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낡은 의자와 신혼가구

이현수 기자 / 기사승인 : 2022-04-25 00: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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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새로운 무언가를 들여 놓거나 만난다는 것은 가구 고르는 일처럼 까다롭기도, 무슨 버스를 타며 어디에서 식사를 하고 어떤 커피를 마실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기도 하다. 그건 아마 지낸 시간만큼의 이야기들과 함께 낡아버린 가구를 버리지 못한다거나 익숙해진 작은 단골 가게만 찾아 앉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일 지도 몰라.

내 어머니에겐 파란 페인트가 조잡하게 칠해진 작은 의자 하나가 있었어. 그리고 기억 속의 그 의자엔 늘 무엇인가 올려져 있었어. 화분이거나 다음 날을 위해 절여 놓은 배추 양동이이거나 빨아 말려둔 운동화 같은 것들. 그래서 어떻게 생긴 어떤 의자였는지를 말하기보다 그 물건들과 관련된 기억이나 냄새, 그날의 날씨에 대한 것들을 말하기가 훨씬 쉬워. 그리고 그것을 말하는 것이 그 의자에 대해 더 잘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사람은 가구를 닮았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돼

누군가 내게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다면 한참 뜸을 들이고도 잘 대답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 동안 당신은,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거나 당신을 통해 내가 느꼈던 여러 가지 감정과 이야기를 빼곤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거든.

“어떤 사람인가요?”라고 물으면, “언젠가 겨울에요. 제가 무작정 그 사람을 만나러 나갔었는데요,“로 시작해야 하는, 그 시간 곳곳의 것들. 그것들과 함께 익숙해져 우리만 알 수 있는 그 특별함들, 감정과 느낌과 감촉들.

오랜 시간을 보내도 그것이 쌓이지 않는 사람이 있고 짧은데도 자꾸 생기는 사람이 있다고 어머니가 말했어. ‘제 자리가 어딘 줄 알고 그곳과만 타협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라. 누구에겐 그저 그런 장식품이거나 멋들어진 귀중품이거나에 상관없이, 네 곁에서 가장 제 자신다울 수 있으면서 계속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런 사람은 그런 가구처럼 쉽게 지겨워지지 않는다. 공간을 만들고 비울 줄 아는 사람을 만나라. 그런 사람과는 많은 이야기도 필요 없다. 가만 보고만 있어도 이야기가 담긴다. 그런 사람은 그런 가구처럼 오래 지낼수록 더 특별해지기 마련이다. 사람이건 가구건 알 수 있다. 난 네가 겉에 현혹되지 않고, 이런 저런 이유를 붙이지 않아도 저건 내 거구나 싶은 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다. 그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당신을 만났을 때 나만 볼 수 있는 특별함이 당신에게 있고, 당신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그것이 우리를 불편하게 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언제나 뭔가 허전한 마음으로 살게 되었겠지. 그래서 참 다행이야. 당신을 만났다는 것, 그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야. 당신이 나를 보고, 내가 당신을 보고 우리가 서로의 소리를 들었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하잖아. 심지어는 찻집, 공원에 가도 둘이 마주 앉은 그 자리가 그들의 공간으로 바뀌길 바래. 그건 참 신기한 일이야. 낯설음을 낯익음으로 채우려는 행동, 그런 교감들, 기억하고 나누고 남겨두려 하는 모든 것들.

어머니의 모진 습관들

이제 우리의 삶에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공간이 있겠지. 그리고 그런 우리 곁에서 그 공간을 채우고 우리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가구들을 고르며 나는, 당신과 나를, 어머니를, 어머니의 의자를 자주 생각하게 될 것 같아. 그리고 두렵기도 해.

어머니의 작은 의자는 늘 그 자리에 놓여 있었어. 그녀는 그걸 보고 앉아 한 두 시간을 보내곤 하셨어. 어느 날은 그 위에 올려진 운동화를 보는 것도 같았고, 말라가는 붉은 고추를 들여다보는 것도 같았어. 당신이 우리 집에 왔던 날, 어머니는 의자 위에 당신이 들고 온 굴비 상자를 올려놓았더라. 그리고 그쪽으로 시선을 자주 돌리셨어. 식사를 하는 사이, 과일을 준비하며 잠깐씩, 당신이 신발을 신고 인사를 드리는 틈마다.

그녀에겐 아마도 그것이 당신을 자신의 식구로 받아들이는 일종의 의식 같은 거였는지도 몰라. 어울림을 느끼려고 했던 걸까? 차마 여쭤보지는 못했어. 잠깐씩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어머니는 기쁘고, 슬퍼 보였거든. 그건 어떤 느낌일까? 나중에 우리가 딸을 낳고 길러서 그 아이가 떠나야 할 때가 되면 이해하게 될까? 난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언가의 시작이 다른 것과의 끝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은 건 그때였어. 그리고 어머니의 의자는 어쩌면, 그녀가 차마 끝낼 수 없었던 지나온 것과 지금의 것을 연결해주는 어떤 고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 의자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장난처럼 만들어 주셨던 거래. 어머니는 아버지를 현재의 우리와 늘 함께 두고 싶었던 것 같아. 아버지가 가지지 못하셨던 수많은 현재형의 모든 것. 자라는 아이들, 저녁 반찬이나 김장, 하루의 때가 묻은 빨래들, 가끔은 화분이거나 제철 과일, 그리고 당신.

버려야 할 것들, 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

시작은 참 이상해. 생각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보게 되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 당신은 내게 낯선 사람이었어. 어머니의 의자는 처음 그녀에겐 아무 것도 아니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지금은 절대 잃어버릴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있는 거지.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해서 되는 건 아니야. 우리도 모르게 내 일부가 되어있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아.

우리가 꾸며 나갈 우리의 공간이 우리에게, 우리의 아이들에게 그런 의미가 되면 좋겠어. 그래서 더 신중해지게 돼.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려고 애써. 마음 내키는 대로 쉽게 바뀌는 공간보다 조금씩 마음과 이야기가 쌓이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당신과 나의 이야기가 그랬듯이. 내 어머니와 그녀의 의자가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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