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박신우] 그릇의 기억은 어디에서 오는 건가

아트 / 편집부 / 2020-03-23 20: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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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스쳐 가는 사람보다 느리게 걷는 사람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나도 느린 사진을 선택한다.

감정에 의한 기억은 사건뿐만 아니라 어떤 물건에 의해서도 과거의 기억이 소환된다. 내가 일상에서, 특히 주방에서 일본을 자주 떠올리는 건 순전히 ‘비닐봉지’ 덕이다. 일본에 가면 슈퍼마켓에서 받은 비닐봉지를 버리지 못하고 가져오는 습관 탓에 싱크대 구석엔 일본산 비닐봉지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찾기 위해 싱크대 ‘비닐집합소’에 손을 넣으면, 여지없이 그것들이 손에 닿고 그때마다 불현듯 기억의 문이 열린다. 


 


 

 



기억을 소환하는 사물


우리 집 밥그릇은 또 다른 시점의 기억을 소환하는 사물이다. 4년 전 아내에게 청혼하고 결혼반지를 맞추기 위해 압구정 현대백화점을 찾은 날, 그곳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밥그릇도 샀다. 지하 1층에 있던 매장에서 직원이 짜증 낼 정도로 꼼꼼하게 살펴보고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네 개를 샀던 독일제 도자기 밥그릇. 아내와 4년을 사는 동안 한 개만 남았다. 

 

어느 날 홀로 남은 밥그릇을 보자니 애잔한 마음이 들어 사진으로 남겨야겠다 싶었다. 마지막 밥그릇 사진을 볼 때마다 그날 아내와 결혼을 준비하며 걷던 길이 떠오르고 피부는 겨울의 추위를 느낀다. 밥그릇을 고르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고대하던 모습도 떠오른다. 마지막 남은 밥그릇 사진이 애잔한 나의 마음과 마주 한다. 밥그릇은 이젠 기억의 일부가 됐고 추억이 될 것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밥그릇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기억을 기록하는 그릇사진


조용한 사진가로 사는 나의 삶에서 교통비와 밥값은 생존을 위해 버티고 줄여야하는 것들이다. 살아야하니 먹어야하고, 먹으려니 벌이가 시원찮아 넉넉히 채우지 못하는 그릇을 보며 한두 번 울컥한 게 아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인생은 질그릇에 가깝다. 왕궁 찬장에 진열될 수 없는 그릇. 여기저기 생긴 생채기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훈장이 아니라 타인에게 감추고 싶은 흉이다. 못생기고 닳아서인지 이 하나 나간 것쯤이야 아무렇지 않다. 나의 그릇도 나를 닮았다. 그리고 대부분 집에서 사용하는 밥그릇도 처음엔 화려했을지 모르지만, 시간 속에서 낡고 흠집이 덕지덕지 생겼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




‘사람들은 다 자기 밥그릇은 달고 태어난다.’고 하지만, 현실의 그릇은 빈 그릇이다. 그곳에 밥 한 공기를 채우려고 다들 치열한 삶을 산다. 밥그릇 사진은 그들이 살아온 기억을 밥그릇을 통해 남기는 작업이다. 모든 것이 소멸하는 시간을 버텨내야 사물은 깊은 내면세계를 가지듯, 이 사진들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살아남아야 하는 가혹한 운명에 놓인 불완전한 존재들의 사멸해가는 심전도 기록이다.

 

‘신앙’은 현실에서 신을 대하는 태도로 보이고, 소설의 ‘대사’는 캐릭터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를 증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을 본다는 건 현실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시간이다. 물질, 시간, 기억의 삼각관계에서 발생하는 안도감과 과거의 체험을 경험하는 기시감을 느끼는 것이다.

 

글 사진 박신우(스튜디오 간판없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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