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티커] 카페 장춘 도예, 다시 쓰는 집

Life / 배우리 기자 / 2018-03-12 19: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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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을 가로질러 흙담에 ‘장춘’이라는 간판을 단 집을 찾았다. 옛 부엌문과 새 참나무로 투박하지만 꼼꼼하게 짠 커다란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면 슬러지가 걸러지고 열기가 한 번 더 돌아나가도록 개조된 난로에서 참나무가 활활 탄다. 나무들은 모두 어디에서 왔는지 다양한 톤의 나무들로 치장된 실내가 묘하다.



“다시 쓰는 집이네?” 이 카페를 방문한 한 건축가의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집에는 주워온 것이 많다. 누군가 미처 챙기지 못한 추억이나 가치를 몰라봐준 사람들에게서 떠난 나무들을 다시 쓴 집이다.

문경 토박이 도예가 장동수와 서울 처녀 두나는 5년 전 문경에 신혼집을 차렸다.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두나 씨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마다 문경새재를 넘었다. 그렇게 슬레이트 지붕의 시골집에서 2년을 살다가 도자기 공방을 준비하면서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전에 살던 집에서 황토방 두 채를 지어보고, 왠지 집도 너끈히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옆 동네 논 가운데 땅을 구해 작업 공간을 품은 카페와 집을 짓기 시작했다. 두나 씨는 서울과 문경을 오가면서 집 짓는 걸 도왔고 오다가다 만난 지인들과 이웃들도 모두 달라붙어 3년에 걸쳐 집과 카페를 지어냈다. 손재주 하나 믿고 덤벼든 집짓기에는 생각지도 못한 고충도 많았다.



처음에는 구체적인 모양도 생각하지 않았다. 무턱대고 카페 틀만 잡고 벽을 세우니 생각보다 크고 높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며 건물 양쪽 다락으로 오르기 위한 계단을 뜯고 다시 만들어야 했을 때 부부는 스트레스로 앓기도 했다. 집터로 계획했던 카페 뒤의 땅은 사지 못해서 카페 옆에 붙은 집이 살짝 길어지기도 했다. 벽 쌓는 사람이 창문 크기를 적은 숫자를 잘 못보고 창문 자리를 크게 내는 바람에 나무로 틈을 막은 외벽은 실수지만 신선한 디자인이 된 건 초보 목수 혹은 감리사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은둔 건축가에게 자문도 얻고, 삶의 방향도 정리하면서 느리게 지은 집은 그만큼 애착도 크다. 더구나 집주인을 포함해 이 집을 짓는데 참여했던 사람들은 지붕을 타고 용접 일을 하는 부업을 얻었다. 성취의 결과물이 심적인 것뿐 아니라 집 이외에도 물적인 부분에도 꽤나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부부는 쨍한 새것의 느낌을 좋아하지 않는다. 집 안에는 시댁에서 물려 내려오는 백 년 된 이층장과 반닫이가 있다. 젊은 부부, 이케아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물려받은 것들과 오래된 나무들 그대로를 사랑한다. 자연스럽게 새집처럼 보이지 않는 새 집을 위해 재활용 목공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이 카페의 컨셉은 ‘다시 쓰는 집’. 집을 짓는데 오래 걸린 이유기도 하다.





동네방네에 “우리 집에 다 버리세요.”라고 말을 했다. 어떤 날은 집 허무는 데서 전화가 오고, 어떤 날은 한 고등학교에서 의자를 버린다고 연락이 왔다. 쓸 데가 조금이라도 있을 것 같으면 무조건 다 받아 쌓아두었다. 온갖 것들을 다 모아놓고 쓸 만한 걸 분류하고 쓰지 않는 건 필요로 하는 곳에 재나눔 하는데 집 짓는 시간만큼 걸린 것 같다.

다시 쓴 것들의 흔적은 카페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건물 안의 기둥들도 허무는 집에서 가져온 것들이 많다. 누가 집을 허문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떤 곳은 굴삭기 비용까지 대가며 자재들을 모조리 뽑아와 구들과 기둥 등 요모조모에 썼다. 오래된 집에서 나온 것 중에서도 카페 주인이 애정하는 것은 기둥으로 쓰인 일명 지네발, 마룻대. 그렇게 모으다보니 상량문이 쓰인 것은 4개나 된다. 집 안에 내려오는 역사의 증거물인데도 새 집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화목거리였다. 새 집이라도 한켠에 잘 두면 집 자체로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인데 사라지는 게 아까워서 카페의 기둥으로 쓰게 되었다. 




사람들의 발과 만나던 학교의 마룻바닥은 묵은 때를 살짝 벗고 서로 모여 바테이블과 3미터가 넘는 메인테이블로 변신했다. 일일이 못을 뽑긴 했지만 몇 개는 남겨두었다. 무조건 새것처럼 보이게 애쓰는 건 오래된 것들이 가진 세월에 대한 예우가 아니니까. 멧돌, 다듬이, 칼국수판도 각각의 특징을 그대로 살려 기둥의 주춧돌, 첫 번째 계단, 테이블이 되었다.

