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각인형 작가 차수호...목각인형들과 함께하는 환상특급 우주여행

태기수 리포터 / 기사승인 : 2022-01-05 14: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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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수호의 목각 애니-월드로 들어서려면 ‘환상특급’을 타고 ‘우주 게토’로 들어갈 마음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준비는 간단하다. 그저 목각인형들의 목소리를 실제처럼 들을 수 있는 약간의 동화적 상상력만 있다면 준비 완료. 출발을 알리는 환상특급 열차의 기적이 울린다.

 

 

 

차수호는 목각인형들을 등장인물 삼아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다. 신화와 전설의 세계에서나 마주칠 법한 캐릭터들, 지상과 우주의 경계를 떠도는 듯한 캐릭터들, 시각적 충격으로 인간의 꿈과 현실을 풍자하는 캐릭터들까지…. 차수호의 작품세계는 이처럼 다종다양한 캐릭터들로 구축한 판타스틱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한다.



“판타스틱 월드로 출발합니다”

“웰컴, 웰컴!! 차수호의 환상특급 열차에 승차해주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이 열차의 기관사는 작가 차수호, 승무원은 작가가 깎고 다듬어 생명을 불어넣어준 목각인형들입니다. 먼저 작가님의 간단한 본인 소개와 함께,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채 세상에 나온 목각인형들의 내력에 대해 들어볼까 합니다. 작가님, 앞으로 나와 주세요.”

 

 

하지만 작가는 말이 없다. 수줍은 미소로 말을 대신하며, 자꾸만 목각인형들 뒤로 숨으려 한다. 차라리 목각인형들의 얘기를 들어보라고 눙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20여 년 목각인형 작업에 몰두하며 그 캐릭터들과 나누는 교감에 익숙해져버린 탓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작가가 빚어낸 목각인형들과 대화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겠다. 저들이야말로 작가 차수호의 아바타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 영화 <레지던트 이블>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는 <앨리스>와 머리에 투구를 쓴 나비소녀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차수호 작가가 너희들 아버지 맞지? 아버지에 대해 말해줄 수 있겠니? 그리고 너희들에 대한 얘기도 듣고 싶어”


그런데 이런 낭패가 있나. 앨리스는 방독면을 쓰고 있고 나비소녀의 입은 굳게 다물려 있다.

“이 녀석들에게 말을 건네려면 상상과 공감의 복화술을 사용해야 합니다. 어렵지 않아요. 한번 해보세요.” 필자의 난감함을 알아차린 작가가 넌지시 귀띔해준다.

상상과 공감의 복화술이라….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공감의 복화술을 통해 위의 두 캐릭터와 다른 목각인형들로부터 얻어낸 정보를 토대로 재구성해본 작가 차수호의 상상의 궤적이다.

 



상상의 장대높이뛰기로 비상하다

작가의 고향은 전남 완도이다. 대부분의 섬소년들이 그렇듯, 아마 그도 짙푸른 바다를 벗 삼아 유소년기의 꿈을 키워왔을 것이다. 작가의 우주적 상상력의 근원은 우주처럼 펼쳐진 망망대해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을까. 소년 차수호는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즐겼다고 한다. 전기수(傳奇叟)처럼 기존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는 게 아니라,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스토리의 집을 짓는 이야기꾼의 자질을 타고났던 셈이다.

바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이다. 그러나 호기심 가득한 소년의 꿈은 바다의 우주에만 머물지 않고 실제의 우주 공간으로 한없이 뻗어나갔다. 고향바다의 뱃고동 소리에 실려 우주의 지평으로 날아오른 소년의 꿈은 조선대 우주항공공학과 진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우주 공간을 유영하던 상상력을 맘껏 펼치기엔 제도권 대학이 제공하는 무대는 너무도 좁고 볼품없었다. ‘우주항공’은 입시 마케팅의 광고카피에 불과했을 뿐, 작가는 대학에서 항공도, 우주의 자취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학과 건물 벽에 우주항공 벽화를 그리는 것으로 상상력의 허기를 달래던 작가는 졸업 후 애니메이션에서 상상의 돌파구를 찾았다.

