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나카시마(George Nakashima) 작품론
: 코노이드 의자에 기댄 1960년

Furniture / 유재영 기자 / 2018-10-11 19: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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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나무
불안을 떠안은 ‘완벽’
1960년산 코노이드 의자
불멸의 가구

 

 

그 남자는 그녀의 순결을 책임졌다 -‘순결한 나무’라는 표현이 가능할까. 1960년대 조지 나카시마라는 사내는 나무가 가진 본래의 순수한 모습을 담아내려 애썼다. 옹이가 서고 터지고 줄고 금이 가며 탈색되는 과정을 나무의 본질로 이해한 남자는 대단히 편안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남자였다. 여자도 남자를 닮아갔다.

이 가구는 악기와 같을 것 

 

 

 

건축학을 전공했던 그가 가구디자이너로 나섰을 때 안토닌 레이몬드 건축사 사무실 동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잠깐의 외도겠지, 곧 돌아오겠지.’하고. 그러나 나무의 물성을 이해해 버린 이 남자의 바람기는 끝이 없었다. 나무만큼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이가 또 있을까.

진열장 속에는 악기들이 말라가고 있었다
한 호흡을 기다려 흥청거렸을 지난밤
소리의 유곽에서 영혼의 성대가 후두둑 옷을 벗고
내 몸에 꼭 맞는 악기
조율이 필요 없는 그녀는 오랜 침묵을 노래하고 있다
활대를 당겨 당신의 성감을 타는 나는
부르기 쉬운 음표가 된다.

 

조지 나카시마의 가업을 이은 딸 미라 나카시마는 아버지란 이름을 두고 이렇게 연주했다. “손수 나무 베어 다듬고 말리고…. 쪼개진 곳, 불탄 흔적까지도 디자인으로 살려낸 아버지의 그 섬세함….”
그래서 평론가들은 그의 가구가 악기를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의자 등판에 늘어선 간결한 나무 빗살은 손이 스치면 딩동댕하고 고즈넉한 소리를 낼 것만 같다.”

잡스도, MB와 같은 생각이다

 


애플사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발표 때 앉아있던 의자는 르 코르뷔지에 작품이고 그의 거실에 있는 의자는 조지 나카시마의 작품이다. “내가 거실에 유일하게 두는 물건(라운드 암체어)”이라며 극찬한 조지 나카시마의 가구가 그의 안식처였던 것.

 


뉴욕, 도쿄, 파리, 캘커타 등지를 돌며 건축가로 활동했던 조지 나카시마가 처음 가구에 손을 댄 것은 1941년, 그해 마리온과 결혼한 그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있은 후 일본계 혈통이라는 이유로 수용소로 보내졌다. 아이다호 미니도카 수용소에서 일본 전통공예가를 만나 대패가 든 공구상자에 손을 댄다. 전통과 현대, 과학과 수공예를 결합시킨 그의 작품은 이후 록펠러가문과 미국 전역의 박물관과 기념관이 사들이면서 명품 반열에 오른다.

 

 

 

조지 나카시마는 그의 딸 미라에게 가구의 일 원칙을 가르쳤다. 편하고, 단단하고 아름다울 것. 나무 수종을 놓고 차별하지 말 것이며, 조형미를 갖추면서도 인간에게 유익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은 가구를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았다는 찬사를 받게 된다. 


장인의 솜씨가 그러하듯이 조지 나카시마의 작품 역시 자연스럽게 나무를 수작업으로 결구한 모양을 갖췄다. 특별한 보강 없이 상부하중을 지탱할 수 있는 비법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1960년산 코노이드 의자가 지닌 캔틸레버 구조는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감을 던져 주기에 충분했으나, 이 의자는 편안하고 튼튼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도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도 이 거장의 가구를 사들였다.

