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 명필림이 사는 집 그리고 가구

건축 / 백홍기 기자 / 2019-10-26 19: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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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승효상
가구장인 박태홍
명필림 심재명

 

우리나라 건축을 대표하는 승효상 건축가, 독창적인 디자인과 기능으로 가구계의 버팀목이 되는 박태홍 목수, 국내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심재명 대표. 각 분야에서 당대를 대표하는 이 세 사람이 한 공간에 각자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2년 전 파주 출판단지 내 영화, 책, 음악, 건축을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명필름 아트센터가 문을 열었다. 시대를 풍미한 여성 영화 제작자 심재명 대표의 삶과 인생을 대변하는 이 공간은 영화 콘텐츠존, 영화관, 공연장, 북카페 등을 갖춘, 소통하는 공공의 장인 동시에 심 대표의 쉼과 개인적인 교류를 위한 사적인 공간까지 마련되어 있다.


선과 면에서 찾은 아름다움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의 명필름은 영화 제작, 지원, 교육을 담당하는 문화재단 명필름랩과 영화와 공연 등 문화콘텐츠를 제공하는 아트센터 건물로 나뉜다. 땅에 툭 박힌 두 건물의 위엄을 살리는 건 선과 면으로 구성된 입면이다. 단순한 직사각형 건물은 여러 방향으로 뚫린 긴 창문들, 금속의 선 구조물, 그리고 광장을 향한 전면 유리를 통해 다채로운 시각적 자유가 제공된다.

일반인이 자유롭게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아트센터 동이다. 아트센터 지하에는 영화관이 있고, 1층은 북카페‘모음’, 2, 3층은 공연장으로 이뤄졌다. 주로 멀티플렉스에 밀린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은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라 여유로운 공간을 확보하고 중앙에 명필름의 간략한 역사를 나열한 진열장을 뒀는데 소목장 세미의 작품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즐기듯 진열장도 간결하게 제작해 영화관 분위기에 맞췄다.



1층의 차분한 분위기를 이끄는 북카페는 건물의 외관이 준 간소한 웅장함을 가구로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의 가구는 건축가 승효상이 디자인하고 박태홍 목수가 제작했다. 다만 가구는 예상 외로 원목이 아니라 합판이다. 합판이라고 해서 가볍게 볼 것이 아니다. 건축을 닮은 커다란 책장은 역시‘선’만으로도 위엄을 준다. 책장이 선이라면 커다란 테이블은 면이다.

별로 돋보이지 않는 합판의 진가는 (집성처럼 쪼개지지 않는) 넓적한 상판의 면이 책장의 선과 대비되어 그 사용의 의도가 명확해진다. 깔끔한 면에는 다만 결구법을 그대로 드러내 촘촘히 박힌 합판의 줄무늬가 마치 바느질 모양처럼테이블을 장식하고 있다. 의자는 등받이와 팔걸이를 같은 높이로 설정하고 간결한 선에 면 등받이를 가볍게 받친 디자인이다. 따라서 테이블 위로 의자가 삐져나와 상판에 머무는 시선을 방해하지 않는다.



 

 

등받이가 낮아 오래 앉아 있기에는 다소 불편하지만 약간의 불편함이야말로 꼿꼿한 마음가짐을 몸이 스스로 돌보게 만들도록 한 건축가의 배려다. 더구나 천장의 구조물과 연결되는 책상과 의자의 덤덤한 선은 책을 보는 공간이 필요로 하는 고요함을 자아낸다.

 


몸과 마음의 경계 풀어낼 공간


심재명 대표는 명필름 아트센터가 영화를 만들고, 교육하고, 관객과 만나는, 한국 영화계에서는 매우 드문 공간이라고 자부한다. 그렇게 심 대표의 인생이 녹아든 건물 4층에는 일상의 공간도 함께다. 아예 ‘영화 인생’을 완성하려는 그녀의 포부가 담겼다고 할 수 있다.
 


