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언어를 구사하는 가구디자이너 송기두

Furniture / 백홍기 기자 / 2018-04-11 22:5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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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전공하고 건축가 송기두로 활동하던 그가 돌연 건축계를 떠났다. 건축가라는 삶의 울타리가 그에겐 답답한 공간이었다. 5년의 휴식과 같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가구디자이너였다. 건축가로 활동할 때 취미삼아 가구제작을 하면서 자기만의 가구를 찾아가던 과정을 그는 잊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다시 책상에 앉았다.

 

 

문래동에서 꽃피운 제2의 삶

 

다닥다닥 붙은 단층 건물들. 바둑판처럼 연결된 큰길과 샛길. 골목마다 쇠 깎는 소리와 쇳내로 가득한 문래동 철공소 거리를 거닐다 보면 동네와 어울리지 않게 2층 외벽을 핑크빛으로 물들인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이 송기두 디자이너의 작업실이다. 2층 작업실은 건물 옆 외부계단으로 연결된다. 다소 가파른 계단 끝에 검은 문이 보인다. 슬쩍 열린 문틈으로 머리를 곱게 쓸어 넘긴 반백의 젊은(?) 디자이너가 미소로 반겼다. 송기두 디자이너의 세계로 성큼 들어섰다.


작업실은 디자인하는 작업 공간과 작품을 제작하는 공방으로 나뉜다. 두 공간은 간편하게 합판으로 분리했다. 작업 공간은 바닥에 카펫을 깔고 은은한 조명을 사용해, 천장이 시멘트 속살을 드러냈어도 전체 포근한 느낌이다. 성격을 파악하기엔 시간이 짧았지만, 깨끗한 바닥과 정돈된 작업대 등 깔끔한 공방이 그의 성격을 대변하는 듯했다. 곳곳엔 미완성 작품과 홈페이지에서 안면 튼 작품들이 조용히 빛을 내고 있다. 그렇게 송기두의 채취와 흔적이 작업실에 쌓여있다.


건축하던 시기의 송기두는 법과 제도에, 때론 클라이언트에 의해 삶에 끌려다녔다. 원치 않는 짓(?)을 하던 그가 이곳에선 자신이 원하는 길로 삶을 이끄는 일을 한다. 버는 건 아직 하찮다. 그래서 초기엔 인테리어도 간간이 진행했다. 하지만, 일거리가 메말라도 클라이언트에 휘둘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마저도 조금씩 거리를 두고 한 걸음씩 가구디자이너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이젠 이곳에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비록 작업실은 넓지 않지만, 그의 상상 속에선 끝없는 들판이고 자연을 만끽하는 공간이다.

 

‘스토리 체어’엔 송기두가 있다


송기두 디자이너의 가구는 편하지 않다. 왜 그런지 물었다. “사실 사용하는데 편안한 가구를 바라면 일반 가구점에서 사는 게 싸고 좋아요. 그러니 굳이 저까지 그렇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의자를 디자인할 땐 앉을 수만 있으면 된다는 수준에서 내가 추구하는 조형미의 완성도를 높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가 말하는 조형미는 건축 특유의 조형미다. 비례와 비대칭, 비정형 또는 건축 구조에 나타나는 균형감을 작품에 담아낸다.
기둥이나 보로 한쪽만 고정된 캔틸레버 구조는 ‘balance’라는 명함꽂이에 적용했다. 기둥 부분에 무게 추를 넣고 들뜬 부분에 명함을 채워 균형 잡는다. 명함을 한 장 빼면 그 무게만큼 기우는 구조다. 해야 할 것과 지킬 것과 하고 싶은 게 많은 현대인에게 어쩌면 균형 감각이 가장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balance가 재미나게 보이면서도, 명함을 끌어안고 던지는 메시지가 묵직하다.

 

 

 좌식용 테이블인 시티스케이브(cityscape)는 도시의 풍경을 담아낸 작품이다. 아파트와 박공지붕의 주택, 도로, 빌딩 등 도심을 대표하는 기호들로 채워진 테이블에서 사용자는 자기만의 풍경을 상상하는 재미에 빠진다. 반면, 틈과 틈으로 연결된 상판에 커피가 쏟아지는 사건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상황이다. 하지만, 시티케이브 위에 닥칠 재난은 아니다. 커피는 다른 평평한 테이블에서 마시면 된다. 시티케이브는 쓰임보다 어떻게 느끼고 어떤 재미를 줄 것인가에 방점을 찍은 작품이다.


