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머물렀던 그 자리를 재현한 목조주택, 영동 수류헌(隨遛軒)

Architecture / 배우리 기자 / 2018-03-22 19: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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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미세먼지를 잔뜩 머금은 안개를 뚫고 영동으로 향했다. 특색 없고 퀴퀴한 시골 마을의 역을 뒤로 하고 다시 영동의 끝자락인 금정리에 들어섰다. “이~ 서울서 건설회사 다닌 사위 네 집?” 마을에 새로 지은 집을 묻자 이장님은 단번에 대답을 해주셨다. “저기 저 집이여.”

 

 

사람도, 세월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마을 옆으로는 작은 강이 금강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고, 강 옆에는 낮은 산들이 둘러쳐져 있었다. 산들은 벌써 겨울의 스산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새 집은 단아했다. 낮은 조경목들이 울타리 대신 세워져 있다는 것 빼고는 집도, 마당도 이웃과 경계가 없었다. 아니, 경계고 뭐고 화알짝 열려 있었다. 마을에 들어서기 무섭게 이미 그 집에 빨려 들어와 있었다.

  

 

오래된 새 집의 탄생



마침 건축주 부부를 인터뷰 하는 날은 이 집을 설계한 건축가가 문패를 달러 오는 날이었다. 그는 문패와 더불어, 현관 안에 수류헌의 스케치를 담은 액자를 걸었다. 누군가 항상 살고 있었지만, 무명이었던 오래된 이 집의 이름은 새로 태어나면서 ‘수류헌’, 선친이 머물렀던 과거를 따르는 집이 되었다. 사실 가족 간의 집 이름 논쟁이 분분하지만 건축가가 먼저 수류헌 액자를 걸어버렸다. 


수류헌은 이 집의 안주인 민정애 씨가 어렸을 적부터 살던 집이다. 돌아가신 부모님은 오빠에게 그 집을 물려주었다. 그렇지만 오빠도, 남동생도 그 집을 돌보지 않았다. 해외 출장이 잦은 남편 덕분에(?) 자주 내려와 지낸 탓인지 이 집의 딸만큼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집에 대한 애정이 결코 줄지 않았다. 결국 딸 부부는 이 집을 오빠에게서 매입해 조금만 손보기로 했다. 그러나 법이 정해 놓은 경계를 넘나들며 증축의 증축을 거치고 1972년, 그러니까 민정애 씨 중학교 3학년 때 재건축을 했던 그 빨간 지붕 집은 사라져야만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법의 경계 안으로 다시 들여오기 위해 재건축이 필요했다. 이 년 전, 이백 만원을 들인, 때도 안 묻은 하얀 섀시도 포기해야만 했다.


세월을 품은 집

 


이 집 사위를 잘 아는 품기 좋은 이인집단의 이영재 건축가가 설계를 맡았다. ‘바깥’ 양반 유종우 씨는 집을 작게 짓기를 원했고, 영동에 내려올 일이 많지 않지만, 그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자녀들은 집이 좀 컸으면 하고 바랐다. 가족 구성원들의 다른 의견 속에서 건축가가 포기하거나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은 이 집에서 나고 자란 안주인의 의견이었다. 그녀는 부모님의 온기와 온갖 삶의 이야기로 지은 그 집을 거의 살려주길 원했던 것이다. 그저 ‘아들, 아들’ 하는 이웃들에게 딸이 이 땅을 지킨다는 표시만 하고, 조금더 편안하고 따뜻한 집에서 부모님을 기리고자 조금만 손보기를 원했다. 그러나 재건축이 불가피해지자, 건축가는 난감했다.

 

그는 사는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더불어 함께’를 지향하지만, 지붕과 섀시가 빛나는 그 집은 일단 흔적도 없이 사라져 줘야 했다. 철거 날, 안주인은 추억을 거두어 가는 광경을 차마 볼 수 없어 할 일도 없는 밭에 나가 멍하니 앉아 있었다고 한다.


