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저체어 메이커 이경찬

Furniture / 배우리 기자 / 2018-03-09 22:3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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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를 쓱 대고 등을 폭 기대어 팔을 착 얹으면 착석 완성. 이 의자에 앉는 사람들은 누구나 말한다. “보기보다 편하다.” 가끔은 “앉아본 나무의자 중 가장 편하다”고도 말한다. 이 의자로 말할 것 같으면 서방의 끝에서 동방의 끝 나라까지 들어오게 된 윈저체어(Windsor chair)다.

 

공장 출신 윈저체어가 아닌 손맛이 있는 공방 출신 오리지널 윈저체어를 보기 위해 이경찬 체어메이커를 찾았다. 빨간 차양 간판을 달고 있는 작은 작업실에 들어서니 어느 인터뷰 사진에서 본 것보다 훨씬 잘생긴 주인장이 ‘티’를 따라주었다. 빨간 윈저체어와 홍차 그리고 체어메이커 이경찬 aka 레드씨. 인터뷰는 경기도 광주 오포읍이 아닌 잉글랜드 어느 시골 마을 오후의 티타임에 진행되었다.

 

 

 

그에 따르면 윈저체어는 18세기 초반에 영국에서 등장해 주로 귀족들의 야외용 의자로 쓰이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곧 실내용으로도 폭 넓게 사용되면서 한 명의 장인이 전 공정에 참여해 만들던 것이 분업화되고 대량생산 되었다. 그 후 식민지시대 미국으로 건너가 세련되고 다양한 형태로 진화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스 베그너의 피콕체어, 조지 나카시마의 라운지 암체어도 윈저 체어의 변형이다. 이것만 봐도 새로 나올 윈저체어의 종류가 얼마나 많을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다. 구조적으로 보자면 의자 좌판에 등받이와 다리가 삽입되어 만들어지며 이때 상부와 하부는 직접 연결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윈저체어는 몇 분짜리?


의자라면 착석감에 대해 먼저 논해야 인지상정. Sack Back 암체어와 Fan Back 사이드체어를 번갈아가며 앉아보았다. 색백을 가로지르는 선이 등에 약간 배긴다. 내 등과 엉덩이는 팬백 사이드체어를 좋아했다. 주인장은 색백 암체어가 좋다고 했다. 윈저체어는 여러 버전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몸에 맞는 것을 찾으면 된다. 레드 체어메이커의 체어메이킹 클래스를 이용하면 더 좋겠다. 마침 흔들의자가 주인을 찾아간 뒤라 앉아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일반 의자는 앉아 있으면 곧 자세가 이상해진다. 그에 반해 윈저체어는 폭신한 휴게용 의자는 아니지만 오히려 자세를 잡아주어 오랜 시간 편안히 앉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일러스트레이터인 그의 부인 도 대여섯 시간을 윈저체어에 앉아 작업한다고 하니 의자로서의 기능은 꽤 훌륭하다고 볼 수 있다.

 


뜯기지 않는 자연스러운 삶의 결을 찾아


윈저체어를 제대로 알게 된지는 4~5 년 정도다. 십 년 전 결혼할 때 DIY로 거실 테이블을 만들기도 했고, 목공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은 그 후에도 문득 문득 들었으나 딱히 만들고 싶은 것이 없던 그는 기술만 배워놓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가 체류하게 된 영국에서 단순한 의자 종류로만 알고 있던 윈저체어의 만드는 과정과 그를 둘러싼 문화를 알게 되고 그린우드워킹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를 윈저로 이끈 건 윈저의 디자인도 있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그린우드워킹’, 생나무의 힘이었다.


“Follow the Grain". 체어메이킹의 핵심은 바로 나무의 결을 따라가는 것이다. 생나무 작업은 건조목 작업보다 결이 하는 말에 더 세심히 응해야 한다. 숲 속의 오두막에서 아직 마르지 않은 나무의 섬유질을 유심히 보고 그를 따르는 체어메이커들은 자연의 시간에 산다. 영국은 단지 오래된 의자 제작에만 이런 문화가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이경찬 목수는 영국의 조용한 바닷가에서 일렁이는 햇빛 부스러기를 함께 좇는 가족들을 보면서 조금 느긋하고 자연스러운 삶을 배웠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윈저체어와 그런 삶을 그리워 하다가 자연의 결을 좇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생목으로 의자를 만드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왜 생나무인지 건조목은 안 되는 건지에 대해서 묻는다. “건조목으로도 윈저체어 만들 수 있죠. 단순히 모양만 똑같다고 해서 윈저체어라고 부르기 싫더라고요. 만드는 과정부터 들어있는 철학과 문화적인 관점이 들어가야 오리지널리티를 갖는다고 봐요. 처음에는 큰 의미 없이 생나무를 쓴 것이었을지라도 지금은 문화와 환경적인 의미까지 들어있습니다. 물론 디자인도 좋고 깎는 것도 좋지만 체어메이킹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과정이 조금 불편해도 필요한 만큼씩 만드는 게 좋아요. 결과물도 충분히 실용적이고 튼튼하고 아름답고요.”

