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 사색과 탐색을 위한 사물 랩소디

아트 / 편집부 / 2019-06-18 16: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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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념무상의 공예
달항아리의 변이와 진화
공예, 예술, 도(道)의 경계 지점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은 그 자체가 존재감이듯 공예는 삶의 질량을 도모하는 장르이다. 기물(器物)라는 이름으로 역사와 함께 공생한 공예(工藝)가 예술, 디자인, 산업의 이기적 범주에 의해 아웃사이더로 전락, 어느 영역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을 겪고 있다.

영국 출신의 화가 겸 공예가인 윌리엄 모리스는 ‘필요하거나 아름답지’ 않은 것은 소유하지 말라고 했던가? 하지만 대중화를 앞세운 기술산업사회의 기세는 예술과 디자인은 물론 공예의 고유성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장르의 경계는 무너지고 그 경계에서 또 다른 장르가 생성되고 있다. 

 

 

흘러넘치는 싼 물건들이 집과 도시를 채웠다가 폐기되는 물질의 노예화에, 미미한 저항이라도 할세라 ‘목수’라는 낭만적 이름이 우쭐하는 요즘이다. 벽돌처럼 재단된 목재를 고성능 장비를 곁들이면서도 수제와 자연의 감성을 말한다. 마음은 목수인데 행위는 디자이너적인지 몰라도 목수와 디자이너 중 그 어느 이름도 소유하지 못하는 속칭 ‘수제가구 제작자’들이 양산되고 있다.

양산자 중에는 김규도 있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명함에 새길 적절한 자기 직함을 갖지 못했다. 긴 시간 동안 자기 이름 찾기를 골몰하는 와중에 다행이도 예술 같은 공예, 공예 같은 예술을 만났다. 상대적 쓰임의 관점에 절대적 주관이 개입한 것이다. 만들기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 위해 만들기를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19년 5월, 그는 사용 불가한 달항아리와 옹기로 개인전을 열었다. 특히 달항아리는 태토와 유약의 신비로운 조화로 완성되는 결핍의 공예이다. 부족하면서도 완전하고, 비어 있으면서도 꽉 차 보이는 무심한 아름다움의 결정체인 달항아리를 흙의 유동성과 유약 대신 목재의 불완전성과 결로 마감했다. 혹자는 그의 작품을 공예품 혹은 장인의 숨결 같은 상투적 언어로 단정할 수도 있다. 가야에서 조선에 이르는 공예의 감수성을 기준으로 판단하자면 김규의 작품은 전통의 차용 혹은 대체라는 언어에 갇힐 수도 있다. 지금의 기술로 옛 공예를 형태를 모방할 수는 있으나 정서 재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규의 처녀 발표작인 목조각(목공예로 부르지 않기도 했다.) 작품을 만듦과 쓰임에서 벗어나 해석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손재주가 뛰어난 목수라면 쉽게 그의 작업을 모방할 수 있겠지만, 목재의 불완전함과 자신의 결핍을 하나로 묶어 치유해 나가는 과정은 그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그만의 세계다. 그것은 현재를 사색하기 위한 투쟁일 수도, 미래를 탐구하기 위한 모험일 수도 있다. 이제 김규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료공학에서 철학으로, 다시 공간디자이너에서 목수로 전이한 김규의 청춘 여정은 쾌적한 바람이기보다는 폭풍의 비바람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여전히 천둥과 칼바람은 그칠 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모든 것이 멈춘 이후의 여백을 위해, 가야에서부터 조선 후기의 공예 정서를 톺아야 했다. 그것은 신기의 기술도, 천연의 조건도 아닌 오직 무심함이 이룬 사물의 완성을 탐구하기 위해서다. 

 

 

김규에게 에고이즘적 현대 예술과 소비의 평준화를 이룬 산업디자인,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잃은 공예, 상술에 오염된 핸드크라프트의 대한 시대적 사명감 같은 것은 없다. 이제부터는 오로지 한 인간의 실존적 자아를 발견하고자 하는 교과서 밖의 삶을 위해 공예적 기술을, 디자인의 실용성을, 예술의 독창성을 차용할 뿐이다.

 

 

그는 단 한 번의 전시로 ‘작가’라는 호칭을 얻었다. 앞으로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부를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은 이름의 호사에 안주하는 김규가 아닌, 엄격한 잣대로 몸을 꼿꼿이 세우고 고대국가에 살았던 무념무상의 도공을 만나고, 몸통이 굽은 나무의 이력을 살피는 목수의 무심을 찾아가는 그의 여정을 지켜보는 일이다. 그가 만든 나무 달항아리는 그 모든 과정을 상징하는 매개물에 다름 아니다.

 

사색하고 탐색하라. 예술 너머에 도(道)가 있다고 했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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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 : 홍익대학교에서 재료공학을 공부했고 이화여대에서 예술철학 석사 과정을 마친 후 프랑스로 건너가  L’ecole bleue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2016년, 2017년 <청주 젓가락페스티벌>(우드플래닛 주최), 2019년 <최소의 의자> 전, <매스앤 볼륨> 전(동대문DDP)에 참가했다. 2019년 5월에 북촌한옥청에서 <달, 얼굴lune, visage>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글: 육상수, 사진 : 김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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