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절을 애도하다

Art / 김수정 기자 / 2018-03-14 22: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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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 예술가가 1만 4천 개의 나무 조각 속으로 숨어들었다. 자신의 삶에 긴 그림
자를 드리운 유년 시절에 대한 애도였다.

 

32살의 젊은 예술가 레비 판 펠뤼(Levi van Veluw)는 네덜란드 출신의 전도 유망한 아티스트다. 전업 예술가로 활동한 지는 7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젊은 작가는 벌써 자신만의 확고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조금 마른 듯한 몸에 수려한 외모를 지닌 그는 네덜란드에서 이미 배우 못지않은 유명인사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읽고 당신이 떠올린 이미지는‘그리 심각하지 않은 팝아트를 하는 발랄한 젊은이’에 가까울 것 같다.


침묵의 나무 조각 속으로


식탁 위에 다섯 사람이 앉아있다. 이들은 가족으로 보인다. 한 식탁 위에 가깝게 마주앉은 이들의 모습은 언뜻 완벽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입을 굳게 다문 사람들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떠돈다. 이들을 둘러싼 수만 개의나무 조각은 음울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또 다른 작품 을 본다. 수만 개의 나무 조각으로 이루어진 어두운 방 한 구석에는 책상과 스탠드, 책장이 놓여 있고, 한 남자가 책상으로부터 반쯤 몸을 돌린 채 앉아 있다. 넓은 방 안에서 그는 더욱 작아 보이고, 떨군 고개와 처진 어깨는 무기력해 보인다. 그의 몸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수천 개의 나무 조각으로 덮여있다. 그것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위태로운 갑옷이거나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어 택한 보호색처럼 보인다.

 


어둠과 대면하기


작가는 “내 모든 작품은 유년 시절의 기억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그의 작품에는 유년 시절에 대한 암울한 기억들이 공통적인 테마로 등장한다. 그런 기억을 가진사람이라면 아픔을 숨기거나 없는 듯 묻고, 속으로 아파하거나 누군가를 할퀸다. 그도 어느 때는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아픈 기억을 스튜디오 한가운데로 끌고 온다. 꼼꼼하게 깎은 수만 개의 나무 조각에 짙은 갈색의 염료를 바르고, 글루건으로 하나하나 붙여가며 그는 그 기억들과 힘겹게 대면한다. 마주하는 것을 넘어 그는 곧 그 나무 조각 속으로 잠겨 버린다. 그는 왜 이런 작업을 하고 있을까. 속지 않는 자가 방황한다 그의 작업은 일종의‘애도’로 읽힌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든 쓰라린 이별이든 인간은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과 맞닥뜨렸을 때 가능한 한 그것으로부터 빨리 도망치려고 한다. 그러나 슬픔을 충분히 슬퍼하지 않으면 그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다시 찾아온다.


레비는 불우한 가족사와 폐쇄공포증, 외로움으로 점철됐던 어린 시절을 정직하게 응시하고 충분히 슬퍼하며 어두웠던 한 시절을 애도한다.살아온 기억이 곧 사람이기에 젊은 예술가에게 드리운 그늘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다 예술가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도망치고 싶은, 도망칠 수 없는 그 기억도 자신의 일부임을. 속지 않았다고 믿는 자는 길을 잃고 스스로에게 속지 않는 자는 방황한다. 아마 그는 방황할 것이고, 그 방황의 깊이와 밀도만큼 그의 작품은 진실해질 것이다.

 


레비 판 펠뤼(Levi van veluw) | 1985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ArtEZ 예술 대학(ArtEZ Institute of the Arts)에서 수학했다. 2007년 졸업 후 자신의 유년 시절을 주제로 사진, 비디오, 조각, 설치미술, 드로잉이 결합된 복합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자신의 몸을 소재로 삼는 독특한 작업 방식으로 주목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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