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병원의 모습은 하나같이 똑같다. 문제는 구체적으로 이를 표현하고 싶어도 마땅히 떠오르는 특징조차 없다는 점이다. 그저 아이들의 울음소리, 미간을 찡그리게 하는 약품 냄새만이 병원의 이미지를 상기시킬 뿐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바라보자면, 장순각 한양대 교수가 설계한 미래메디컬센터는 시각적인 측면에서 여타 의료기관과 확연히 차이가 있다.
통째로 옮겨놓은 공룡의 갈비뼈
두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미래메디컬센터의 내부는 공룡의 갈비뼈를 형상화한 거대한 계단 구조물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2층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터널 형태의 갈비뼈를 통과해야 하는데, 마치 사람의 뱃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오묘한 느낌에 빠져들게 한다. 이 같은 해부학적 이미지의 상상력은 생명의 시작점인 자궁으로까지 이어져 의료공간 고유의 성격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인조 대리석이 풍기는 차가운 기운 역시 같은 이유로 상쇄되는 효과가 있다.
설계에 있어 사람들의 이동 동선을 고려하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였다. 검진 순서에 맞춰 진료실을 계속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포메이션 데스크를 시작으로 탈의실과 대기실 그리고 여러 진료실을 거치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일련의 움직임은 언뜻 인체 내부의 흐름과 닮았다. 몸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각각의 생체기관을 통과하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순환하는 방식에서 힌트를 얻어 공간은 디자인되었다.
공간의 다양한 변주
공간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계단을 중심으로 복도를 따라 한 바퀴를 돌게 되면 1차적으로 필요한 진료실을 모두 훑게 된다. 이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코너를 꺾을 때마다 시야에 변화를 준 시각적인 재미다. 복도의 좌우 양쪽에 세워진 벽이 처음에는 일자로 마주 보고 있었다면, 그다음 코너의 복도에서는 사다리꼴 모양으로, 다시 다음에는 뒤집힌 사다리꼴의 생김새로 이루어진 식이다. 장순각 교수가 심어둔 또 다른 디테일한 재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바닥재와 벽면 마감재의 사선 표현이 그것이다. 대기실에서 진료실, 검사실로 걸어 들어가는 방향과 바닥재의 나뭇결 방향을 일치시킴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의 이동 동선을 유도했다. 벽면 역시 동일한 방식이다. 다음 검사 장소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마감재의 나뭇결이 향하는 방향과 이동 동선을 통일시켰다.
병원임을 잊게 하는 무엇
센터 내부에는 건강검진을 앞둔 고객들의 불안한 심리를 차분히 가라앉히기 위한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대기자실과 상담실이 위치한 공간에는 언제나 자연광이 들어올 수 있게 큰 창문을 냈다. 9층과 10층 높이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도심 전망은 이곳이 병원임을 잠시나마 잊게 한다. 전체적인 디자인에서 곡선을 주로 사용한 것 또한 한몫했다. 이를테면, 두 면이 직각으로 만나는 지점의 모서리를 완만하게 처리하는 방식은 간접적으로나마 긴장을 완화시켜준다.
나무가 주는 포근한 감성은 이곳에서도 여지없이 통했다. 오크와 월넛이 쓰인 원목마루와 동일한 수종의 무늬목으로 마감한 벽면은 구조물의 조형미를 강조하기 위해 선택한 화이트톤의 배경과 조화를 이룬다. 자칫 지루해 보일 수 있는 순백의 컬러는 의료기관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한 발 나아가 외려 세련된 갤러리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의자와 테이블 등의 가구는 기성 제품을 구입하는 대신, 공간의 콘셉트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제작 주문했다. 나무와 패브릭을 기본 소재로 하여 낮은 채도의 컬러를 입힘으로써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느낌을 받도록 했다.
공룡 뼈의 비율을 고스란히 옮긴 중앙 계단과 아트워크, 디테일한 디자인 등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 미래메디컬센터는 피하고 싶은, 혹은 피해야 할 공간으로 인식되는 의료기관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한 꺼풀 벗겨내는 데 성공했다.
사진 제공 : 제이이즈워킹
[저작권자ⓒ 우드플래닛.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