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젝트 다큐멘트 | Credenza

Object / 장상길 기자 / 2018-03-23 19: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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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 주방의 독립형 찬장으로 시작된 크레덴자의 역사는 현대로 이어져 다양한 쓰임의 가구로 파생되었다. 특별한 크레덴자 가구를 소개한다.

 

빨래터 | 신민석, 신민석공방

1800W×470D×750H l 레드오크, 돌 l 180만원

 

추억도 디자인이다

 

신민석의 크레덴자, 빨래터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담겨 있다. 그는 유년 시절 외할머니와 보낸 빨래터에서의 기억 속에서 빨래판과 조약돌, 잔잔한 수면에 이는 물결 같은 이미지들을 끄집어내 디자인에 녹였다. 빨래판의 조형적 특징과 조약돌의 이미지가 크레덴자라는 가구 형식이 만나자 공예적 분위기와 풍부한 감성이 느껴지는 가구가 됐다.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낯선 형태의 조합을 통해 가구에 즐거운 분위기를 부여했다는 면에서 이 가구는 매력적이다. 물론 신민석이 빨래판의 이미지를 가구에 표현한 건 처음이 아니다. 그럼에도 빨래판의 조형성이 가구에 표현되면서 주는 경쾌한 감성만큼은 여전히 새롭다.


이 가구의 가장 큰 시각적 재미는 직선 형태인 빨래판의 물골 요철을 곡선으로 변화시켜 파문을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물결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프레임과 알판 구조를 포기하고 통판을 사용했다. 문 두 짝을 나란히 붙이면 물결의 이미지는 더욱 경쾌하게 전달된다. 가로 45cm 높이 65cm 정도의 통판이 다른 구조와 결구 없이 독립적으로 있을 때 자칫 변형에 취약할 수 있어 문 뒤쪽에 철제 보강대를 설치해 보완했다. 중간의 곡선 요철과 위 아래로 보이는 무늬결이 시각적으로 충돌하는 감이 있는데 이는 나뭇결과 파문의 패턴이 자유분방하게 보이도록 의도한 결과다. 그럼에도 곧은결로 저 무늬를 구성했을 때의 간결함이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신민석이 가구에 담은 마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크레덴자에서는 어딘가 따뜻한 감성이 느껴진다. 이런 감성의 동화가 결국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다. 신민석은 이 가구를 사용하면서 빨래판 물결무늬를 바라보고 만지면서 그가 그랬듯 자연스레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겼으면 하는 바람을 이 가구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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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e Credenza II | 한성재, Analogizm


1330W×570D×1040H l 월넛, 자작나무합판, 스틸, 유리

 


일상을 바꾸는 가구유희

 

한성재는 일상 기물을‘애용’하는 방식을 강조하기 위해 ‘유희적 재미’라는 개념을 Wine Credenza II에 담았다. 한성재가 말하는 유희적 재미란 가구를 사용하면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기능을 넘어서는 고유의 가치를 담은 가구를 소장하고 즐기는 데서 오는 특별한 만족감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 와인 크레덴자는 밖으로 돌출된 레버를 돌리면 체인과 기어로 연결된 벨트가 회전하면서 콜렉팅한 와인병이 차례로 리스팅되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이 과정에서 한성재는 와인을 고르는 재미를 사용자에게 선사한다. 단순하지만 기능에 충실한 기계장치에 의해 움직이는 가구는 매우 동적인 경험을 선사하는데, 크레덴자가 작동되는 과정을 전면부와 상부에 뚫려 있는 창을 통해 시각적으로도 유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가 한층 배가된다.


이 일상의 유희를 한성재는 ‘문화’라는 단어로 압축하고 설명한다. 가구를 비롯해 우리의 생활 속에 존재하는 일상의 사물들에도 문화적 향유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사회의 대표적 기호문화인 와인과 이 크레덴자는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우리가 가구를 비롯한 일상의 도구를 사용하는 행위는 좀 어렵게 말하자면 사실 자아의 표현이다. 한 사람이 사용하는 사물은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을 표상하는 상징이 된다.

