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단상] 스러질 줄 아는 그릇 단상

공예 / 배우리 기자 / 2020-03-23 20: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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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낭만 혹은 추억,나무그릇
‘자연’을 들이는 가장 간단한 방법
새마을 '스뎅'보다 나무

 

▲ Black creek M&T '접시'

 

인도 여행 중 짜이를 많이 마셨다. 한 잔의 여유, 인도의 에스프레소랄까. 길을 걷다가 살짝 허기가 지거나 피곤할 때 작은 잔에 담긴 달달한 짜이 한 잔 마시면 기운이 났다. 대부분은 유리잔에 담아 주지만 주전자에 짜이를 넣고 돌아다니며 팔던 어떤 이는 짜이를 도기에 따라주었다. 

 

도기라고 해봤자 유약을 발라 구운 것도 아니고 손으로 빚은 점토를 그대로 말린 듯한 ‘토기’다. 원시인이 믹스커피를 마시듯 붉은 토기를 입에 갖다 댄다. 그 짜이는 흙탕물 맛이 나는 가짜였다. 토기라서 흙의 맛이 난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토기에 든 라씨는 아주 맛나게 먹었으므로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붉던 토기의 존재. 내용물이 비워진 도기는 바닥에 패대기쳐져 곧바로 다시 흙이 된다. 

 

▲ Sophie Heron 제공

 

한 인도인이 인도는 중세부터 최첨단 현대까지 모두 체험할 수 있는 곳이라고 그러지 않았던가. 그들이 토기를 쓰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새로운 소재가 개발되면 그 전의 것들을 곧바로 폐기해버리는 ‘스뎅 새마을 국가’인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런데 우리 곁에도 나무그릇이 왔다. 화학 물질을 녹여내는 각종 소재들을 지나 다시 나무그릇으로 돌아왔다는 게 좀 반가운 것이 아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아직 ‘무엇’을 먹는지가 더 중요할 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는 효율성과 편리성을 근거로 나무그릇의 존재를 폄하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무그릇은 식탁 위의 낭만 혹은 추억,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Sophie Heron 제공

나무그릇은 일상에 ‘자연’을 들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잘 꾸며진 온실이나 정원의 자연이 아니라 죽음을 담지한 자연 말이다. 갈라지고, 터지고, 썩은 옹이를 그대로 내보이는 자연 속에는 “얼룩이 없(어야 하)는” 방부제 세계에서 배제되었던, 낡아가고, 썩어가고, 죽어가는 것들이 있다. 그나마 그동안 우리 곁에 있었던 나무들도 실제 나무색이 아닌 ‘나무다운’ 색을 가져야 했고, 플라스틱보다 반짝이는 코팅을 입어야 했다. 플라스틱이나 비닐처럼 반영구불멸 하도록, 나무마저 닦달하고 방부시켰던 것이다. 


사람들이 소소하게 만들기 시작한 나무그릇은 다르다. 자연스럽게 스러진다. 나무그릇은 인도의 ‘현대 토기’처럼 한 번 먹고 버리는 일회용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죽지 않는 세상에 우레탄이 아닌 오일만 바른 채 등장한 나무그릇은 연약하다. 그 또한 닳고 닳아 언젠가는 흙이 될 것이다. 얼룩 없이 모두 반짝이는 세상이 아닌 죽음이 받아들여지는 곳이라야만 진정한 생의 활기도 존재하게 된다. 연약함만이 사물의 가치를 상기시키기 때문. 그래서 나무그릇이 놓인 식탁에서 밥을 먹는 사람이 얻는 것은 당시의 분위기나 훗날의 가질 추억만이 아니다. 

 

 

 


너무 오랫동안 다시 만나길 기다렸다. 그리고 나무그릇은 우리에게 왔다. 단지 새로움이나 유행으로 치부하기에 나무그릇들은 ‘자율적’이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생산된다. 나무그릇이 인간의 역사 이래 오랜 시간 우리 곁에 있었던 것처럼 이제 다시 오랫동안 함께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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