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아티스트 Eleanor Lakelin : 세포들의 지질연대

Craft / 배우리 기자 / 2018-03-30 23:55:56
  • -
  • +
  • 인쇄
나무는 그 자체로도 예술이지만 어떤 작가와 만나냐에 따라서 자신이 축적된 이야기를 최대한 풀 수 있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한다. 그런데 서쪽의 섬나라에는 나무의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사진 Eleanor Lakelin  작가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치즐과 가우지를 가지고 회전하는 목공선반에서 자연의 윤곽을 만든다.

 

버(burr) 혹은 벌(burl)이라고 불리는 혹자리, 일반적인 무늬결이 아닌 비정형의 비정상적인 이 무늬의 아름다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아티스트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혹자리를 하나하나 살리는 엘레노어 레이클린의 작품에서는 한 나무에 깃든 수백 가지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작가다. 


그녀가 조각하는 방법


 

 

레이클린은 그녀의 조각이 가능하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자국에서 난 나무로만 조각한다. 워낙에 임산물이 풍부한 나라에서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부러운 ‘지속가능’이긴 하지만 말이다. 특히 영국, 웨일즈, 스코틀랜드의 그녀가 선호하는 몇몇 제재소에서 나무를 직접 골라 큰 나무를 자신이 작업할 크기와 모양으로 가공하여 스튜디오로 데리고 와 세밀한 후반 작업을 하게 된다. 그녀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치즐과 가우지를 가지고 회전하는 목공선반에서 모양을 만들어간다. 어떤 부분은 부드럽게 깎아내고 어떤 부분은 질료의 신비로움과 미를 강조하면서 날것으로 혹은 손길이 닿지 않은 채로 남긴다.


선반작업이 끝나면 그녀는 무릎에 작품을 올리고 전통적인 끌이나 회전하는 금속 버를 사용하여 나무의 질감과 그 안에 숨은 겁(劫)을 탐험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 나무와 맞닿은 채 여러 시간을 보내다보면 감각을 나누는 친밀한 관계가 된다. 작품을 만지고 들어보는 제 3자도 나무와 작가가 주고 받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작가의 말마따나 그렇게 조각된 화병에서는 “말 그대로 나무로부터 서서히 성장하고 떠오르는 마법적인 것이 있다.”


자연의 윤곽

 


작가는 성장, 투쟁, 질병, 긴장, 그리고 우리의 생을 초월한 수세기의 역사를 가진 살아있고 호흡하는 물질인 나무의 매혹에서 헤어나오지 못한지 오래다. 나무가 스트레스에 대해 반응하거나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수십년 혹은 수세기에 걸쳐 형성된 세포의 증식으로 생겨난 희귀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작용인 혹자리는 그녀가 특히나 사랑하는 질료이자 형상이다. 혹자리의 질감은 그녀에게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이면서도 동시에 세속적이지 않은 어떤 것으로 다가온다.

 

‘자연의 윤곽(Contours of Nature)’ 시리즈에서 주로 마로니에 나무의 혹자리를 사용했다. 무늬가 뒤엉킨 이 혹자리에서 얻은 영감으로 나무라는 재료 자체에 존재하는 유기적인 혼란을 드러내기 위해 나무껍질을 벗기고 조각적 그릇이나 기하학적 형태를 사용해 질서와 혼란 사이의 긴장을 탐구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물질의 ‘영혼’을 찾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그 과정은 사실 매우 험난하다. 작은 구멍에 가우지나 끌을 사용해 안을 파내는 것이 꽤 까다롭고 나무의 응력을 방지하기 위해 벽을 일정한 두께로 유지해야 하고, 나무 조각들을 끊임없이 비워주는 것도 쉽지 않다. 험난한 선반작업이 끝나면 긴장을 약간 풀고 조각에 들어간다. 감으로 무장시킨 조각도를 들고 혹자리를 하나하나 찾아들어가며 갇혀 있는 얼굴들을 꺼낸다. 눈으로 축소된 대지를 따라가다 보면 석회동굴도 보이고 강도 바다도 산도 보인다. 나무가 살았을 역사와 나무가 만났을 수많은 영혼을 일일이 살려내는 것이다.


시간과 결

 

 

 

레이클린은 자연의 시간과 환경이 나무에 어떻게 침투하여 자신들만의 결을 남기는 지에도 관심 있다. 나무는 단독적으로 자라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 요소에 의해 끊임없이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시간과 결(Time and Texture)'시리즈를 위해 애쉬, 오크, 세콰이아를 고른 이유도 이 나무들이 기후에 매우 민감해서 겨울과 여름에 다른 밀도로 자라나는 방식으로 주변 풍경을 고스란히 자신의 몸에 담기 때문이다. 그녀는 혹자리를 찾는 것처럼 작품 안에 리듬을 새긴다. 리듬을 찾는 과정은 나무에 새겨진 세월의 퇴적을 작가가 침식시키는 과정이다. 침식은 강압적인 몰살이 아니라 나무에 순응하는 방식이다. 그녀는 조각을 할 때 리듬으로 질감의 레이어를 구축한 다음에는 샌드블라스트 처리를 통해 나뭇결을 극대화한다. 돌기를 휘감고 굽이치는 나물결은 그렇게 탄생된다.


앞으로도 그녀의 작품들은 이곳저곳을 순회하느라 바쁠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새로운 시리즈도 시작할 계획이다. 지금껏 그랬듯 앞으로도 그녀가 만들어내는 형상과 표면이 단지 나무의 이야기뿐 아니라 우리와 대지가 관계 맺으며 만들어내는 결들을 보여줄 것을 기대해본다. 

 

 

엘레노어 레이클린 | 미드웨일즈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레이클린은 유럽과 서아프리카 몇 나라에서 선생님이었다. 그러다가 나무에 대한 사랑을 못 이겨 런던 가구 학교와 길드홀대학에서 가구 제작을 배우고 10년간 캐비닛 제작자로 생활을 하다가 일련의 장인수업을 통해 예술적인 실천을 발전시켜나가게 되었다. 현재는 런던에 살면서 핸드메이드 창작자들의 활동과 사업을 돕는 사회적 기업인 콕핏 아츠(Cockpit Arts)의 한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있다.

 

[저작권자ⓒ 우드플래닛.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WOODPLANET Newsletter

우드플래닛 최신기사, 관련정보 등을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에 동의 하시겠습니까?

우드플래닛은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법령에 의거하여,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함에 있어 정보주체로부터의 이용 동의 여부를 사전에 고지하고 있습니다. 정보주체가 되는 이용자께서는 아래 내용을 확인하시고,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ㆍ수집 이용 목적 : 우드플래닛과 구독자를 위한 의사소통 경로 확보

ㆍ수집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 이메일

ㆍ보유 및 이용 기간 : 메일링서비스 해지시 까지(해지시 정보파기)

뉴스레터에 등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