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의 시선: 아버지의 가구

Life / 김은지 기자 / 2018-04-12 18: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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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가구는 그냥 가구일 뿐이지만 이성철 작가에게 가구는, 아버지다.

 

 

내 아버지는 생선 장수다. 비린내 가득한 시장 한 구석에서 엄마와 아버지는 평생 생선을 팔았다. 먹고 사는 일 앞에서 이름도 체면도 없이 생선 가게 아줌마 아저씨로 살면서, 자식들 밥 먹이고 학교 보내느라 고된 줄도 몰랐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의 유일한 도피처는 책이었다. 번잡한 시장통에서,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만큼 좁디좁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틈틈이 책을 읽었다. 손님이 오는 줄도 모르고 책에빠져 있을 땐 어김없이 어머니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서너 번 잔소리에 시달린 날에는 조용히 자리를 피해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그래봤자 아버지가 계신 곳은 뻔했다. 나는 아버지를 찾아 동네 다방으로간다. 익숙하게 눈길 한 번 주고 다시 책을 읽는 아버지 옆에 앉아, 일부러 조금 남겨 두신 다방 커피를 홀짝거리는 것이 좋았다. 아버지 몸에 배인 생선 비린내와 촌스러운 꽃무늬 소파의 퀴퀴한 냄새도, 책 읽는 옆얼굴도, 남자들만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왠지 모를 책임감도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때 나는 다방에서 한 움큼 집어온싸구려 사탕을 입에 물고 다시 시장으로 돌아가는 길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뭐가 그리 재미있어서 그렇게 책을 읽으셨을까. 지금 와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책을 좋아했다기보다 책으로 도망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일기장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의 옆얼굴 같은 건 잊고 지낸 날이 더 많았다. 아버지의 꿈이었고 삶이었던 나는, 자라서 내 꿈과 내 삶을 챙기느라 바빴다. 아버지는 내가 챙기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 계실 줄로 알았다. 시장 한 구석에, 다방 소파 한 쪽에 늘 계실 줄로 알았다. 돌아가시고 나서야 20년 동안 일기를 쓰셨다는 걸 알게 됐다. 모든 일기장의 첫 페이지에는 같은 메모가 적혀 있다. ‘아무 쓸모없는 낙서를 끄적거려 본다.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는 혼자만의 생각을 쓴다. 누구라도 이 낙서를 본 사람은 마음에 남겨두지 말기를.’
마음에 남겨두지 말라던 메모 때문에 그 일기들은 내 마음에 더 분명하게 남았다. 일기장엔 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남자로서 안고 있던 삶의 무게가 꾹꾹 눌러 적혀 있었다. 아버지가 누군가의 아들이기도 하다는 것, 누군가의 남자이기도 했다는 걸 우리는 모른 체하고 살았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로 일기장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당신이 돌아가실 줄 알고 계셨던 걸까. 돌아가시던 2004년의 일기장 표지엔 이런 메모가 적혀있다. ‘이 노트가 마지막 낙서가 될 것 같다.’ 늘 빼곡하게 채우던 일기장은 한 줄짜리 일기를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광주 병원에 온 것이 삼일 째다.” 며칠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위한 가구
아버지는 생선 팔아 번 돈으로 비싼 미술공부를 시켜주셨다. 그림쟁이는 돈 못 번다고 싫어라 하시면서도 내가 그린 그림 한 점을 꼭 방에 걸어두던 분이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나는 다시 그 비린내 나는 시장으로 돌아가, 쪼그리고 앉아 책 읽던 모습 앞에 서 있다. 그렇게 책을 좋아했던 그에게 제대로 된 서재 한 번 만들어 드리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참을 수가 없다. 주인 없는 일기장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리운 마음을 아무리 그려봐도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를 만지고 싶었다. 내 기억속의 아버지를 꺼내 만지고, 냄새 맡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 를 위한 가구를 만들었다. 직접 만든 가구들이 놓인 방에 생전에 좋아하셨던 배호와 이미자, 이난영의 노래를 틀었다. 그제야 내내 붙잡고 있던 아버지를 보내드릴 수 있었다. 가구를 만드는 것이 내게는 아버지를 기리는 일종의 제사였던 셈이다.
아버지는 이제 없다. 아버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들의 그리움이 만든 가구 몇 점만 덩그러니 있다. 기대 앉아 책을 읽을 의자, 일기 쓸 책상, 책과 일기장을 놓아둘 콘솔… 아버지는 분명 그 많은 가구 중에서 제일 작은 스툴에 쪼그리고 앉아 하루 종일 책을 읽으셨을 거다. 그런 상상을 하면서 아버지를 추억한다. 가늘고 단단했던 아버지의 팔 같은 팔걸이를 어루만지며, 아버지 대신 앉아서 책을 읽고 그림도 그린다. 그래서 내게 가구는 아버지다. 당신에게 가구는 무엇인가?

 

**이 기사는 가구드로잉 이성철 작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자의 상상을 더해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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