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각장인 허길량, 비천상으로 하늘을 오르다

공예 / 김수정 기자 / 2019-12-26 16:5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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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조각의 정점
곡선의 아름다운 표현
장인의 예술성 담아
여의공양비천

 

204년 1월 불교 목조각의 대가 허길량(61) 장인이 비천상을 주제로 두 번째 개인전 <소나무 비천(飛天)되어>를 열었다. 2002년 33점의 목조관음상을 선보였던 첫 번째 전시 이후 12년만이었다. 아흐레 동안 열린 전시에 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다녀갔다. 방송 3사와 주요 신문들도 일제히 허 장인의 전시 소식을 전했다. 불교조각전으로는 이례적인 대성황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 손에 이끌려 순천 선암사에 맡겨진 게 55여 년 전 일이다. 스님들이 깎은 불상들이 어린 동자승의 마음에 들어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해 목조각을 배웠다. 스물여덟에 당대 불교 미술의 대가였던 우일스님의 문하에 들어갔다. 스승으로부터 이어진 조선 불교 미술 계보의 적자가 된 허 장인은 인천 흥륜사 천수천안 관음보살, 밀양 표충사 사천왕상, 제주 관음사 천불전 본존불을 비롯해 수천 점의 불교 성상을 조각하며 당대 최고의 불모(佛母)로 이름을 알린다.
 

일엽연화산화비천

영화무비천

 

장고주비천

장인으로서 그의 삶은 2001년 목조각장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정점에 오른다. 가장 큰 불행은 가장 빛나던 시기에 찾아왔다. 억울한 송사에 휘말렸고, 무형문화재 지위를 박탈당했다. 장인으로서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미국에 가자고 했다. 그러나 허 장인은 ‘장인은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칼을 쥐었다.

그때부터 깎기 시작한 게 비천상이었다. 비천은 불가의 하늘에 살면서 부처가 설법하는 곳에 나타나 악기를 연주하고 연화를 공양하는 선인(仙人)이다. 비천은 범종의 부조나 탱화에 흔히 등장하지만 그 까다롭고 오묘한 모양 때문에 입체 조각으로 재현된 예는 드물었다. 비천상 조각을 위해 허 장인은 소나무를 선택했다. 소나무는 자연스레 배어나는 송진 때문에 보존 기간이 길고 칼을 잘 받아 섬세한 조각을 하기에 좋은 나무다.  

 

정병무비천

허 장인은 지름 80cm이상의 강원도 육송을 구해 통째로 파나갔다. 수십 년 목조각을 한 그에게도 비천상 조각은 고행이었다. 옷자락처럼 섬세하게 표현해야 하는 부분은 두께가 3mm도 채 되지 않았다. 칼질 한 번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나무의 결과 질감을 살리기 위해 사포질도 하지 않았다. 대신 조각칼로 수만 번 다듬었다. 칼질을 마친 조각에는 여러 번 생옻칠을 올렸다. 그렇게 꼬박 십년 동안 서른세 점의 비천상을 깎았다.

“종교조각은 기교만 가지고는 경지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정신이 중요합니다. 예부터 불상을 조각하는 불모는 술 담배도 하지 못했어요. 내가 조각한 불상 앞에 사람들이 절을 올리고 기도를 하는데 내가 그보다 종교적으로 깊고 절실할 수 있을까 늘 고민했습니다. 매순간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각했어요.”

 

바라주비천

 

박주비천

봉두비파주비천

 


해금주비천


비천을 깎는 장인의 마음이 결코 가볍지 않았으련만 깎아 놓은 비천상은 가볍게 나는 듯하다. 몸을 타고 흐르는 천의(天衣)는 불지 않는 바람을 따라 부드럽게 흐르고 엷은 미소는 은근하다. 압권은 무릎을 꿇은 자세로 생황을 불고 있는 생황지비천(苼簧持飛天)이다. 상원사 범종에 새겨진 비천에서 영감을 얻은 이 조각은 생황을 부는 비천의 오묘한 표정과 편안한 비례, 송진이 내는 붉은 밤색이 유난히 그윽하게 표현되어 수작으로 꼽힌다.

“훗날 문화재가 되어도 부끄럽지 않을 작품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조각합니다. 목조각인지라 어쩔 수 없이 금이 가는데 저는 ‘나무라 어쩔 수 없다’는 게 변명 같아서 싫어요. 이 부분을 해결하는 게 장인으로서 저의 숙제입니다.”
 

목조각 장인 허길량

 

 

한용운 시인의 시구처럼 허 장인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다.” 분심이 일 때면 불경을 읽고 조각도를 고쳐 잡았다. 그 지난한 고행 끝에 번뇌는 비천이 되어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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