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공간3] 퇴촌 한옥 함양당의 가구들

Interior / 배우리 기자 / 2018-03-13 22: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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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호의 안개가 스미는 함양당은 재작년 우드플래닛에서도 소개했던 책 <나무집예찬>의 바로 그 ‘나무집’이다. 화가 김병종이 연극연출가 김정옥의 토담을 사들이고 훗날 왕십리의 백여 년 가까이 된 고옥을 해체해 다시 지었다.

 

이제 그곳에 유나컬렉션의 권연아 씨 부부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지금은 태어난 아기를 위해 판교의 아파트로 거주지를 옮겼지만 함양당은 여전히 다양한 문화행사와 모임의 공간이다.


가랑비처럼 스민 목가구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흐린 날, 함양당을 찾았다. 주인도 부재하고 살림살이는 두 달 전 쯤 거의 빠져나가 허전했지만 <나무집예찬>에서 담 너머로 집 안을 훔쳐보듯 보았던 한옥의 정취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돌담이며, 김병종 화가의 작품을 따온 낮은 대문, 뒤뜰의 오래된 은행나무, 그리고 젊은 부부가 들어오면서 다시 꾸민 오래된 동네 우물터, 수국과 풀들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막상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 것의 손길을 받아 옛집이라고 하기에 나무는 밝고, 시스템 창호도 낯설었지만 100년을 살아온 한옥은 그 덕에 지금도 살아가고 있었다.


주인 내외의 한옥과 목가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안주인의 아버지는 바로 이웃에 살고 있는 골동품 애호가이자 도예가고 바깥주인의 어머니는 부산의 문화공간 비비비당의 대표다. 이러하니, 어떤 계기랄 것도 없이 어렸을 때부터 부부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목가구와 가까웠고,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돌계단을 디디고 올라 세월을 벗겨낸 뽀얀 인절미 같은 마루를 밟았다. 마루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 움직임의 흔적이 드러난다. 진짜 나무집. 비었지만 충만한 여전한 삶의 공간. 나무집이 살아있듯 집 안에는 ‘물건’들도 오랜 세월을 딛고 살아남았다. 살림살이가 있던 시절 부엌이었던 방에는 ‘만취당’ 족자 아래 오래된 상주곶감 궤가 낮고 다소곳하게 앉아 있고, 귀한 백자가 아무도 보지 않음에도 곳곳에서 꼿꼿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 바닥에만 앉아야 할 것 같은데 드문드문 놓인 중국의자들까지. 그런 고고한 물건들 사이에 10년 전 이곳 퇴촌에 터 잡고 가구를 만들고 있는 방석호 목수의 가구들도 섞여있다. 오동나무와 참죽으로 만들어 옻칠을 한 전통 책장과 오크로 짜맞추고 암모니아로 마감한 선반, 붉은 빛이 아름다운 경축장이 그것이다. 이 집 안주인은 골동품 애호가이자 도예가인 아버지를 통해 목수를 알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몇 점 집 안에 들여놓게 되었다.


일상의 유산

 

 

 

권연아 씨의 집안이 방 목수와 서로 왕래하는 사이다보니 필요한 가구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를 찾게 된다. 오동나무 책장은 원래 아이 벽에 맞게 두 개를 주문했는데 하나는 아파트로 가져가고 하나가 남아 있다. 쓰임을 위해 만든 것이지만, 은은하게 빛이 들어오는 창호 밑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다. 색색의 아이 책이 있었다면, 오히려 그 청초함은 빛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고가구에 둘러싸여 사느라 오크는 조금 낯설지만 목수가 암모니아 마감까지 끝낸 것을 가지고 왔을 때 고재의 은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는 불경의 두루마리를 넣어놓는 붉은 빛깔의 경축장은 그릇장이 되어 있다. 1년 전 목수가 만든 것으로 알판 일일이 박힌 운각에 비하면 과하지 않은 가격이었기 때문에 수집 개념으로 들인 것이다. 이렇게 한옥에 남은 가구들은 전통 공연이나 행사가 있을 때면 무대가 되어주곤 한다.