 

  

한성재가 와인 크레덴자를 처음 선보인 건 2010년으로 근 8여 년 만에 한층 정교해지고 럭셔리해진 모습으로 버전업되었다. 초기 버전은 자작나무 합판으로 제작되었지만 Wine Credenza II는 월넛의 묵직한 감촉이 외관을 감싸고 있다. 내부의 기계장치도 원리는 같지만 좀 더 수공예적인 느낌이 풍성해져 한층 깊어진 완성도를 느끼게 한다. 하중을 지탱하는 골격은 스틸 구조로 설계되었는데 크레덴자 내부의 기계장치와 와인병의 하중에 대비한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디자인 면에서도, 월넛과 황동 조합이 유형처럼 넘쳐 조금은 식상해진 탓도 있겠지만, 월넛과 유광의 실버와 블랙으로 도색된 두 가지 컬러의 스틸 조합은 잘 어울린다. 철은 사실 적절한 위치에서 적절한 비중으로 조화를 이룬다면 나무와 잘 어울리는 재료다. 오래 전부터 스피커 작업을 통해 나무와 다른 이질적 재료가 섞이는 방식을 고민해 온 경험이 풍부한 한성재는 이 와인 크레덴자에서도 자연스러운 재료 혼합을 보여주고 있다.


스피커 작가로 대중들에게 익숙한 한성재는 디자이너라기보다는 조형 아티스트에 가까워보인다. 그는 스피커를 비롯한 전작들에서 일관되게 조형적 낯설음을 시도했다. 이 와인 크레덴자 역시 요모조모 뜯어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짐작가지 않는 형태 뒤에 실용성과 유희를 감추고 있다. 이 재기발랄함에서 그가 문화를 이해하는 방식과 일상의 문화의 향유를 강조하는 그의 생각들이 읽힌다. 럭셔리를 단순히‘비싼 물건’으로 인식하는 것과‘가치 있는 물건’으로 인식하는 것이 바로 문화의 차이다. 한성재는 자신의 작품에 고유의 에디션을 부여해 소량으로 제작한다. 메이커로서 디자이너로서 조형 아티스트로서 그 역시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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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고지기장 | 김승현 박현정, 제너럴그레이
  

1780W×400D×800H | 호두나무  


창을 낸 거실장

 

‘안아서 지고 간다’는 한옥 창호의 안고지기는 한 짝을 다른 짝에 몰아넣고 창틀까지 함께 여는 방식이다. 안고지기장은 미닫이와 여닫이를 합친 안고지기창의 기능을 담아낸 거실장이다. 가느다란 창살을 나열한 문은 부재에 따라 7가지 모양을 반턱맞춤으로 연결한 128개의 살로 제작했다.


문은 나무의 부드러운 질감을 느끼며 옆으로 완전히 밀어낸 뒤 살짝 앞으로 당기면 스르륵 가볍게 열리다. 또한, 사용자의 수납 방식에 따라 가구 공간을 명확하게 나눠 사용할 수 있게 가이드 역할을 하고, 문을 모두 활짝 열면 내부가 완전하게 드러나는 구조다.

 

 


안고지기장은 한옥 띠살창의 느낌을 담아낸 창살문과 정갈하고 정확하게 나눈 전면 프레임에 의해 예스워 보이면서 차분하다. 창살에서 이어진 수직은 가느다란 6개의 다리로 이어져 경박스럽지 않은 경쾌한 가벼움과 긴장감을 전한다. 또, 문을 열면 서랍장에 작은 황동 손잡이가 보인다. 중앙에 있는 황동 손잡이와 여닫이문에 설치한 황동 경첩이 정확히 점대칭을 이뤄 은근한 매력도 감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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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보브블루 거실장 | 이인원, 우공공방
 

2000W×450D×650H | 화이트오크. 하드메이플 | 295만원


모던 스타일에 감춰진 견고함

 

어보브블루 거실장은 공방을 시작하면서 주문제작한 작업이다. 이름은 주문자의 인터넷 닉네임에서 따왔다. 주문자와 깊이 상의하며 북유럽 스타일로 설정한 거실장은 다리 구조, 프레임 두께, 전면 공간 분할에서 우공공방만의 색깔이 배어나도록 고민한 끝에 완성했다.


전면 프레임은 시선의 흐름이 막히지 않게 높이를 최대한 낮게 하고, 서랍장 전면은 모던한 느낌이 들도록 간결하게 폭을 분할해서 조절했다. 모두 짜맞춤으로 제작하고 앞판 여닫이문은 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뒷면에 띠열장을 심었다. 이인원 목수의 가장 큰 고민이었던 서랍장의 효과적인 무게 분산은 격자 벌집 구조로 하부를 만들고 긴 가로대를 설치해 하중이 고르게 퍼질 수 있게 했다.

 


지난 5년간 우공공방에서 유일하게 A/S했던 게 어보브블루 거실장이다. 주문자의 집이 한강과 인접한 아파트라 맑은 날에도 단지 내에 안개가 낄 정도로 습했다. 이러한 환경에 의해 문이 휘어 새로 제작한 것이다. 이젠 문제없다고 하지만, 그에겐 나무와 가구에 대하는 마음이 좀 더 겸손해지고 관성에 빠지고 느슨해질 때면 잊지 않고 떠올리는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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