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칼럼] 침묵이 필요한 시간

칼럼 / 송은정 기자 / 2019-01-22 18: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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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원룸으로 이사한 친구의 집에 잠시 들리게 됐다. 책상과 옷장 하나씩을 두니 방 안이 꽉 차는 간소한 공간이었다. 겨울 이불이며 자질구레한 살림거리를 사느라 이번 달 월급이 어느새 바닥을 쳤다는 친구의 투덜거림 너머로, 화분이 하나 보였다. 

 

허벅지 위를 살짝 넘는 키의 나무였는데 이름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단다. 지갑도 궁한 녀석이 발 디딜 틈도 없는 방에 굳이 화분을 들인 것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그랬냐고 다시 물었더니, 혼자 살기 적적해서라고 대꾸했다. 


그러다 문득, 폴란드인 친구의 방 한가운데 놓여 있었던 가시 돋은 나무가 떠올랐다. 하필이면 지나다니는 길목에 둔 바람에 걸음을 옮길 때 마다 팔 언저리에 생채기를 냈던 나무였다.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때도 나는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전에 살던 이 방의 주인이 두고 간 것인데, 그다지 예쁘지도 않은 데다 성가시기까지 해서 내다 버리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는 대답을 들었다. 매일같이 상처를 주는 데도 막상 방에서 사라지면 허전할 것 같다며 말끝을 흐리는 그녀에게 그저 웃어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마땅히 대꾸할 말도 없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아파트 베란다에는 나무가 심어진 화분 두 세 개가 놓여 있었다. 직접 돌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것이 나와 나무가 한 지붕 아래 공존했던 최초이자 마지막 기억이다. 그 뒤로 몇 번 식물을 키워보려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주변에서 선물로 받은 선인장이며 허브 따위의 것들이었다. 마음이 부족했는지, 물을 너무 자주 혹은 드물게 주어서였는지 그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다. 

 

그저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몇 번의 좌절 끝에 다시는 나무든 꽃이든 식물을 집에 들이지 않기로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생명체에 대한 나름의 얄팍한 죄책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요즘 들어 작은 나무 한 그루를 방에 들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퇴근 뒤 집에서 마저 다시 노트북 화면을 습관처럼 바라보는 내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지던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지긋이 나무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지는 못할망정, 옆에라도 함께 있다면 꼬깃꼬깃한 나의 일상이 아주 조금은 느슨해지지 않을까 싶은 기대가 든 것은.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화분과 씨앗, 흙이 한 세트로 구성되어 있는 상품이 제법 많이 나와 있었다. 보기만 해도 싱그러운 율마나 넙적한 잎이 예쁜 고무나무도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내 몇 번이고 되물었다. “책임질 수 있겠어?”


최근엔 ‘반려 동물’처럼 ‘반려 식물’이라는 말도 종종 쓰이는 모양이다. 심리적으로 의지하는 모종의 긴밀한 관계를 식물과 맺는 듯 보였다. 혼자 살기 적적하다던 친구도, 차마 화분을 버리지 못했던 또 다른 친구 역시도 그런 간절한 마음에서였을까. 

 

유행처럼 소비되는 힐링과 위로의 문장들 사이에서 이제 그만 귀를 막고 싶은 요즘, 입을 굳게 다문 나무의 고요한 침묵이 나는 그립다. 책임지지도 못할 나무를 필요로 하는 이기적인 마음일지라도 올해에는 정갈한 화분 하나, 침대 곁에 두련다.

[글 송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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