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박병선과 목수 강성철, 그들이 만든 작은 대패 하나

공예 / 박신혜 기자 / 2019-05-27 1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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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동북쪽 불암산 너머에 쇠와 나무를 다듬는 장인들이 숨어있다. 세상 모든 것이 보란 듯이 자신을 내놓는 마당에 욕심내는 것 없이 그저 제몫의 작업에만 열중하는 사람들이다. 작업 후 마실 소주 한 잔이면 고된 작업의 모든 피로가 씻기는 우리시대의 목수 박병선(61)과 강성철(61)을 만났다.

목수, 목수를 찾아가다
길잡이는 정석공방의 목수 정 석씨다. 그가 대장장이 박병선과 수공구 목수 강성철을 찾아온 건 9년 전이다. 제대로 된 수공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40여 년 동안 쌓은 기술에 연장 하나 만드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다. 원하는 연장을 만들어 건네니 이게 아니란다. 가구 만드는 목수의 요구가 말도 못하게 까다로웠다. 투덜거림을 무시하고 주어진 작업에 전념할 수도 있었을 텐데 두 선생은 오랜 경력을 쌓은 이들이 으레 부리는 강짜를 부리지 않았다. 외려 젊은 목수의 잔소리를 귀담아 듣고 받아들였다. 

 

 

 

 

생각해보면 맞는 일이다. 연장을 쓰는 목수의 말을 들어야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 대량으로 납품하다보니 가볍게 취급되기 쉽지만 수공구 하나하나에 두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부분이 없다. 연장을 알아봐주는 이가 나타나니 만드는 이들의 작업도 빛을 발했다.

목수 정 석은 자신이 쓸 수공구만을 의뢰하는 것이 아니다. 옛 문헌과 기록들을 뒤져가며 발견한 과거의 수공구 역시 두 선생의 손에 의해 재현된다. 지금은 일반화된 손대패가 없던 백제시대에는 창대패를 사용했다. 틀에 날을 넣고 대패를 완성하기 전 문헌상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박병선 선생의 손에 의해 재현된 창대패는 시연 후 자료로 고이 남겨졌다.  

 


 

 

이외에도 해를 거듭하면서 참 많이도 만들었다. 손잡이가 통쇠라 가죽으로 감싸놓은 조선끌, 삼각형 모양의 삼각끌, 네모나게 구멍을 팔 때 쓰는 박음끌 등 목수의 연장은 종류별, 용도별로 열심히 쌓여갔다. 대패라고 다를 것 없다. 날이 곧게 선 곧날대패, 양손으로 잡고 당겨쓰는 남경대패, 대패집 옆으로 살이 붙어 숨은 주먹장을 만들 때 사용하는 연귀대패, 대패바닥에 삼각형 날개가 달려 모서리의 날카로움을 없애고 모양을 다듬을 때 쓰는 모서리대패 등. 작업에 필요한 부분이 생기면 일반대패는 물론 특수대패까지. 두 사람의 손에 의해 못 만드는 연장이 없다. 40년 내공이 마음껏 펼쳐지는 순간이다. 

 



작은 대패 하나를 만들기 위해

다다닥다다닥. 쇠를 다듬는 타정기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몇 번을 깨도 얼기 일쑤인 영하의 날씨에 맨발 차림으로 불 앞에 앉아있는 이가 있다. 대장장이 박병선이다. 그는 지금 무르고 무거운 떡쇠에 청지강을 붙이기 위해 쇠의 온도가 850도에서 900도까지 올라가는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이 온도보다 낮으면 붙지 않고 높으면 녹아버리니 적당한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새빨갛게 달구어진 쇠가 신호를 보낸다. 이 틈을 놓칠세라 꺼낸 쇳덩이를 타정기에 넣고 다듬는다. 마모가 되며 불꽃이 튄다. 적당한 모양이 나면 불순물을 뺀 쇳가루에 붕산을 섞은 접착제를 떡쇠와 청지강에 바른다. 드디어 어미날 하나가 형체를 드러냈다.

 


 

 

 

물론 접쇠를 하지 않고 통쇠를 이용해 얇게 만들어 사용할 수도 있다. 옛날에는 우연히 좋은 쇠가 발견되길 바랄 정도로 기술이 부족했지만 이제는 아주 작은 단위와 성분까지 제어해 용도에 맞는 쇠를 만들 수 있으니 기계로 쉽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통쇠가 아닌 이중복합강을 찾는 이들이 있다.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갈아야하는 부분이 넓은 통쇠보다 적당한 양만 갈아 쓰면 되는 편리함 때문이다.

 


이제 성형이 필요하다. 날을 만들기 위해 쇳돌에 그라인딩을 하고 열처리 후 담금질을 하면 그제야 날 하나가 완성되는 이 작업을 위해 기계를 다시 맞추고 쇳돌을 가는 대장장이의 손길이 분주하다. 벼린 날은 모두 목수 강성철에게 간다. 대장장이가 만든 날이 들어갈 대패집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넓게, 좁게, 깊게, 날 각각의 특성에 맞게 일일이 나무를 깎아내야 하는 그의 작업실 한쪽에는 대장장이가 만든 날카로운 쇠들이 크기별, 모양별로 차곡차곡 놓여있다.


