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OO’ 이승원 목수의 쇼룸 : 가구는 공간을 따른다

Interior / 백홍기 기자 / 2018-03-11 23:5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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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도 집에서 외톨이가 될 수 있다. 공간 안에 가구를 들이지만, 쓰임만큼 중요한 건 가구와 공간과의 균형이고 조화다. 그래서 공간을 무시한 가구는 오히려 집을 어지럽히고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가(苛)구가 될 수 있다.

 

 

남자라면 멋진 서재 하나쯤 꾸며보고 싶은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나만의 책상, 나만의 책꽂이 등 취향에 따라 서재를 꾸며보는 일은 상당히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TV나 잡지에 그동안 상상했던 인생 가구를 찾았다고 덜컥 구매하는 일은 쉽지 않다. 가격도 문제지만, 현재 거주하는 공간에 잘 어울리는지 봐야 하기 때문이다. 사고 나서 거실에 둘 수는 없지 않은가.


가구도 멋스럽게 늙는다


 

수년 전 이승원 목수는 자신의 집을 쇼룸으로 리뉴얼했다. 50평 정도의 공간 전체를 직접 구상하고 새로운 분위기로 바꿨다. 가구도 공간에 맞춰 하나둘 준비했다. 목적은 당연히 고객에게 가구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일반 쇼룸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 주거 공간이라는 것과 집 안의 가구를 직접 사용할 것들로 꾸민 것이다. 이것이 전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바로 공간 속의 가구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쇼룸은 오로지 가구에 집중하는 형식이지만, 이곳은 실제 집에서 가구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세월과 함께 가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살펴보는 공간이다. 이승원 목수에게 애초에 계획한 의도에 대해 물었다.


“내가 만든 가구가 집에서 사용하는 동안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변색이 되고 상처 난 모습도 그대로 보여주면서 하고 싶은 말이 ‘당신이 사려는 가구가 바로 이런 것이다’라는 것이죠.”


가구는 쓰임에만 목적에 두고 사는 경우는 드물다. 최소한 색이라도 가구를 배치할 공간에 맞춘다. 가구도 쾌적한 환경을 갖추는 데 중요한 요소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승원 목수는 ‘오래 곁에 두고 싶은 가구’를 좋은 가구라고 한다. 그 말엔 가구의 쓰임과 아름다움, 공간과의 어울림, 나무의 이해를 함유한다. 그래야 가족처럼 애정의 관계로 묶여 오래도록 질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가구. 바로 주인과 함께 서서히 멋스럽게 늙어가는 나만의 가구라는 의미를 갖는다.


공간에 녹아들어야 좋은 가구


 

가구는 공간을 떠나 홀로 존재하는 순간 기능을 상실하는 기물이다. 그런데 공간 분위기를 무너뜨리면서 기능을 상실한 가구들도 있다. 철저한 계획에 따라 하나의 가구가 공간에서 어떻게 자리 잡을지 충분한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INHOO의 쇼룸에서 각 공간에 배치한 가구가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건, 집을 리뉴얼할 때부터 계획을 세워뒀기 때문이다. 거실은 진한 바닥과 어울리는 테이블을 배치하고, 테이블과 같은 월넛으로 통일한 소파의 쿠션을 흰 벽과 매치해 통일감을 줬다. 거실과 주방의 브리지 역할을 하는 다이닝룸엔 진열장과 이동이 편리한 좌식 식탁을 둬, 필요에 따라 거실과 공간을 분리하면서 차 한 잔의 여유를 나누는 기능을 담았다. 침실은 침대 앞쪽에 단층 책꽂이를 설치해 침대에 눕거나 끝에 걸터앉아 책을 읽으며 휴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드레스룸은 벽을 둘러 옷장과 진열장, 가방을 보관하는 선반을 배치하고 중앙엔 동선을 고려한 뒤 액세서리 진열장을 뒀다. 각각 필요한 곳에 있는 가구들은 그렇게 공간에 녹아들었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공간에서 가구의 존재감이다. 한 가구를 살펴보자. 다이닝룸에 술과 책을 보관하는 커다란 진열장이 있다. 안엔 불빛도 비춘다. 한눈에 봐도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진열장은 그 자리에 있을 때 빛이 난다. 만약, 이 집 절반 정도의 집이라면, 아니면 그보다 더 작은 집이었다면, 진열장은 집을 압도하고 공간은 답답했을 것이다. 이 집의 어울림은 진열장의 크기를 품어줄 여유로운 공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구를 바라보는 시선은 단순하게 크기와 외형, 쓰임만 보는 게 아니라 집에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성공을 위한 밑거름, 실패



 

쓰임이라는 건 직접 써봐야 아는 것. 그도 아름다움과 쓰임에 늘 고민하며 제작에 임한다고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를 수 있다. 마지막 과정을 마무리하고 배송하는 순간까지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기능과 쓰임은 때론 현실에 부닥쳐야 진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안방의 화장대가 바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나온 결과물 가운데 하나다. 나름 조형미를 갖추고 쓰임에 대해 충분히 고려했다지만, 앉으면 다소 높고 의자를 놓고 사용하기엔 턱없이 낮은 어색한 높이였다. 그런데도 화장대가 여전히 기억에 남는 건 비록 시행착오의 결과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뛰어넘을 다음 작품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신발장 문과 침실의 창문을 전통 한지와 아크릴 한지로 다르게 사용한 점이다. 그 이유는 “직접 사용하면서 비교해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사용해 보니 아크릴 한지는 텐션감이 있고 튼튼하지만, 전통 한지의 우아한 멋을 내기엔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미 신발장의 한지는 몇 군데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애초에 ‘아크릴 한지로 했다면 더 깔끔했을 텐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의 <월넛 한지책장>을 보았다면 그의 의도를 이해할 것이다.

 

필자의 침실 한편에 아직도 어쩌지 못하는 서랍장이 쭈그려 앉아있다. 바꿔야지 하면서 벌써 몇 해가 지났다. 아마 올해 겨울도 넘길 듯하다. 내년엔 기필코 침실에 어울리는 서랍장 하나를 장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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