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간에 대한 본질적 고찰, 니드21 대표 ‘유정한’

공간 / 서바름 기자 / 2020-10-06 21: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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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드21(NEED21)의 유정한 대표는 일찍이 혜화동에 터를 잡았다. 신사옥 회화재(回畵齎)는 노출 콘크리트 건축 스타일에 방점을 찍었다는 찬사와 함께 한국적 미감을 현대적으로 승화시킨 공간으로 2014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건물이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자리해 있는데 노출 콘크리트 건물 두 채가 서로 다른 미감을 자아내고 있는 풍경이 자못 흥미롭다.
▲ 니드21(NEED21)의 유정한 대표

 

한국적인 공간이라는 수식을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회화재를 바라보면 도대체 어느 구석이 한국적이라는 건지 의아스럽다. 건너편에 서있는 일본 건축가의 회색 빛 콘크리트 건물과 무엇이 다른지 쉬이 구별되지 않을 수도 있다. 

 

유정한 대표는 전통 문양이나 문살처럼 한 눈에 들어오는 일차원적인 요소를 끌어 모아 전통을 표방하지 않았다. 그가 고민하는 한국적 미감은 보다 본질적이었다. 하나의 요소를 들여오는 게 아닌 전체의 풍경과 그 안에서 느껴지는 정서를 공간에 담아내는 게 유정한 대표가 한국의 미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 無爲自然을 모두 담아내기 위해 아무것도 덧칠 되지 않은 '白의 집'

 

▲ 백의 집은 무엇이로든 채울 수 있는  텅 빈  공간이지만 그 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충만함을 얻을 수 있는 단순과 간소라는 침묵의 세계를 추구한다.

 

▲ ‘白의 집’은 산림에 면하고 물의 공간에 부유하는 형상으로 안배되어 배산임수의 공간이 된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의 미감
유정한 대표는 서울 태생임에도 충청북도 논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을 오던 때인데 그는 오히려 논산으로 귀향을 떠났다. 읍내에서도 한 참 떨어진 마을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버스가 때맞춰 다닐 리가 만무한 곳인지라 매일같이 집에서 학교까지 40~50분을 걸어 다녔다.

 

▲ 2014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니드21 본사 ' 회화재(回畵齎)'

“왕복 두 시간이 좀 안 되는 거리를 걸으며 본 풍경은 아직도 눈에 선해요. 소, 돼지를 키우는 가축우리가 있는 초가집과 계절 따라 모습을 바꾸는 나무, 지나다니는 동물 등 자연 풍경 말고는 볼 것도, 관심이 갈 만한 것도 없었죠. 요즘은 TV나 컴퓨터, 휴대폰같이 환심을 살 만한 것들이 많지만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시골에서는 할 게 마땅히 없었거든요. 그래서 연필과 스케치북을 들고 동산에 올라가 산과 하늘, 나무, 동물 그림을 그렸는데 그 때 보고 그렸던 풍경의 잔상이 공간을 지을 때 영감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그는 대학 진학을 위해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바라던 미대에 거뜬히 합격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공대생이 되었다. 공대 수업은 그의 적성에 여간 맞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 시절의 반은 미대에서 나머지 반은 건축과에서 청강을 하며 보냈다. 미술과 건축을 아우르는 배움 덕분일까. 공간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지금까지 탄탄대로의 길을 걷고 있다. 20년 넘게 공간을 디자인 해온 그가 한국적 미감을 드러낸 공간을 선보일 때마다 유독 찬사가 쏟아졌다.

 

▲ 회화재 주출입문. 폐쇄적 형식으로 검박함을 강조했다.

 

▲ 노출 콘크리트의 간결성

 

▲ 면을 중심으로 담백한 이미지를 전한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한국에서만 배웠어요. 그러니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건 ‘우리 것’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선조들의 전통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다만 제가 보고 자라온 한국의 풍경을 시각적으로 단순화해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제가 품었던 정서와 느꼈던 감성을 공간에 녹여내기 위해 고민을 해요. 그 고민의 결과가 만족스럽게 표현됐을 때, 모두들 공감을 하는 것 같아요.”

한국스러움에 대한 고찰
한국의 전통을 고루한 소재나 문양으로 상징화해서 단순 대입하는 유치한 작업은 유정한 대표가 가장 지양하는 방식이다. “단지 한옥의 처마를 차용해 곡선을 표현하고 흙과 나무를 소재로 집을 지었다고 해서 한국적이라 뭉뚱그리는 건 아주 일차원적인 사고예요. 보다 본질적인 차원까지 한국적 미감에 대해 고찰할 필요가 있죠.”

 

▲ 부석사에서 건축 모티브를  차용한 연못 공간.

 

▲ 정제된 구조미의 부석사 일주문을 재현하고자 했다.


회화재의 외관에 보이는 건 오직 콘크리트와 무거운 철문뿐이다. 건너편에서 매끈하고 기하학적인 자태를 뽐내는 일본 건축물과 달리 그의 건축에서는 조선시대 선비의 검박함만이 느껴진다. 이러한 감상은 에디터의 자의적인 느낌이 아니다. 유정한 대표는 서울 성곽의 사소문(四小門) 중 하나인 혜화문(惠化門)에서 느껴지는 정취를 회화재 외벽에 담고자 했고 성벽의 견고함과 검박함이 회화재 외관에 고스란히 옮겨졌다. 그가 공간에 담는 전통은 단순한 ‘효과’가 아닌 공감각적인 ‘교감’이었다.