 


 

같은 전통을 모티브로 한 가구라고 하더라도 색도 디자인도 다양하게 구현되고, 공간에 따라서도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권연아 씨 부부 집에 놓인 가구들은 산업사회의 질료들로 확장되지 않았지만 예스러움 안에만 갇혀 있지 않고 그 자체의 시간과 공간을 확장한 것처럼 보인다.

 

가구가 내적으로 파고들어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견고한 일상의 문화가 유행에 파묻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한옥에서든 아파트에서든 마음 놓고 일상에서 물려받은 전통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목수의 미감도 이를 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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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호 목수 인터뷰

 

 


 

함양당에 들어간 가구의 콘셉트는 무엇인지.
함양당에 있는 가구들은 의뢰를 할 때 용도와 사이즈만 알려주면 디자인은 자유롭게 했다. 디자인과 가격을 제안하고 뜻이 맞으면 제작해서 납품했다. 가구가 놓일 방에 따라, 그리고 쓰임에 따라 콘셉트는 각기 달랐다. 오동나무 책장은 전통적인 디자인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게 하고 아이 방 한 쪽 면에 꼭 맞게 두 개를 제작했다. 오크 책장도 한옥의 복도 한 쪽에 딱 맞게 제작했다. 측면의 조각은 공임이 더 들어가기 때문에 원하는 콘셉트를 먼저 제안하고 가격을 맞추었다. 참죽 경축장은 미리 만들어놓은 걸 구매한 것이다.


조선 목가구 제작자로서 한옥에 들어갈 가구를 제작하는 것이 더 뿌듯한지.
사실 한옥에 들어가는 가구를 제작하는 것이 더 어렵다. 한옥이야말로 오래된 한옥부터 현대 한옥까지 규격이 다양하기 때문에 비례를 맞추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옛날 한옥은 천고도 너무 낮아서 가구도 작에 만들어야 하고 창살과 기둥 같은 선이 많아서 오히려 현대가구가 어울리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아파트든 한옥이든 어느 공간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기보다 만들었을 때 가구 자체의 아름다움에 집중하고자 한다. 가구 자체가 아름다우면 어느 공간에 가든지 그 가구만의 힘이 생긴다. 어디 내놓아도 누구든지 갖고 싶어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생명력이 저절로 부여되는 일이다. 공간에만 맞추면 나중에 버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함양당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가구는.


측면에 ‘만(卍)’자가 세 개씩 새겨진 오크 책장이다. 간결한 서안 종류를 원래 좋아하는데 책장을 서안의 간결함을 염두에 두고 고비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고비라는 게 만들 때 힘을 빼지 않으면 동남아시아 가구 느낌이 나기 십상인데 균형을 잘 잡았다고 생각한다.


가장 공을 들인 가구는.
보시다시피 참죽나무 경축장이다. 이 작품은 주문 제작이 아니라 프로젝트로 제작해놓은 것이다. 60개 정도 되는 구름은 3개월 동안 팠다. 참죽이 워낙 조각하기도 힘들고 집중을 조금만 못해도 망칠 수 있기 때문에 하루에 많아야 두 개 이상을 못 팠다. 조각을 다 해놓고 가구 짜고 옻칠까지 6개월 동안 만진 작품이라 애정이 남다르긴 하다.


주문제작과 만들어 놓고 파는 가구의 장단점은.

주문을 받아서 만들어 주는 데 압박이 조금 있다. 구매자가 싫어할 수도 있고, 제작 과정에서 변수도 많고, 잘못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 협의 과정에서도 합이 잘 맞으면 대충 알아듣고도 같은 이미지를 상상하는데 혹시라도 다른 이미지를 상상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예기치 않은 프로젝트들이 생겨 납기일도 늦어지는 것이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주문 말고 만들어 놓고 판매하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구매자 입장에서도 직관적으로 딱 보고 ‘좋다,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취향은 다르고 제작 과정의 접점을 찾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알고 지내는 소비자로부터 가구 주문이 들어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처음에는 동네에서 골동품 수리로 만난 인연이다. 종종 골동품 수리도 하고, 한옥도 간단한 문제라면 손봐드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 쪽에서 가구주문도 하기 시작했다. 좋아해주고, 구매도 해주니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런 인연은 ‘운’이라고 생각하고 동기 부여도 많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 안심하지 않는다. 불안함은 항상 깔려 있다. 그리고 그 불안함이 조금씩 변하고 성장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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