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가 에른스트 갬펄의 적품, 살아서 숨 쉬는 질료

Craft / 배우리 기자 / 2018-03-29 16:5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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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9일, 에른스트 갬펄의 작품이 서촌, 조병수 건축가가 새로 지은 ‘더 그라운드’에 잠시 안착했다. 진열대 없이 사람들과 같은 바닥을 점유하고, 더 가까이 어울려 대화를 하는 작품들. 작가의 바람대로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큰 것들은 그 자체로 조각이 되어 창밖의 아담한 서울 풍경과 조화를 이루며 공간과 소통했다.

 

 

지금의 갬펄에게는 떠오른 작품의 형상으로 나무를 고르는 일이든 나무를 고르고 형상을 떠올리는 일이든 어느 것이 먼저든지 이 둘은 거의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어쨌든 작품의 핵심은 나무와 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의 아이디어를 나무가 거부하면 그냥 과감하게 나무의 말을 따른다. 나무 자체의 가능성을 보는 그는 자연의 질료와 협업을 한다고 생각하며 작업한다.

  

과정은 이렇다. 몇 년이고 바깥에 두었던 참나무를 잘라 작업실에 가져와서 원하는 모양으로 깎는다. 워낙 거대한 나무는 채 마르지 않아서 여전히 변형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나무의 중심, 위아래, 좌우, 옹이, 뿌리 등을 관찰해 이 나무가 어떤 모양을 가질 수 있는지 미리 조금 점친다. 이제 30년이 다 되어가는 경력이라 가능한 이야기다. 속을 먼저 깎고, 두께를 일일이 맞춰가며 바깥쪽도 깎는다. 처음 그가 선반작업을 막 마쳤을 때는 대칭이지만 나무는 점점 제 모양을 찾기 위해 몸을 비튼다.

 


이 과정에서 나무를 석회에 담그고 털어내는 과정을 반복해 작품의 내구성을 높이고 산이나 철분, 점토 등으로 색을 입힌다. 단지 오일로 마감해 나무의 색을 살리는 것을 넘어 여러 가지 미네랄 성분을 써서 나무가 낼 수 있는 다양한 색상을 연구한다. 묘한 가을의 색을 내는 작품은 점토의 미네랄이 참나무 속 타닌과 반응한 것이다. 옹이와 나이테는 물론이고 벌레 먹은 자국이나 버섯이 자라던 부분까지 가리지 않고 자연의 언어를 그대로 따른다. 그가 하는 일은 오로지 나무가 가진 완전한 형상과 그 정수를 찾는 일이니 말이다. 그 작업은 지금까지도 그렇고 언제나 진행 중이다. 

 


‘볼’이라면 나무가 아니라 유리나 도자기로 된 것들 모두 사랑한다고 말하는 갬펄. 작품들에 거창한 주제를 붙이지 않고 단순하게 게패쎄(그릇)라고 칭하거나 나무의 나이 등을 작품 제목으로 두는 이유는 심오한 주제를 볼로 표현한다기보다는 깊숙이 파들어간 볼 자체가 심오한 주제를 담고 있는 매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미 그릇이 담고 있는 것, 영어로 ‘vessel’이 그릇 뿐 아니라 운송 수단인 선박, 동물의 혈관, 식물의 물관까지 뜻한다는 걸 짚어보면 ‘볼’이 그에게, 혹은 인류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물체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 메시지에 힘을 담기 위해 작가는 나무가 가진 에너지에 자신이 느낀 것들을 촘촘하고 반복적인 ‘선’으로 새겨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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