 벽에는 키가 큰 붙박이 서가가 연달아 붙어있다. 오크 베니어합판으로 만든 서가는 새하얀 벽과 어우러져 밝고 산뜻한 분위기를 풍기고 계단의 오르막을 따라 리드미컬하게 상승한다. 화이트와 밝은 나무색을 주조로 심심한 듯 차분하게 꾸며진 공간은 이 독특한 서가로 대번에 다이내믹해진다.  

 


서가에 촘촘히 꽂혀 있는 책들을 구경하며 계단 끝까지 오르고 나면 고심 끝에 고른 몇 권의 책들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자그마한 책상과 마주하게 된다. 북타워의 꼭대기에 마련된 이 책상은 책을 읽거나 이런저런 공상에 잠기기에 좋은 장소다. 해가 떠있는 낮 시간에는 맞은편 창문으로 희고 따스한 햇살이 들어와 별다른 조명을 켜지 않아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데 무리가 없다. 생각이 복잡할 때는 그저 커피잔 하나만 놓고 창밖을 바라봐도 좋다.  

 


옥상이든 산꼭대기든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바라보면 신기하게 생각이 맑고 단순해진다. 이곳에 사는 사람은 이따금 이 북타워에 스스로를 유폐시키고, 탑 위의 라푼젤처럼 복잡하게 꼬인 생각의 타래를 치렁치렁 늘어뜨리기도 할 것이다.

플랫폼파이브(Platform 5 Architects) | 2006년 영국에서 설립되어 교육 시설, 상업 시설, 문화 시설, 개인 공간 등 다양한 공간을 디자인 하고 있다. 현대적인 재료, 앞선 기법, 명료한 콘셉트를 바탕으로 우아하면서도 기능적인 공간을 선보이고 있다.

 

[저작권자ⓒ 우드플래닛.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AD

관련기사

이해와 공존, 관계하는 삶을 조명…김선영 조각가 ‘NET’2024.06.07
마리오네티스트 김종구...반짝이는 줄을 따라 춤을 추었네2024.06.26
작은 것이 아름답다2024.05.20
징검다리로 이어진 티크주택2024.07.10
나카무라 요시후미 <건축가가 사는 집>...최고의 건축주는 누구2024.07.10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