 

생나무 작업과 체어메이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의자 전체를 생나무로 하는 것도 아니거니와 대량생산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건조목을 사용해 정형화된 프로세스에 맞춰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경찬 체어메이커는 윈저체어를 탄생하게 한 그린우드의 문화와 함께 오롯이 혼자 해내는 아날로그 목공을 지켜나가고 싶을 뿐이다.

 

 


초록나무와 먼지 없는 목공방


보통의 목공방은 먼지 잘 날 없지만 생나무를 깎아 쓰는 레드씨의 체어메이커 공방에는 먼지가 없다. 에어건은 당연히 없다. 도끼로 나무를 해와 프로에로 쭉쭉 쪼개서 쉐이빙 호스에 앉아 드로우 나이프로 슥슥 깎으면 되니 말이다. 보통 의자 등받이의 살에 생나무를 쓰는데 그 이유는 작업성이 좋기 때문이다. 체어메이커들의 육성을 (빌린 이경찬 목수의 육성을 다시) 빌자면, 생나무를 깎는 느낌은 버터나 감자를 깎는 느낌이란다. 건조하지 않은 참나무의 경도는 소나무 정도라고 하니 대강 느낌이 온다. 먼지를 좋아하지 않는 이곳의 목수는 샌딩도 거의 안한다. 스크래퍼로만 작업해도 면이 어느 정도 깨끗하게 나온다고 만족해한다. 기계도 거의 없다. 그의 공방에 유일하게 있는 기계는 밴드쏘와 선반 정도. 그는 좌판의 모양만 밴드쏘로 잡는데 그마저도 사용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상황이 그러하니 이 공방은 매우 안전하고 먼지도 날리지 않는다. 귀마개도 필요 없고, 마스크도 필요 없다. 어떤 작업 과정 중에 있든 음악을 틀어놓거나 드라마를 보면서 작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윈저체어메이킹의 숨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먼지 없는 공방의 핵심, 생나무는 어디에서 구할까. 그는 미국에서 체어메이킹 클래스를 이수하고 돌아와 사용할 나무에 대해 고민했다. 그린우드워킹을 포기해야 하는 건조목을 쓸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생나무를 써야 하는데 나무를 수입할 수도 없고, 수입을 한다고 해도 통나무는 과정이 까다롭기도 했고, 가격도 너무 비쌌다. 그러다가 화성의 상업 벌목 회사를 알게 되었고 그는 화목으로 쓰일 참나무와 밤나무들을 필요할 때마다 저렴하게 한 차씩 해오고 있다. 보통 카빙이나 밴딩으로 제작하는 의자 상부는 참나무로, 터닝을 해야 하는 하부 다리는 밤나무나 아까시나무를 쓰고 있다.

 



Follow 레드씨 


그는 앞으로도 너무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단순하지도 않은 미국의 클래식 윈저체어를 만들 계획이다. 다른 걸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윈저체어만 해도 할 게 되게 많아요. 몇 개 기본적인 형태가 있고요. 클래식만 30년 씩 하신 분들도 같은 의자만 만드는 게 아니라 매일 고민하고 다르게 발전시키고 하고 있더라고요. 윈저체어의 변주는 상상한 만큼 나온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윈저체어메이커의 눈에는 하나라도 같은 윈저체어가 없다. 조금씩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의자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새로운 걸 만들겠다는 생각도 없고, 작가가 될 생각은 더더욱 없다. 윈저체어는 본래 예술작품이 아니라 생활에 쓰기 위해 만든 일상의 공예품이기 때문이다. 그는 ‘체어메이커’다. 

 


윈저체어란 | ‘윈저체어가 한국에서도 유명한가요?’ 윈저체어 메이킹을 꾸준히 올리고 있는 레드씨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달린 질문이다. 요즘은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 윈저체어지만, 그것을 보고 ‘윈저체어’의 이름을 떠올리고 역사까지 더듬어 보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레드씨는 아직은 생소한 윈저체어를 자신의 블로그에 소개하며 ‘식탁의자’와 ‘사무용’, ‘학생용’ 의자만 있는 의자의 불모지에서 우리나라 최초 윈저체어메이커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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