내부 공간의 모티브 역시 옥산서원과 부석사, 벽산서원 같은 한국 전통 건축에서 얻었다. 많은 이들이 한국 건축의 명작으로 꼽는 부석사는 일주문부터 무량수전까지 이어지는 공간의 구성뿐 아니라 정제된 구조미와 걸음을 옮기며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경관의 어우러짐이 단연 최고로 평가되고 있다.


▲ 본질적인 차원까지 한국적 미감에 대해 분석을 거듭한 니드21

 

▲ 창의 움직임까지도 미세하게 들여다 보았다.

그런 부석사를 두고 혹자는 회화재가 현대판 부석사라 표현하기도 했다. 철문을 열고 회화재에 들어서면 깊고 어두운 입구를 지나 계단을 오르게 된다. 돌다리가 놓인 연못을 건너 건물을 휘감는 계단을 올라야 2층 집무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부석사가 일주문에서 사찰 내부까지 긴 거리를 둔 것은 외출에서 사찰로 돌아오는 이들이 바깥 세상에서 품고 온 마음의 번뇌를 씻어내고 들어오라는 깊은 뜻이 담겼다고 한다. 유정한 대표가 업무공간까지 들어가는 길에 길고 오롯한 어둠의 길을 마련한 이유도 이와 같았을지 모른다.

 

▲ 빛의 분할로 깊은 공간의 세계로 이끈다.

 

▲ 박물관의 정취가 느껴지는 복도 공간.


3, 4층은 그의 업무 공간과 주거 공간이다. 철로 만들어진 묵직한 스윙도어를 밀고 들어간 사무 공간 내부는 철문과 철벽, 무쇠 테이블 등 금속이 자아내는 차가운 느낌과 무게감으로 공간을 압도하고 있었다. 자연히 엄숙해지는 분위기를 반전 시킨 건 철제 프레임에 한지를 둘러놓은 한 칸짜리 방이었다. 한지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조명은 마치 어두운 밤 호롱불을 켜둔 선비의 방을 보는 듯했다.

3층뿐 아니라 회화재 내부는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거의 모든 조명 역할을 하고 있어 조도가 낮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밝고 쨍한 빛이 비추는 공간보다 차분하게 어두움이 깔린 공간은 들 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음가짐을 엄숙하게 한다. 우리 선조들이 화려한 조명을 구하지 않고 낮에는 햇빛, 밤에는 달빛과 호롱불만으로 생활하던 모습을 담아온 건 아닐까. 회화재에 담긴 한국의 미감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감성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유정한 대표가 취하는 한국스러움은 격이 남달랐다.

젊은 공간 디자이너들에게
유정한 대표는 자신의 공간철학을 담아내는 건축 작품을 하면서도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는 디자이너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한다. 스물여덟 살에 일을 시작해 20년이 넘는 세월 경험을 통해 배운 지론은 ‘사용자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과 ‘디자인의 본질을 잃지 않는 것’이라 했다.


▲ 유정한 대표는 "가장 중요한 것 공간의 합목적성과 그 곳이 사람의 공간이라는 본질이다. "라고 강조한다. 


“상업공간을 디자인 할 때는 ‘상업적으로 성공해야한다’는 기본에 가장 충실해야 해요. 요즘 작가주의를 표방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은 클라이언트의 자본으로 자기만의 예술을 하려고 해요. 예술을 하려면 자신의 자본으로 알아서 해야죠. 상업 공간을 잘 하는 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디자인을 하는 거예요. 이 사실을 망각하면 안돼요.”

그는 공간 디자이너로서 처음 작업한 곳이 서울 종로의 지하 음악 카페였는데 그곳을 리뉴얼 한 뒤 카페의 매출이 이전보다 10배가량 뛰었다고 했다. 덕분에 종로의 상인들에게 인테리어 하는 ‘유 씨 아저씨’라 소문이 났고 그 후 3년간 종로 거리의 상가들은 거의 장악하다시피 리뉴얼 작업을 하게 됐다.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는 서로 의견을 밀어내고 재는 관계가 아니에요. 상부상조하는 관계이니 머리를 맞대고 더 합리적인 비용으로 효율적이고 미적인 공간을 만들어내야 하는 거죠.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게 타협이라고 생각하는 발상을 바꿔야 해요. 그리고 최근 많은 디자이너들이 트렌드를 민감하게 따르고 소재나 마감재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 사실 가장 중요한 것 공간의 합목적성과 그 곳이 사람의 공간이라는 본질인데 말이죠. 사무실은 일하는 사람들이 재미있게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고 식당은 음식을 맛있게 만들고 먹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이에요. 그리고 그 목적을 실현시키는 게 디자이너의 실력이에요.”


▲ 돋보이는 스타일보다 본질을 지키는니드21의 디자인.

그는 요즘 젊은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디자인을 시작했던 때와 너무도 다른 환경에 처해있다고 했다. 무얼 시도하든 새로웠고 돋보였던 옛날에 비해 요즘은 이미 거리마다 촘촘히 디자인 카페나 레스토랑이 들어서있다. 그 틈에서 돋보이는 스타일을 구축하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바라는 건, 본질을 지켜가며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하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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