불안을 떠안은 ‘완벽’

 


자연의 본원적 아름다움을 본뜬 철학적 성찰은 가구를 집안에 안착시키는 포용의 디자인을 낳았다. 그래서 MIT 공대에서 건축을 전공한 이 디자이너는 “가구는 건물과 같다. 오직 그 스케일이 다를 뿐이다. 난 작게 만드는 것이 행복하다.”며 목공예가의 길을 택했다.


나무는 그렇게 노회한 건축가의 의자가 되고, 탁자가 되고, 진열장이 되었다. “나무의 부분 부분은 저마다 고유한 운명을 지니고 있으며, 나는 그 의미를 표출해줌으로써 죽은 나무에 새 생명을 찾아준다.” 생명의 나무, 건축물과 가구가 어우러져 집 안 구석구석 어느 한 곳 소홀함 없이 안착되고 포용하는 것이 목재의 묘미다.

 

사람의 흔적이 더해질 때 완벽한 ‘가구’의 구실을 한다는 것이 조지 나카시마의 생각이다. 자연의 거대한 테두리 안에 깃든 고유의 선과 색, 힘을 담아낸 50년 동안의 작업은 나무의 본질을 깨달아 그곳에 실용성과 미학을 덧대는 창조주의 역할과 다르지 않을 터. 거장의 손길은 나무껍질을 벗기는 일에서 재단하고 칠을 입히는 모든 과정에 담겨 이제 그의 가구는 자연의 섭리를 논하는 경지에 올랐다고 평가할 수 있다.

 


코노이드에 기댄 오후, 말줄임표 … 같은 비가 내린다
가문비 나무
제 너비 안으로 쏟아내는 비는
한 사람을 위한 과장의 부호일 수도
스스로 노래하지 않는 악기는
결국 침묵 속에서 당신의 호흡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가구와 전반적인 생활용품의 현대화가 한창이던 1940년대 조지 나카시마는 당시 한스 놀(Hans Knoll)과 그의 아내 플로렌스 슈스트 놀(Florence Schust Knoll)이 운영하는 가구 회사 놀 인터내셔널(Knoll International)과 콜라보레이션을 발표했다. 조지 나카시마의 장인 정신과 놀의 테크놀로지가 결합한 콜라보레이션 작품은 대중에게 그의 가구를 널리 알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외에 조지 나카시마의 주요 커미션 작품으로는 뉴욕 주지사인 넬슨 록펠러(Nelson A. Rockefeller)의 자택 가구, 컬럼비아 대학교의 인테리어 등이 있다. 

 


 

1990년 5월 세상을 등진 이 남자는 자연을 제 어머니로 여기는, 그래서 남성적인 힘을 껴안은 여성성의 디자인을 통해 나무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추구한 건축가이자 가구공예가, 철학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가 불어넣은 숨결로 완성된 가구는 숲에서 온 것들이었다. 고향마을 워싱턴 스포케인의 올림픽반도의 숲에서 건져 올린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는 소로우가 <월든>이라는 책을 남겼듯 불멸의 가구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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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나카시마 : 미국 국적의 일본계(日本系) 2세인 조지 나카시마는 워싱턴에서 출생했으며, 1929년 워싱턴 대학 졸업 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대학원에서 건축학과 임학을 공부했다. 1933년 유럽으로 건너가 다음해 모국인 일본 도쿄의 레이몬드의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하던 중 인도 폰디체리의 수도원 건설에 뛰어들었다가 그만 수도승이 되기도 했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가 제2차 세계대전 후 펜실바니아 주 뉴호프에 정착해 독자적인 가구제작에 뛰어들어 평생을 가구제작에 몰두했다. 대표적인 수상경력으로는 1928년 프랑스 L'Ecole Americaine des Beaux Arts로부터 받은 퐁텐블루 그랑프리와 AIA(미국건축협회) 금상, 1968년에서 1988년간 일본에서 활동했던 그의 전시로 형성된 문화교류를 인정받아 일본의 천황과 정부로부터 세 번째 성보메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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