쌓여있는 백가시목 각재 중 손에 잡히는 놈 하나를 골라 적당한 크기로 잘라내면서 그의 작업은 시작된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한때 대패집을 흑단으로 만들어본 적도 있다. 흑단으로 만든 대패는 멋스럽지만 날이 잘 보이지 않아 실용성이 떨어진다. 작업하기 편한 대패를 만들려면 아무래도 가시나무만한 게 없다. 다듬은 목재에 깎아낼 선들을 대충 눈대중으로 그린다. 그린다고해서 그대로 깎아내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직감만으로 45도와 42도를 만들어내는 목수에게 정확한 수치는 의미 없다. 재단기계가 아닌 축적된 세월이 나무와 날의 각도를 세운다. 

 

 

백가시목은 굉장히 단단해 끌질하기 어렵다. 하지만 목수 강성철의 손길은 나무의 성질을 의심케 할 정도로 부드럽다. 팔 힘만으로는 깎아낼 수 없으니 온 몸을 이용해 작업해야 하는 작업이 쉬워 보인다. 다른 사람이 대패집을 깎는 걸 보고 그제야 어려운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대패 한 조각에 자신을 내던진 목수의 오른쪽 가슴의 굳은살이 훈장처럼 남았다. 모든 일은 감각으로 이루어진다. 원목이 깎이고 깎여 남은 부분이 줄어들수록 작업은 더 섬세해진다. 얇은 부분에 끌이 더 부드럽게 들어가도록 연장에 기름칠을 한다. 

 

드디어 세상에 없던 대패 하나가 탄생했다. 만들어진 대패는 사용하는 이가 연마하면서 사용해야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만든 대패로 나무를 깎는 목수는 사용자가 연마하기 편하게 날을 파놓은 박병선 선생의 배려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만큼 앞날과 뒷날을 숫돌에 갈아서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부르는 값, 부르지 않은 가치 

세월의 흐름에 따라 대형 기계가 들어와 작업하는 방식이 바뀌면서 수공구의 쓰임이 줄었다. 사라진 꼬리뼈처럼 가지고 있던 기능을 쓰지 않으니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다. 하지만 수공구의 맛을 아는 가구쟁이라면 대패와 끌을 놓을 수 없다. 짜맞춤을 하기 위해 파놓은 장부촉이 퍽퍽할 때 한 짝의 옆대패로 시원스레 밀면 험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난폭한 기계가 편하다는 생각은 단숨에 날아간다. 


물론 작업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박병선 선생은 조만간 재개발이 예정된 공방을 떠나 새 작업실을 찾아나서야 한다. 20여년을 땅 속 깊숙이 박혀있던 타정기와 성형기를 뽑아내 옮기는 일은 예정된 고생이다. 이미 작업실을 옮긴 강성철 선생이야 이사 걱정이 없지만 허리가 아파 작업이 더뎌지는 것이 문제다. 이런저런 생각에 삶이 팍팍해지면 쇠를 달구기 위해 피운 불에 후딱 구워낸 3초 삼겹살 한 점에 곡차 한 잔으로 시린 하루를 달랜다.

 


 

한 잔의 곡차에 옛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대장일 구경하는 것이 좋아 하굣길에 정신없이 구경하던 일. 외발썰매를 만든다고 마루 위에서 나무를 자르다가 대청마루까지 썰어버린 일. 아버지가 베어 온 원목 아까운줄 모르고 숭덩숭덩 잘라 마차를 만들어 어린 조카를 태워 다니던 일. 제대로 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제 기술을 갖기 위해 선배들 어깨너머를 열심히 훔쳐보던 것이 오감에 자연스럽게 새겨지기까지 장장 사십여 년이 흘렀다. 

 

 

 

오랜 시간이 전부라는 것은 아니다.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려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시대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흐르는 세월을 탓할 수 없는 노릇이니 선생들은 그저 주어진 작업을 묵묵히 수행할 뿐이다. 부족한 점이 있어 자연스레 사라지는 일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가치를 알아주는 이를 만나지 못해 사그라지는 것은 막아야겠기에 서둘러 그들을 찾아 나섰다.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자부심이듯 작은 끌 하나, 대패 하나는 박병선 선생과 강성철 선생의 자부심이다. 그들이 만든 수공구를 사용하는 사람들. 수공구로 만든 가구들. 그 가구를 집안에 들여놓은 사람들. 그들은 모두 대장장이 박병선과 목수 강성철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부디 그들의 자부심이 쇳가루와 톱밥가루를 털어내듯 가볍게 사라지지 않기를 새롭게 떠오르는 해에 기원하는 바이다.

 

사진 장뤽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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