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윤이서 '시간 여행자의 물건 기억'

Craft / 육상수 기자 / 2018-03-30 1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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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자신에게 꼭 맞는 방이 있듯, 사물도 제 자리가 있다. 공간 디자이너이자 제품 디자이너인 윤이서의 작업실은 도심의 작은 산 아래에 있다. 작업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자연을 모티프로 한 작품과 공예품, 손때 묻은 가구들이 단정히 각자의 자리에 있다. 그는 공간을 연출할 때 그 공간에 있을 사람과 사물에 집중한다. 공간은, 사물은, 그 사람과 가장 닮았기 때문이다.

 



- 인테리어 디자인과 공간 연출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원래 패션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어릴 때부터 공간과 공간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첫 시작은, 어느 날 소문으로 듣고 매거진에서 내 공간을 촬영했던 일이다. 그리고 담당 에디터가 공간 연출을 제안했다. 그 이후부터 여러 매거진에서 연락이 왔다. 인테리어 디자인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하다 보니 개인 공간, 상업 공간 등으로 활동 영역이 넓어졌다. 누군가에게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게 아니라서 두려움을 느꼈을 만 한데, 그때는 겁이 없어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 마음에 남은 대표적인 작업은 무엇인가.
“디자인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결과물 또한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람과의 호흡이 마음에 더 깊이 각인된다. 대표적으로 대전에 있는 ‘솔브릿지국제대학’이다. 큰 규모의 프로젝트였고 동시에 클라이언트, 스텝들 모두가 서로의 의견에 귀 기울인 덕에 조화롭게 진행됐다.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다.”
 

윤이서 디자이너가  공간 연출한 <솔브릿지구제대학> 내부 인테리어

- 사람을 위한 공간, 사물을 위한 공간으로 나누어 작업을 한다면 어떻게 다른가.
“두 경우 모두 작업을 앞둔 공간을 처음 봤을 때 직감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 첫 느낌 그대로 공간을 만들어가는 편이다. 지난 청담동 주에디션샵도 그랬다. 특히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 때, 공간 안으로 그 사람의 마음이 쉴 수 있는 요소를 하나씩은 꼭 만들어 주려고 한다. 사물을 위한 공간을 만들 때는 사물이 갖고 있는 주제와 스토리를 더 잘 보여주기 위해 고민한다.”

- 지금의 오야동에 작업실을 만들며 공간과 사물의 관계성에 대해 고민한 부분이 있다면.
“오랫동안 산 속에서 산 적이 있을 만큼 나무, 숲, 자연을 좋아한다. 작업실을 오야동에 마련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산이 가까이 있어서다. 그런 곳은 해도 집 안으로 잘 든다. 작업실에 있는 가구, 소품 모두 새로 산 것은 하나도 없다. 그간 작업했던 작품들, 예전 샵을 운영할 때 두었던 가구들이다. 모두 어느 정도 낡고 생채기가 났다. 사물을 이 공간에 배치할 때 고민한 점이라면, 해가 잘 드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2층에 미니 스튜디오가 있지만, 제품 사진을 찍을 때도 인위적으로 조명을 비추는 것보다 자연채광 아래에 둘 때 제일 예쁘고,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사람에게도 자신의 방이 있듯이 사물에게도 자신만의 자리가 있다. 그 사물에게 꼭 맞는 자리를 찾아 주려고 한다.”

- 공예품 디자인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00년도에 처음 영국 디자이너 작품 위주의 편집샵 <이서>를 열었다. 인테리어 디자인 위주로 작업을 해오고 있었지만, 그때도 노트를 시작으로 다양한 제품을 조금씩 만들어 왔다. 인테리어 디자인, 패션 디스플레이, 제품 디자인은 당연히 작업 프로세스가 다르지만 모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또 할 수 있는 작업의 영역 안이다. 만드는 것 자체가 워낙 재미있으니까 생각나는 대로 늘 만들어 왔을 뿐이다. 비즈 아트 공예품도 그중 하나이다. 은으로 만들어보고 싶어 6개월 동안 새벽 2시까지 잠든 적이 없을 만큼 혼자 온갖 자재를 사서 시도해봤다.







- ‘미니 테이블 매트 자개장’은 특히 전통의 미가 돋보인다.
“우리가 제일 잘 알고 더욱 가치 있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한국 전통의 미다. 무조건 전통 그대로를 계승해야만 한다는 게 아니라, 전통적인 요소를 더하거나 자신만의 다른 방식으로 전통을 다룰 수 있다. 물성이 사람에게 주는 파장에 대해 꾸준히 공부하고 있는데, 전통의 요소 중에는 사람에게 좋은 파장을 주는 것들이 많다. 자개장의 자개, 테이블 매트의 색동처럼 작품을 만들 때 이를 고려해 작업한다. 색동을 조금 더 나만의 관점으로 해석해 작업하고 있다. 공예는 실용적인 물건에 장식적인 요소를 부가해 그 가치를 높이는 예술이다. 실용과 전통이 만나 우리의 것을 더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니 매트 자개장

- 윤이서가 바라는 앞으로의 공예의 모습이 궁금하다.
“공예는 우선 과거에 비해 관심도가 높아졌고, 플랫폼도 좋아졌다. 실제로 오랫동안 작업을 해온 장인을 재조명해서 반가웠다. 그런데 여전히 아쉬운 점은 있다. 작가들은 자신만의 다양한 프로세스와 디자인으로 작업해야 한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재료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선행이 된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 젊은 디자이너들이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보다 전문적인 인력과 프로세스가 체계적이고 유기적으로 구축돼야 한다.”

-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나갈 계획인가.
인테리어 디자인을 아예 안 하지는 않겠지만, 개인 작품 활동에 비중을 더 두고 싶다. 인테리어는 디자인적으로 완벽한 공간보다 그 사람에게 어울리고, 그 사람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좋은 인테리어라고 생각한다. 4월 즈음에 있을 개인 전시를 앞두고 지금은 목가구에 색동 칠을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역시 자연이 모티프가 되어 색동 가구와 하얀 천이 첩첩산중을 이루는, 규모는 크지 않아도 힘 있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 윤이서가 꿈꾸는 개인 공간의 종착지는 어떤 모습인가.
“풀이 자라는 흙과 나무가 많은 산이 있는 곳이면 좋겠다. 집은 한옥이 아니어도 건축적으로 한옥의 요소가 배어 있으면 좋겠고 아니면 미국의 창고와 같은 집이어도 괜찮다. 그 공간이 어떤 모습이든 맨발로 흙을 밟으면서 생명을 심고, 키울 수 있다면 그 이상 더 좋은 삶은 없을 것 같다.”

- 윤이서에게 ‘나의 방’이란.
“내 방에는 내가 제일 오래 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침대 머리맡에는 제일 아끼는 조명, 외국에 나갔을 때 가져온 소품들이 있다. 이것들은 금방 손에 닿고 언제든 볼 수 있다. 인테리어 소품을 두는 게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있고 그래서 끊임없이 내게 자극을 주는 것들이다. 제일 나를 닮은 곳이자 내가 가장 편한 곳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며 시간 여행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내게 방은 시간여행의 방이자 또 하나의 나, 윤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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