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아티스트] 폴 캡틴, 동양철학을 말하는 서양예술가

아트 / 서주원 기자 / 2019-06-19 19: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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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존재를 은유하는 조각가
나무조각은 고전적이면서 동시에 현대적
정교한 형태를 빚어

 

조각가 폴 캡틴의 언어는 산스크리트(Sanskrit)다. 그의 작품을 포괄하는 단어는 ‘순야타(Sunyata)’이다. 이는 ‘공(空)’을 뜻하는 고대 인도어다. 해외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철학은 다름 아닌 동양 불교다.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반야심경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물질은 공허한 것이며 공허한 것이 곧 물질이니, 감각과 생각과 행함과 의식도 모두 이와 같다.’는 뜻이다. 호주의 아티스트 폴 캡틴은 작품에 이러한 불교적 관점을 투영시킨다.

절대적 존재를 은유하는 조각가
 


폴 캡틴은 대학의 예술이론 수업에서 불교를 처음 접했다. 대승불교의 한 갈래인 선종에 매료된 그는 불교 명상을 통해 작품을 구상했다. 작가는 불교에서 받은 영감을 자신의 관점과 함께 섞어 작품으로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순야타’란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의 이론이다. 비어있는 상태를 뜻하는 ‘순야타’는 ‘공허한’, ‘속이 텅 빈’이라는 뜻의 형용사다. 폴 캡틴의 설명을 따르면 이는 곧 영원불멸한 절대 진리이자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다.

폴 캡틴은 이 같은 추상적 개념을 시각화했다. 특히 조각에 듬성듬성 난 원형과 사각형의 구멍은 그의 작품세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제가 나무에 구멍을 낸 건 고정되지 않고 변형이 가능하며, 잠재력으로 가득 찬 무한한 세계를 표현하고 싶어서였어요. 이게 바로 제가 나무를 깎아 보여주려 했던 ‘순야타’인 것이죠.”

 

 

그는 작품에 현실 세계를 반영하는 동시에 흘러간 과거, 그리고 잠재적 가능성으로서의 미래를 함께 버무린다. “저는 과거, 현재, 미래를 섞어 표현하고자 합니다. 각 시점을 한데 섞는 거죠. 그뿐만 아니라 유형과 무형, 고전과 현대, 과학과 종교 같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들을 결합하기도 합니다. 어느 쪽으로는 규정되지 않고 가변적인 상태를 조각으로 표현하고자 하죠.”


근원의 나무, 테크놀로지를 만나다

폴 캡틴은 젤루통(Jelutong)으로 조각한다. “젤루통은 원산지가 말레이시아예요. 제가 사는 호주의 퍼스에서는 무척 희귀한 수종에 속하죠. 하지만 조각하기엔 꽤 좋은 나무라 전 이것만 고집해요.” 조각재로 활용되는 라임 나무나 피나무(Basswood)도 좋지만, 워낙 귀해서 쓰지 못한다고. “물론 여기서 구하기 쉬운 나무도 있죠. 하지만 너무 단단하거나 결이 거칠어 조각하기에 좋은 나무는 아니에요.” 작가는 해부학을 기초로 인체의 전체적인 비례를 잡아 스케치한 후 젤루통 집성재로 조각을 완성한다. 물질세계를 형성하는 근원은 정신세계에 있다는 철학을 담은 그의 작품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폴 캡틴이 나무를 조각 재료로 이용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나무로 만든 조각은 고전적이면서 동시에 현대적이죠.” 태초부터 존재했던 자연 생물인 나무는, 인간이 만든 문명의 도구인 기계로 다듬어진다. 그는 나무라는 근원적인 오브제가 현대적인 기술로 완성되는 과정에 의의를 둔다. 그가 작품의 재료로 나무를 활용하는 이유다. 각 시점을 한 작품에 녹여내려는 철학은 재료와 도구를 선택하는 일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시간과 시대의 공존

폴 캡틴은 실제적이면서도 동시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형태를 조각한다. 이는 실제 사물에 작가의 관점을 반영한 결과다. 폴 캡틴의 조각에는 다양한 시간과 세계가 함께 자리한다. 한편 현실적인 풍모를 지닌 조각이 있는가 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인 모양새를 한 조각도 있다. 우선 일부 작품에선 우리 자신이 보인다. 물질문명의 발달로 풍요를 누리게 현대인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제품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이를테면 속옷과 안경, 핸드폰 등의 물건들이 있다. 

 

 

반면 팔이 여섯 개 달린 형상을 한 조각에선 현실과는 다른 차원의 기류가 흐르는듯하다. 흡사 불교의 천수관음을 닮았다. 인체를 가로로 절단한 듯 모습이 위태로운 조각 또한 비현실적이다. “이 사람은 불교에 귀의한 수도승입니다. 전 시간의 흐름을 끊고 그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어요. 마치 VCR을 일시 정지 했을 때의 화면 같은 느낌으로요. 정지 화면은 소리를 내며 지그재그로 움직이잖아요. 이 아이디어가 몸이 잘린 수도승을 만든 거죠. 가슴 속 내면은 이미 명상에 한껏 잠겨있지만, 외부로부터는 끊임없이 방해를 받는 인간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불교 철학의 본질을 조각으로 표현하려는 작가의 태도는 3D 프린팅이 연상될 만큼의 정교한 형태를 빚어낸다. 그는 단 한 작품을 조각하기 위해 수백 시간의 정성을 들인다. 그 시간은 그에겐 축제와도 같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공허의 축제’다. 만물은 공허하니 마음을 비우고 집착을 떠나보내라는 불교의 공(空) 사상은 서양의 예술가가 조각한 나무에 완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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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Kaptein|호주의 퍼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조각가 폴 캡틴은, 호주의 Bankwest Art Gallery와 뉴욕의 Krause Gallery를 비롯한 수많은 전시에 참가한 이력이 있다. 특히 2014년에는 Bankwest Art Prize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더 많은 작품은 공식 웹 사이트 paulkaptein.com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자료제공 Paul Kap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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