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향해 걷다 '핀란드의 성 헨리 예배당'

건축 / 김수정 기자 / 2019-03-24 15:4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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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서 천장까지 온통 소나무
구원을 얻게 되는 과정을 은유
건물 어디서나 풍부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핀란드 제2의 도시 트루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작은 섬 히르반살로에 가면 독특한 모습을 한 예배당을 만날 수 있다. 성 헨리 예배당(St Henry’s Ecumenical Art Chapel)이다. 반드르르 윤이 흐르는 금속성 외관에 뒤집힌 배처럼 뾰족한 아치를 이루고 있는 이 건물은 예배당이라고 짐작할 수 없을 만치 현대적인 모습이다. 

 


문을 열고 좁다란 입구로 들어서면 대번에 눈이 침침해진다. 예배당 안에는 별다른 조명이 없기 때문이다. 이윽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소나무다. 밟을 때 기분 좋은 소리를 내는 마룻바닥에서 천장까지 2m 간격으로 솟아 있는 갈빗대 모양의 프레임, 그리고 이 프레임들을 촘촘히 가로지르고 있는 루버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소나무다. 은은한 자연광을 받은 소나무들은 특유의 따뜻한 빛으로 낯선 이를 반긴다. 외관에서 미처 예상치 못한 따뜻함이다. 

 


침침한 입구와 달리 강단이 있는 맞은편은 환한 빛의 세계다. 빛을 따라 천천히 걷는 동안 흡사 자궁에서 바깥 세계로 나갈 준비를 하는 아기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어둠에서 빛으로 향하는 짧은 여정의 끝에는 쏟아지는 햇빛 아래 작은 십자가가 놓여 있다.

미니멀한 외관, 계산된 내부
입구에서 강단으로 다가갈수록 어둠에서 밝음으로 전환되는 이 아치형 구조는 철저히 건축가의 계산에 의한 것이다. 예배당 건축을 의뢰 받은 건축가 마티 사낙세나호(Matti Sanaksenaho)는 ‘빛을 향해 떠나는 여정’을 콘셉트로 내부를 구상했다. 

 

 

이를 위해 건축가는 정문에서 강단까지 앞뒤로 긴 아치형 구조를 설계하고, 건물 끝 강단 쪽에만 유리로 창을 내 은은한 빛이 건물 끝에서부터 후광처럼 쏟아져 나오게 했다. 그래서 건물에 들어온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어두운 입구에서 빛이 있는 강단 쪽으로 걷게 되는데, 이를 통해 건축가는 무지의 상태에서 신을 통해 구원을 얻게 되는 과정을 은유하고자 했다. 물고기 혹은 배를 연상하게 하는 깊고 좁다란 내부 공간은 드라마틱한 느낌을 증폭시킨다. 바깥에서는 누구나 죄인이지만 이 예배당 안에서는 물고기의 뱃속에 갇혀 사흘을 기도했던 요나가 되거나 방주 안에서 간절히 기도했던 노아가 된다. 


정서적으로 드라마틱하게 계산된 내부와는 달리 외부는 냉정하리만치 미래적인 느낌으로 꾸며졌다. 건축가는 작은 십자가 하나도 허용하지 않고 건물 전면을 구리 소재의 슁글로 매끈하게 덮어버렸다. 지극히 미니멀리즘의 문법을 따른 구성이다.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성 헨리 예배당에 쓰인 목재는 핀란드소나무(Finnish pine)다. 소나무과로서 구주적송, 적목(Redwood)이라고도 불리는 이 목재는 강도가 좋아 건축이나 선박의 뼈대로 쓰인다. 갈비뼈처럼 아치를 이루며 솟아있는 프레임은 핀란드소나무를 집성한 집성목을 썼고, 갈빗대 사이를 가로지르는 루버는 처리를 하지 않은 10cm 너비의 소나무 원목을 썼다. 마루에는 두께 5cm의 도톰한 소나무 판자를 깔고 왁스 처리를 했다. 내부에 소나무를 씀으로써 얻은 효과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심리적인 안정감이다. 햇빛을 손바닥으로 가린 것처럼 약간 붉은 기운이 도는 색상과 침엽수 특유의 진한 향이 거기 둘러싸인 사람으로 하여금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예배당 건축으로는 더없는 장점이다.

 


다른 하나는 음향적인 이점이다. 성 헨리 예배당은 앞뒤로 긴 아치형 구조에 강단이 한쪽 끝에 있어 음향에 있어서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구조다. 하지만 나무로 이루어진 공간은 그 자체로 커다란 악기가 되는 법이다. 소리를 반사하는 목재 덕에 건물 어디서나 풍부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설교와 찬송가는 출구 쪽까지 또렷하게 들린다. 


성 헨리 성당의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예배당임에도 불구하고 십자가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도석 맞은편 벽에 보란 듯이 자리하고 있어야 할 십자가는 강단 왼편에 있는 듯 없는 듯 차분히 내려와 있다. 신보다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던 건축가의 의도다. 

 

성 헨리 예배당은 올해로 지은 지 9년째에 접어들었다. 오래 햇빛을 받은 소나무는 색이 붉어졌고, 구리 지붕은 파랗게 녹이 껴 처음의 생경함을 잃고 주위 풍경에 부드럽게 섞여 들었다. 오늘도 누군가는 이 작은 예배당 안에서 빛을 향해 걷고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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