다시 쓴 건 재료뿐만이 아니다. 학교에서 쓰던 신발장, 어떤 집에서 온 소반, 어느 오래된 동물병원의 찬장, 정시마다 소리를 내는 시계, 그리고 오래된 책들은 여기저기 놓여 문경의 역사와 이야기를 이룬다. 흩어져 있으면 고물이거나 쓰레기가 될 나무와 사물들이 모여 각각 다른 공간,

다른 공기 속에서 오랫동안 숙성해 만들어낸 톤을 뽐낸다. 새 집이나 다시 쓰는 새집이나 이것저것 셈하면 결국 들어간 예산이 별반 다르지도 않지만 그 덕에 문경에 민속박물관 하나 차려진 셈이다.


애초에 생각한 건 공방이었지만 부부가 차를 좋아하기도 하고 사람들도 공방에 편히 올 수 있도록 카페를 열기로 했다. 도예가의 공간답게 곳곳에는 도예 작품이 있다. 차에도 조예가 깊은 장동수 작가는 중국에서 배워 만든 하얀 개완을 오래된 찬장에 진열했다. 최근에는 로스팅도 배워 직접 하기 시작했다. 로스터도 옹기로 빚어놓았다. 도예가가 도자기에 구운 커피 맛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카페 주인이 도예가니 커피잔과 접시, 찻잔을 직접 만든 것은 물론이고 커피, 차와 도예작업이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파생된 작업들도 꽤 있다. 메인테이블의 위를 장식한 건 커피색 도자기 조명인데 질감이 독특해 알고 보니 흙을 얇고 작은 조각으로 만들어 커피포대에 무늬를 찍고 서로 붙여서 만든 조명이다. 바스툴은 도자기 물레에서 그 디자인을 빌렸다. 굵게 제재한 참나무를 둥글게 깎아 위 아래로 기둥에 박아 만들고 가운데는 노끈을 감았다. 물론 나무는 돌아간다.

바에서 차를 마시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빚어보라는 의미일까. 도예가 아니랄까봐 새로 지은 작은 방 두 칸의 황토집 아궁이도 가스 가마처럼 만들었다. 열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문은 두껍게 하고 안에 벽돌도 넣었다. 집 짓느라 작업 못한 한풀이겸.



장동수 작가의 콜라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페 장춘의 명함에는 두나 씨가 키우는 고양이 춘장이, 흑염소 탄이와 개 토르, 고양이 강호, 귀여운 오골계들을 그렸는데 그걸 그대로 흙으로 빚어 카페 문을 지키게 했다. 장춘이 도예만을 위한 카페, 혹은 부부만의 카페가 아니라 이웃들, 동물과 함께 하는 따뜻한 공간이라는 건 붉은 토우들만 봐도 알만하다.

시골 사는 일이 장동수 작가에게는 너무나 익숙해보였다. 이곳에 계속 더 적응해야 하는 건 두나 작가다. 지난 해 완전히 서울 생활을 접고 재택근무를 시작한 그녀가 새록새록한 시골 생활 적응기 ‘저년일기’를 보면 시골에서의 즐거움, 동시에 약간의 고단함을 안겨주는 일상과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시골 생활은 기대했던 것보다 한가롭지만은 않았다. 시골 생활이야말로 매일매일 버라이어티한 이벤트들로 가득하다. 그나마 겨울에는 작물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괜찮은 편이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가면서 식구를 늘리는 동물들을 매일 봐야 하고 봄과 여름 넘쳐나는 열매와 나무들을 돌보다보면 진이 빠진다. 하지만 아카시아 벌꿀맛을 볼 때면 시골생활의 피로가 가신다. 따뜻한 바람이 밀려오는 봄에 카페테라스에 멍하니 앉아서 지나가는 차들을 구경하면 문경에서 텍사스로 순간여행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녀는 바빠진 만큼 구매욕을 자극하는 새롭고 다양한 물건들과 가게들을 쫓던 시간만은 챙겼다고 한다. 물건을 사러 가더라도 선택지가 많지 않으니 삶이 단순해지고, 소비에 시간을 덜 쏟게 된다. 자신을 위해 옷을 사는 시간보다 이웃을 위해 꽃과 나무에 더 관심이 간다. 일상이 비어있는 새것보다 이야기가 있는 헌 것으로 채워지게 된다. 삶은 자연스럽게 바라던 대로 자연과 가까워진다.

더구나 일보다는 주변 사람에 집중하며 자신의 삶도 오롯이 지켜가는 일은 서울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이제 시작인 장춘의 봄은 길고 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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