 

 

 

작가는 애니메이션 제작사에 들어가 원화작업도 하고 프로덕션 단계의 기획 일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 어느새 서른을 넘긴 나이가 되어 있었다. 소년기의 꿈은 퇴색한 지 이미 오래고, 불투명한 미래와 불안한 현실 사이에서 삶의 좌표를 잃어버린 무기력한 어른. 그것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발견한 작가의 초상이었다.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한 시점이었다.

그러다 서른 두 살 무렵에 우연한 계기로 목공예의 세계를 접하게 된 작가는 비로소 상상의 장대높이뛰기로 비상할 수 있었다. 나무는 새로운 가능성이자 머릿속 상상을 현실로 재현할 수 있는 최상의 도구였다. 현실과 환상, 지구와 우주의 경계지점에서 호출한 캐릭터들을 생생하게 비춰 보여주는 스크린이기도 했다. 작가 차수호에게 있어 나무는 바다와 동급의 우주였다.

 

 

‘바다’에서 출발한 소년의 꿈이 우주로 날아올랐다가 어른이 되어 ‘나무’라는 또 다른 우주정거장에 안착한 셈이랄까. 소년기 때부터 발휘해온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가다듬은 우주적 상상력이 목공예와 접목되면서 작가 차수호는 득의의 예술영역을 확보하고 확장해 나갔다.


2004년 5월 전업을 선언한 작가는 충북 괴산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작업에만 매진했다. 그리고 5년 동안의 고독과 침묵 속에서 빚어낸 목각인형들을 모아 <서부리 환상특급>이라는 테마로 첫 번째 전시회도 가졌다. 괴산읍 서부리에 있는 오래된 정미소를 빌려 마련한 개인전은 몇몇 눈 밝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고, 이는 곧 2011년 3월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두 번째 전시회 <장지역 우주 게토>로 이어졌다. ‘환상특급’을 타고 ‘우주 게토’를 개척한 것. 이것이 전업 선언 이후 작가 차수호가 밟아온 상상의 궤적이다.  

 



차수호의 환상특급 열차

작가의 말에 따르면 ‘우주 게토’는 “우주의 디아스포라들이 지친 몸을 기대는 작은 게토, 은하의 유랑자들이 잠시 쉬어가는 간이역”이다. <은하철도 999>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이렇듯 작가가 창조한 인물들은 대부분 공상과학을 다룬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에서 마주칠 법한 캐릭터들이다.

반면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일상을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을 형상화한 작품도 여럿 눈에 띈다. 자신이 토끼를 치어죽이고도 모른 척 딴전을 피우는 데스마스크 쓴 인물이 등장하는 <로드 킬>은 생명에 대한 불감증을 앓고 있는 현대인의 문제를 충격적인 장면 한 컷으로 제시한다. 24시간 TV를 켜둔 채 소파에 앉아 멍하니 다른 곳을 응시하는 목각인형은 무감각한 현대인의 한 초상에 다름 아니다.

 

각각의 캐릭터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굳이 그 사연과 스토리들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작가는 작품 속 캐릭터들의 사연이 관객들의 상상으로 연결되기를 희망한다. 관객들의 상상을 통해 다양하고 새로운 이야기로 완결되는, 이야기를 통한 소통을 꿈꾸는 것이다. 관객들의 상상력으로 확장되며 완결되는 구조. 그의 작품세계가 지닌 뚜렷한 개성은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차수호 |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조선대 우주공학과를 졸업했다. 2008년 제1회 목각인형 공모전에서 금상을, 이듬해 열린 제2회 공모전에서는 은상을 수상했다. 두 번의 개인전을 거치며, 애니메이션 서사구조를 갖춘 동화적이고 몽상적인 캐릭터 작품들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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