부모님의 흔적을 모두 들어냈다는 죄송스럽고 불안한 마음이 건축가에 대한 막연한 불신으로 변했을 때, 모두의 불안을 해소할 열쇠는 역시 건축가에게 있다. 그는 둘 중에 한 상자는 열어야만 한다. 온갖 화려함으로 치장해서 과거를 깡그리 잊어버리게 하거나, 과거를 꽤 온전하게 남겨 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예산은 한정적이고, 온전하게 남기기엔 우리나라 근대의 시골집이라는 게 그렇다. 별로 남길 것이 없다. 건축가는 이전 집의 배치를 그대로 가져오긴 했지만, 그것은 열쇠는커녕, 실핀도 되지 않았다. 

 

 

그는 고심 끝에, 그리고 철거 끝에 또 다른 열쇠를 발견했다. 창고가 되어버린 곳간 속 오래된 뒤주의 판문들. 오래된 뒤주를 발견하고 그는 남몰래 유레카를 외쳤을 것이다. 고재가 된 뒤주는 안주인의 심드렁한 눈빛을 바꿔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건 아직 열쇠가 되지 않은 고철에 불과했다. 그는 이 고재를 진주의 박민철 목수에게 전했고, 그것은 퇴색한 세월을 벗고, 조각조각 끼워져 식탁의 조명으로 변신했다. 건축가는 묵직한 나무 조명을 부부에게 선물했다.

 

부부가 마주하고 식사를 할 때마다 ‘밥은 먹고 다니냐.’라고 묻던 부모님의 애정을 떠올릴 터였다. 그리고 자식들도 식탁에서 넉넉한 따스함을 물려받을 것이다. 이 조명 하나로 수류헌은 선친이 머물렀던 과거가 안주인 개인의 기억으로만 회상되는 집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그리고 이웃까지 과거를 목도할 수 있는 세월을 품은 집이 되었다. 서울집 살림 같지 않게 아주 단출한 영동집에서 제일 그럴듯한 ‘가구’는 이 조명이 되었다. 안주인이 네스프레소 커피를 올려 내어준 낡은 소반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화내겠지만. 어쨌든 그 조명으로 건축가는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었다며 그 간의 고충을 털어 놓았다.


수류헌의 나무

 


집을 구성하는 나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다. 수류헌은 흙벽돌집이 될 뻔 했지만 단열을 고려해 목조 주택이 되었다. 일단 외벽은 탄화적삼목이다. 짙은 회색의 컬러강판 지붕과 조화를 이루어 차분하다. 통나무집만 나무집이라고 생각하는 동네다. 마을 이장님도 이 집이 나무로 된 집인지도 못 알아챘을 만큼 그 동네에서는 유일무이한 세련미를 갖추고 있다.

  

마당은 마을을 훤히 보고 있지만, 현관은 길 쪽에 숨어 있다. 나무 현관 안으로 들어서면 앞에 있는 통유리 창과 문 너머로 뒷마당과 산이 보인다. 안으로 들자마자 또 바깥이다. 지루하지 않은 구조다. 왼쪽의 복도를 지나 위치한 거실과 부엌으로 가기 전에 오른쪽으로 가서 한 계단 오르면 새까만 반닫이가 지키고 있는 커다란 편백나무 찜질방이 기다리고 있다. 뒤 켠에 자리 잡은 아궁이에다 3일에 한 번 불을 때도 훈훈하다고 한다. 향과 온기가 단 번에 몸을 감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집이 넓었으면 하는 자녀들의 바람은 이 편백나무 찜질방으로 수렴되었다.


남향의 거실과 부엌에는 세모 지붕을 그대로 살린 편백나무 천장이 높이 자리하고 있다. 작다면 작은 그 공간은 높은 천장 덕에, 그리고 마당이 훤히 보이는 커다란 유리창 겸 문 덕에 한정 없는 공간으로 보였다. 거기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시간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 곳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안주인은 소파를 창을 바로 보도록 놓지 않고, 창 옆 구십 도 각도로 놓아 공간과 시간이 비켜가는 걸 즐기고 있었다.


