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다스페이스 + 문화를 ‘잇는’ 공간

Interior / 김은지 기자 / 2018-04-12 17: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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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어떤 공간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문화, 문화와 문화를 이어주기도 한다.

 

인천 중구 배다리, 오래된 서점과 철물점이 있는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낡은 벽돌 건물에 ‘새전과, 표준학력고사, 새산수완성’ 같은 추억의 단어들을 그대로 매단 채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잇다스페이스가 있다. 문을 열면 영화 <해리포터> 9와 4분의 3번 승강장으로 들어가듯 시간을 초월한 공간에 맞닿는다. 

 

식민통치가 한창이던 1930년대에 윤동주 같은 문인들이 책가방을 손에 들고 걸었을 좁은 골목, 나름 최신식이었을 빨간 벽돌 벽면과 쌓여 있는 책들, 이곳을 아지트 삼아 모인 젊은이들이 태극기를 가운데 걸고 마음을 다잡으며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눴을 장면들을 떠올린다. 

 



소금창고, 일본식 한증막, 동양서림 그리고 잇다스페이스


잇다스페이스는 목조형작가 정희석의 아뜰리에이자, 창작자들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처음엔 작품을 보관하고 쇼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개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장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의 작업 특성상 유난히 크고 무거운 작품들이 많아서 한 번 전시를 하고 나면 갤러리에 맡겼다가 그대로 선물하기 일쑤였다. 그게 지금의 인프라를 만들어준 것 같기도 하다며 웃었지만, 자식 같은 작품을 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마음이 오죽했을까. 작더라도 자기만의 공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걸음을 재촉했다.


인천에 있는 작업실 주변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다. 2015년 2월부터 꼬박 두 달 동안 골목골목을 뒤졌지만 마땅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날도 하루 종일 골목을 걸어 다니다가 포기하고 담벼락에 기대 담배 한 대를 태우던 중 이 공간을 발견했다. 호기심으로 들어선 공간은 메케한 먼지와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고, 깨져있는 창, 벽에 걸린 태극기, 부쉈다가 다시 때운 것처럼 제각기 다른 벽돌들이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건물은 193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엔 소금창고였고, 그 다음엔 일본식 여성전용 한증막, 그리고 동양서림을 마지막으로 15년을 비워져 있었다. 먼지와 쓰레기 사이를 지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죽어가는 공간속에서 유일하게 한 그루의 나무가 ‘살고’ 있었다. 오래돼 구멍이 뚫린 양철 지붕 한 켠으로 볕이 들고 비가 떨어져 나무를 키웠다. 그 나무를 보면서 ‘아, 여기다’ 싶었다고 한다.

 

“이 공간을 만나고 처음에 개인 공간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사라졌어요.공간이 가진 역사와 시간들, 그 속에 살아있던 생명을 보면서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공간을 계획하기 시작했죠.”

 


 

주민들에게 알음알음 들은 바에 의하면 이곳은 문인들이 살던 골목, 당시의젊은 지성인들이 모이던 공간이었다고 한다. 안쪽에 붙어 있던 동양서림의간판을 대문에 걸고, 마루로 쓰던 자투리 나무를 안쪽에 덧대어 문을 완성했다. 공간이 담고 있는 역사와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어 벽돌은 물론, 창살,연탄구멍, 태극기, 심지어 나무를 키운 양철 지붕의 구멍까지 모든 걸 보존하는 쪽으로 공사를 진행했다. 꼬박 80여 년의 세월을 견딘 공간은 15년 만인 2015년 9월 5일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여럿이 함께 만든 공간


공공기관 지원 없이 혼자서 공간을 구상하고 있을 때 평소 친분이 있던 금보성아트센터 금보성 관장이 페이스북을 통해 소셜 펀딩을 열어줬다. 사람들이 하나 둘, 성의를 모아 이 공간의 주주가 되어주었다. “이런 공간의 필요성을 다들 절감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실행하지 못했을 뿐이죠. 그 마음들이 모여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고 생각해요.”


고맙게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줬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 돈이 들어오니 불안감과 중압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천만 원을 커트라인으로 정하고 시작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프닝 때도 봉투를 들고 참여 하는 등 많은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공사는 꼬박 4개월이 걸렸다. 환기를 위해 문을 열어두면 공간에 쌓여있던 먼지가 날아가 이웃집 빨래를 망치기 일쑤였고, 1톤 트럭 열다섯 대가 쓰레기를 날랐다. 무조건 긁어내고 떼어내는 청소업체에 맡길 수가 없어 청소부터 내부 수리까지 모두 그의 몫이었다. 후배들을 비롯해 이 공간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매일 페이스북으로 진행 상황을 올리며 소통했고, 호응이 좋아 문화 예술인을 비롯해 일반 사람들도 많이 참여했다. 

 

“오픈하고 한 달 째 되었을까.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어요. 골목지킴이 활동을 오랫동안 하셨다고 하는데, 갑자기 손을 잡고는 우시더라고요. 이 공간이 들어온다고 했을 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하나하나 살린 걸보니 안심이 되고 감사하는 마음이라면서.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고 돌아가셨다가 저녁에 아내분과 다시 오셨어요. 식사 한 끼 꼭 대접하고 싶다면서요. 그럴 때 사명감 같은 걸 느껴요. 잘 만들어가야 겠구나,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구나.”

 


문화가 있는 공간, 문화가 잇는 공간


이런 공간을 만날 수 있었던 건 그에게 행운 같은 일이었지만, 외곽이더라도 서울 근교였다면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서울에 있었다면 이런 공간은 진즉에 사라졌을 것이다. 거리적인 제약이 있을수록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올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게 정작가의 생각이다.

 

“단순히 작품을 만들어 파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문화를 만들어야 해요. 문화가 있는 공간에는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가 있는 곳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니까요.” 


 

앞으로 잇다스페이스는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편집샵과 다양한 컨텐츠를 활용한 프로젝트가 열리는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우드워커들과 함께 하는 워크샵도 계획중에 있다. 이곳에서 그는 나무를 만지는 사람들이 앞으로 가야할 방향과 경쟁력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해보고 싶다고 했다. 


바람이 머물고 계절이 새겨진 이곳에도 다시 봄이 왔다. 아마도 이곳은 생산적인 이야기가 오가는 뜨거운 소통의 장으로 많은 사람을 위해 열려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문화가 사람을, 시간을, 문화를 이어가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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