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읽다1- 자작나무] 가장 보통의 존재

Wood / 김은지 기자 / 2018-12-07 23:24:34
  • -
  • +
  • 인쇄
몸통보다 피부가 유명한 나무.
달큰한 수액은 신경통, 류머티스 관절염, 소화불량 등에 탁월해.
사실은 봄나무.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_백석, 자작나무(白樺)


백석이 ‘온통 자작나무’였다고 노래한 북부 산골의 풍경만큼이나 2016년 우리의 도시 살이 곳곳에도 자작나무가 있다. 이제와 이 시를 리메이크 해보라고 하면 이렇게 되겠지.


우리집은 바닥도 침실 수납장도 주방 선반도 자작나무다 / 밤이면 반짝 불이 들어오는 조명도 자작나무다 /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젓가락도 자작나무다 / 그리고 우리 아이가 물고 빠는 장난감도 자작나무다 / 제 손으로 가구 좀 만들어 봤다는 사람 모여 사는 이 동네는 온통 자작나무다 

 


‘자작나무’라는 이름의 기원에 대해서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겨울에 불쏘시개로 사용하면 타는 동안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은 일차원적인 이름. 사실 그 소리가 추운 지역에서 겨울을 지내기 위해 껍질에 지방분을 저장해 두었기 때문이라는 것 까지 알고 나면 유치하다고만 할 수 없다. 추위를 견디고 오롯하게 서서 제 이름을 만든 자작나무는 강원도 이북의 높은 산을 비롯하여 일본과 몽골, 러시아, 북유럽까지 널리 분포되어있다. 20미터에 달하는 큰 키에 하얗고 종이처럼 얇게 벗겨지는 껍질, 어긋난 잎이 특징이다.

 

 

자작나무를 처음 본 건 미술관에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무’를 소재로 한 수많은 예술 작품들 중에서도 자작나무는 빈번하게 소재로 쓰였다. 하얀 피부의 러시아 여자를 비유하는 말도로 쓰였던 자작나무 껍질은 클림트를 비롯한 수많은 화가와 영화감독, 문학가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아름다운 여자가 시대를 막론하고 예술가의 뮤즈가 되는 것처럼. 

 


고대 게르만인 사이에서 자작나무는 생명, 생장, 축복의 나무로 여겨져 사람들은 자작나무가지를 문이나 창문에 매달아 사랑과 기쁨의 표시를 했다고 한다. 요즘은 자작나무 껍질을 이용한 인테리어 소품, 크리스마스나 겨울 시즌용 소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자작나무 껍질은 보기에 예쁘기도 하지만, 기능적으로도 뛰어나다. 썩지 않는 성질 덕에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하고,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어 한 겹 한 겹 벗겨내어 종이 대용으로 사용했다. 신라 시대에 그려져 내려오는 <천마도>도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것. 또한 수피의 지방 성분은 불을 지피는 데 유용했으며,(오죽하면 이름이 자작나무일까) 천식 등의 약용으로도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껍질과 함께 자일리톨의 성분으로 잘 알려져 있는 달큰한 수액은 신경통, 류머티스 관절염, 소화불량 등에 탁월해 ‘만병통치약’으로 불리기도 한다. 

 

추운 지방에서 자라 나뭇결이 촘촘하고 단단한 것이 특징이며, 벌레도 잘 먹지 않아서 오래간다. 고려시대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의 일부가 자작나무로 만들어져 내려오며, 조선시대에는 귀한 재료라 하여 왕의 침상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지금은 가정에서 쓰는 일반 가구뿐만 아니라 주걱, 젓가락 등의 식기류, 장식용 소품, 캠핑용 장비 등에 두루 쓰이는데, 특히 자작나무가 자체 습도 조절을 잘 하는 나무이고, 독성이 없는 친환경 소재로 알려져 있어 아이들을 위한 공간과 가구, 장난감에 많이 쓰인다.  

 


근래에 들어 자작나무는 합판으로 가공되는 경우가 많다. 합판 형태의 자작나무는 가공과 관리가 쉽기 때문에 벽 마감재, 계단 등의 실내 인테리어에 주로 쓰이고, 책상, 의자 등 가구에도 빈번하게 쓰인다. 흰 결이 곱고 깔끔해서 어느 곳, 어떤 기능도 잘 소화해 낸다. 하지만 과도하게 사용하면 단조롭고 지루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자작나무 합판은 어떤 본드를 쓰느냐에 따라 포름알데히드 방출량이 가장 낮은 슈퍼E0부터 가장 높은 E2까지 등급이 나뉘며, 보통은 기준이 까다로워 E0이상의 등급만 사용하는 유럽산 자작나무 합판을 선호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눈 내린 자작나무숲에 가본 사람은 어디가 땅이고 무엇이 나무인지 구분할 수 없는 황홀경을 경험한다고 한다. 영화 <닥터 지바고>나 <러브 오브 시베리아>처럼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빠지지 않는 자작나무숲은 언제나 설원 속에 있다. 김종원 작가의 <자작나무-사계>시리즈를 보면서도 ‘역시 자작나무는 겨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자작나무는 눈 내린 설원에서 보는 것이 제 맛이지만, 엄연히 4~5월에 꽃을 피우는 봄나무다. 참, 꽃뿐만이 아니다. 3월 말에서 4월로 넘어가는 365일 중 단 15일, 그 시기에만 ‘만병통치약’이라고 불리는 수액을 추출할 수 있다. 그리고 가만히 떠올려보자. 우리가 기억하는 최초의 자작나무숲은 설원 속 웅장하고 신비한 자작나무숲이 아니라 <빨간머리 앤>에서 앤과 다이애나가 뛰어 놀던 연두색 배경의 자작나무숲일 것이다. 생그런 3월에 하얀 자작나무를 소개하는 건 그래서다. 사실은 봄나무라서.

 


**
목재 등급은 방출하는 포름알데히드 양에 따라 SE0(포름알데히드 0.3㎎/ℓ 이하), E0(0.3~0.5㎎/ℓ), E1(0.5~1.5㎎/ℓ), E2(1.5㎎/ℓ 이상)로 구분하며, 현재 국내 가정용 가구는 E1등급 이상 목재를 사용하면 판매 가능하다. 실내 가구용 목재는 유럽연합(EU)의 경우 2006년부터 약 0.4㎎/ℓ 이하인 목재만 허용하고 있고, 일본은 포름알데히드 방출량이 0.3㎎/ℓ 이하인 목재만 쓸 수 있다. 참고로 E0등급은 E1등급에 비해 포름알데히드 방출량이 최대 70% 적고, 원자재 가격은 10% 이상 비싸다. 

 

[저작권자ⓒ 우드플래닛.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WOODPLANET Newsletter

우드플래닛 최신기사, 관련정보 등을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에 동의 하시겠습니까?

우드플래닛은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법령에 의거하여,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함에 있어 정보주체로부터의 이용 동의 여부를 사전에 고지하고 있습니다. 정보주체가 되는 이용자께서는 아래 내용을 확인하시고,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ㆍ수집 이용 목적 : 우드플래닛과 구독자를 위한 의사소통 경로 확보

ㆍ수집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 이메일

ㆍ보유 및 이용 기간 : 메일링서비스 해지시 까지(해지시 정보파기)

뉴스레터에 등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