송기두 디자이너 작품에 가득한 건축 조형미는 건축에 대한 미련일 수도 있고, 익숙해서 그럴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가 가구디자이너로서 소통을 위해 선택한 언어라는 것이다. 그것을 대표하는 작품이 스토리 체어(story chair)다.


스토리 체어를 이해하려면, 간단하게라도 석탑에 대해 알아야 한다. 석탑은 화강암을 정교하게 다듬는 조각기술과 한옥 처마의 아름다움, 완벽한 비례미가 조화를 이뤄 수 세기를 이어온 건축물이다. 석탑의 절제에 의한 단순하고 소박한 멋과 균형에 의한 조형미는 송기두 디자이너를 매료시켰다. 그는 석탑의 건축적인 요소들을 어떻게 가구에 녹여낼지 고민했다.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석탑의 기단은 물구나무서서 의자의 다리가 되고, 석탑 꼭대기에 얹는 상륜은 팔걸이가 되어 지금의 스토리 체어를 완성했다.


“지금 보면 부족한 게 많아 보이죠. 그래도 충분히 만족하고 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는 건, 앞으로 송기두라는 디자이너가 나아가는 길에 대한 출발점이 되는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건축과 행복, 정체성과 원동력


송기두 디자이너의 눈은 행복을 향한다. “영감은 주변에서 행복감을 주는 것에서 찾아요. 나에게 삶의 풍요와 행복을 주는 건 아름다운 건축물과 전통, 자연을 경험할 때입니다. 디자인할 땐 그런 것들을 어떻게 작품에 표현할까 고민하죠.” 여러 작품에서 건축에 대한 그의 마음이 잘 드러나듯, 전통과 자연을 담아낸 작품으로는 소반과 책장이 있다. 소반은 예전부터 그를 감동시킨 전통 개다리소반에서 영감을 얻었다. 특히, 다리 끝을 살짝 들어 올린 잔잔한 곡선이 그의 마음을 빼앗았다. 그것을 소반 다리 안쪽에 버선코처럼 살며시 재현한 것이다.


책장 ‘sunny day’는 창 너머 나뭇가지에 앉은 새가 아침을 깨우던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을 담은 것이다. 창을 통해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제작한 책장은 프레임이 창이고 새가 앉은 부분이 창밖의 나뭇가지다. 대체로 밝은 그의 작품에 사용한 수종은 메이플이다. 그의 선택은 간결하면서도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한 자신의 작품과 잘 어울리고, 맑은 날에 느낄 수 있는 편안함과 행복감을 전하기 위함이다.


송기두 디자이너의 키워드는 건축과 행복이다. 건축은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고 행복은 원동력이다. 정체성을 잃으면 힘이 빠지고 힘을 잃으면 정체성이 흐려지듯 두 개의 키워드가 섞여 송기두라는 디자이너가 탄생했다. 38세에 가구디자이너 경력 2년. 숫자만 보면 늦깎이 가구디자이너다. 여기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도 소극적이라 찾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곳곳에서 그를 찾는 발길이 점점 잦아졌다.


그를 찾는 목적은 다르겠지만, 이유는 같지 않을까? 그런 맥락에서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가’라고 물었다. “작품을 좋아하고 사용하는 사람이 있어야 디자이너가 존재하죠. 그런 의미에서 오래가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제가 느낀 행복감을 사용자도 같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가 ‘어떠한 가구디자이너’라고 말하기 전에 나만의 언어로 표현한 작품을 쌓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에 의해 ‘송기두만의 가구’가 완성되겠죠.”


그의 언어가 제법 쌓였다. 2018년에 전시를 계획하고 새로운 작품도 제작 중이라고 한다. 그의 신작이 공방 한편에서 마지막 손질을 기다리고 있다기에 살짝 엿봤다. 기대된다. 전시하는 날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송기두 | 한양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후 건축설계사무소를 거쳐 가구디자이너로 자리 잡았다. 건축, 자연, 전통, 예술 등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소재들을 모티브 삼아 디자인하며 최근엔 건축적인 조형미를 기능적인 가구에 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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