박태홍 목수의 작품은 영화에서 살짝 비켜난 일상의 주거 공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가 살면서 가구에 들인 관심이 영화만큼이나 큰 것은 물론 아니지만, 공간 인테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실용성과 견고함을 필수로 갖춘 가구라는 생각은 확고하다. 과시하지 않는 미감은 덤이다. 그러면서 집과 공간은 사람을 지배하지 않아야 한다.

승효상 건축가의 소개로 만난 박 목수는 그 생각에 맞는 삶을 실현할 수 있도록 건축가의 디자인을 응용해서 건축에 맞는 간결하고 견고한 가구를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집은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녀는 특히, 거주 공간이 휴식과 안정감을 주기를 원했다. 충무로의 품질보증 마크로 불리는 그녀지만 역시 늘 불안하고 긴장의 연속인 영화 인생에서 치열하고 절박하게 살아왔다. 집만큼은 몸과 마음의 경계를 풀어내고 싶었다. 

 

 

그렇게 꾸며진 공간이 이른 아침 독서하고 글쓰기에 좋은 중정 앞의 책상이고, 가족 또는 지인과 함께 추억을 쌓는 식탁이며, 한적한 오후를 만끽하는 베란다 앞의 작은 테이블이다. 아래 공공 공간의 가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원목으로 묵직함을 더했다는 것이다. 특히나 1층에서는 복잡한 풍경에 가려져 볼 수 없던 작은 테이블과 의자의 선은 보는 것만으로도 참선에 들게 하는 묘한 분위기가 있다. 심 대표의 가구들은 몸의 편안함보다는 마음을 다스리는 힘을 다지게 하는 든든한 지원군인 셈이다.

무엇보다 심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가구는 식당의 10인용 식탁이다. 책상이나 작은 테이블이 혼자만의 사적인 여유를 즐기는 곳이었다면 식탁은 가족 그리고 이곳을 방문한 손님들과 소통하며 추억을 만들고 이야기를 쌓는 곳이다. 식탁은 상판의 폭이 넓고 길지만, 무게 중심을 받치는 다리를 판재로 사용하고 균형과 안정감을 갖춘 뒤 장부에 의한 결구법으로 디자인 요소도 담아내고 나무의 수축과 팽창에 의한 휨은 상판 아래에 보이지 않게 보강재를 덧대 깔끔함과 동시에 견고함도 갖췄다. 사적 공간과 공공 공간의 접점으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흠이 없는 자태다. 

 



풍요로 가득한 건물

 

승효상 건축가가 명필름의 건축물 그 자체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건 기능과 공공성에서 비롯된 풍요다. 두 매스로 나뉜 건물을 브리지와 건물 사이를 관통하는 도로의 선으로 연결해 미와 동선의 편리성이라는 기능을 확보했다. 이에 더해 광장을 마련해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난방과 환기에 필요한 기능과 디자인 요소가 가미된 창 또한 외부와 소통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도록 한다.

 

 

 


창을 통해 외부인은 명필름의 내부 활동을 인지하고 내부인은 외부인과 주변 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여 사무공간이라는 한계성을 벗어난다. 공공성은 단순히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모일 수 있는 장소라는 국한된 의미에서 더 확장된다. 이렇듯 명필름 사옥은 하나의 인프라를 제공하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나눔과 공감을 형성하며 건물 안에서 삶의 풍요를 얻는다.

건축물 가운데 거시적인 공간의 완성도는 높지만, 미시적 공간의 완성도가 낮은 것도 있다. 건축가의 역량일 수 있고 건축주의 안목 때문에 그럴 수 있다. 명필름의 공간은 어떨까? 문학에 기승전결이 있듯 건축에도 기승전결이 있다. 파주 명필름은 심재명 대표가 자신의 삶과 철학을 이야기하고 승효상 건축가가 공간으로 다시 엮은 것을 박태홍 목수가 가구로 거들었다. 그렇게 시작부터 완결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묶은 공간은 심재명이라는 한 사람의 공간이 아닌 우리를 위한 건물로 그 자리에 존재한다.

가구사진 우드플래닛, 건축사진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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