거실에서 자작나무 합판으로 된 벽을 지나면 안방이다. 안방은 크게 네 공간으로 나뉘어져 문이 없는 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들어가자 마자는 서재 겸 응접실로 쓰이는 바깥양반의 공간이다. 한 칸 더 들어가면 침대가 놓인 작은 방이 있고, 그 옆이 안주인의 파우더룸, 그리고 욕실이다. 욕실에는 족욕을 위한 편백나무 욕조가 낮게 자리 잡고 있다. 이만하면 이장님이 몰라봐도 ‘나무집’이라 하겠다.


부러운 마음을 둘러대는 핀잔

 


집을 짓는 중에 지나가는 이웃들의 핀잔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그 중 하나는 처마였다. ‘한국집에 처마가 없다니.’ 70년대 슬레이트집이 한국집인 동네 어르신의 한 마디다. 건축가는 처마를 과감히 버리고 마당과 연결된 통유리 섀시를 네모난 강철로 입체감 있게 둘러쳤다. 햇빛도, 비도, 이 신식 처마가 막아줄 것이다. 처마 아래 바닥에 빗물이 만드는 조각을 못 볼 뿐이다. 


창고를 집과 똑같은 모양으로 짓는다는 것도 ‘한국집’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논란거리였다. 농사짓는 시골집에 없어서는 안 될 창고는 그저 멋없는 커다란 회색 벽돌로 대충 지어지거나 더 멋없는 회색 컨테이너가 대신 하기 일쑤다. ‘뭐 창고를 집처럼 지어’, ‘집을 왜 두 채나 지어.’ 이런 소리를 들었다. 그렇지만 그건 아마 ‘창고가 굉장히 멋스럽군요.’의 다른 표현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엌과 바깥으로 연결된 다용도 실은 ‘서양집 같다.’는 소리를 듣게 하는 주범이었다. 그래도 손의 흙이든, 밭작물의 흙이든 그 흙을 한 번 떨궈낼 중간 공간이 있다는 것, 안주인만의 ‘문’이 있다는 것은 그 비밀스런 문으로 서로 안부를 전하는 동네 안주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


밖으로 통하는 길이 다섯 개

 


‘커피 한 잔 하고 가요!’ 안주인은 시도 때도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부른다. 밖으로 통하는 문이 현관 뿐 아니라 마당, 다용도실, 뒤 켠으로 다섯 개나 되니, 이웃과의 교류는 얼마나 활발할까. 이웃들은 부모님과의 추억 속에 큰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고, 부모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런 이웃들이 없었다면 과연 수류헌이 다시 태어날 수 있었을까. 부부는 수류헌을 아예 열어놓고 살기로 했다. 안주인은 설거지를 하면서도 모서리 창문 너머 동네로 난 길을 내다보며 초대할 이 없나 연신 바깥을 내다본다.

 

새 집의 깨알 인테리어 자랑도 하고, 뒤주로 만든 조명 이야기도 늘어놓고, 맛있는 커피도 대접하기 위해서다. 이웃에게 커피를 퍼주느라 생긴 안주인의 고민은 언제까지 딱히 맛도 없는 캡슐 커피를 대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더 이상 바깥양반이 아닌 유종우 씨는 농한기에 바리스타로 변신하여 이웃들이 들어앉은 편백나무 방에 불을 지피며 솥뚜껑에는 커피를 볶으셔야만 할 것 같았다.

 

▲ 건축가 이영재 소장이 옛집의 폐기 목재로 만든 등조명


부모님의 집은 헐리고 새 집으로 바뀌었다. 부모님이 오래도록 가꾼 포도밭도 내년이면 아로니아 밭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나 이 집은 부모님의 이름을 기억하는 금인영재, 소호재, 수류헌 등으로 불리며 오래된 흔적들을 그대로 모시는 여전한 영동시골집이다.

 

글 배우리사진 석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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