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 ‘유소헌’ : 청산에 살어리랏다

Architecture / 김은지 기자 / 2018-04-01 15: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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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시 수산면 적곡리. 해발 300M 산골에 95세 노모와 65세의 아들이 산다.
창문을 액자 삼은 풍경은 집 안 어디에서나 그림이 된다. 차도 인터넷도 시간도 더디게 가지만,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 앞에 적요할 틈이 없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건축주 이규승 선생님은 경기권에서 교편을 잡고 평생을 살았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어디에서 살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에 제천 적곡리를 떠올렸다. 여행 중 풍경에 매료되어 몇 번을 들렀던 곳이었다. 하지만 밭으로 쓰이던 땅이었고, 워낙 산골이라 이 땅을 왜 사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매겨진 값은 평당 6만 원. 게다가 마침 바로 옆에 상수도와 전력 공급 시설도 있었다. 그저 풍경이 좋아서 고른 땅이 입지 조건을 갖춘 명당이었던 것이다.


땅을 매입하고 집을 짓겠다는 마음을 굳힌 이후에는 근 2~3년 동안 고택 여행을 다녔다. 책과 인터넷을 통해 건축가들의 집을 보고 그중 마음에 드는 곳은 일부러 찾아가 구경을 했다. 

 

 

처음에는 퇴계 이황의 집 ‘도산서당’을 모티브로 지은 금산주택 같은 집을 꿈꿨지만 촤소의 공간으로 디자인된 집에 살기엔 짐이 너무 많았다. 평생을 모은 책과 노모의 세간, 작품과 재료를 둘 공간이 필요했다. 무리해서 짐을 줄이고 작은 집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집을 짓기로 결정하고 건축가를 찾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많이 알아봤다고 생각했지만 실전은 또 달랐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요구 사항이 명확해졌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단순하게 지어줄 것, 넓은 작업실과 툇마루를 함께 설계해줄 것. 유타건축사사무소 김창균 소장과는 무엇보다 툇마루에 대한 감성과 생각이 통했고, 큰 그림이 그려지고 나니 다른 것들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사심 없는 단순한 집
기교를 뺀 일(一) 자 집은 담백하다. 집안을 오르내리거나 숨어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대신 사는 사람의 동선을 배려한 공간 구획이 눈에 띄었다. 전체적인 구성은 한옥의 구조를 따랐다. 어디서든 드나들 수 있도록 주출입문이없고, 중앙의 툇마루를 오르면 대청마루가 작업실과 안채의 동선을 연결해 준다. 마루를 중심으로 문을 닫으면 방이 나누어지고, 문을 열면 하나로 이어진다. 

 


대청마루의 바닥은 안양 슬기 초등학교 5층 복도에 있던 나무를 그대로 뜯어와 깔았다. 보통 학교의 복도는 20년마다 일괄 교체되어 버려진다. 멀쩡한 나무들이 버려지는 게 아까웠던 이 선생님은 폐기 예정인 나무 바닥재를 구해 작업실과 대청마루에 깐 것이다. 사연을 알고 나니 새 집답지 않게 투박해 보이던마루가 더 정겹게 느껴졌다. 


재활용한 나무는 의외로 어머니에게도 잘 어울리는 자재였다. 하루 종일 잡초를 뜯던 어머니는 습관처럼 풀 뜯던 가위를 마루에 던지듯이 내려둔다. 새 것이었다면 혹여 흠이 날까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조금 상처가 나도, 오히려 상처가 나면 날수록 멋을 가지는 하나뿐인 바닥이 이 집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이외에도 이 선생님 집에는 새로운 것들이 거의 없다. 손때 묻은 의자, 풍금, 뒤주 등 시공사에서 선물로 짜준 몇 개의 가구를 제외하고는 주로 학교에서 버려진 것들과 오래전부터 써 온 것들을 그대로 두고 쓴다.

 

 

어머니와 단둘이
애초에 이 집의 이름은 소소헌(小小軒)이었다. 자연 속에 묻혀 소소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업실이 포함된 55평의 집은 이름처럼 소박하지 않았고, 파주에 갤러리 소소의 소속 작가들을 위해 지어진 동명의 집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집의 이름은 유소헌이 되었다. 명확한 한자를 사용하여 뜻을 정해 두지는 않았기에 소박하게 머무는 집, 웃음이 흐르는 집 등 어떤 자를 붙이느냐에 따라 여러 의미로 해석된다. 

 


집의 반을 차지하는 작업실은 작품과 재료를 보관하고 그림을 그리는 공간이면서 응접실이자 사랑채 역할을 한다. 대청마루 사이의 문을 닫으면 하나의 분리된 공간이 되며, 여기에 작은 부엌과 냉장고, 화장실을 여분으로 마련하여 손님들이 편하게 쉬다 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오래 남지 않은 어머니와의 시간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했다. 차가 없어 멀리 나가지 못하니 누가 찾아오지 않는 이상 거의 모든 시간을 단둘이 보낸다. 엄마가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이 60년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동안 어머니의 손은 작고 주름져버렸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가장 좋은 풍경이 펼쳐지는 곳에 어머니의 방을 만들고 창을 크게 내서 언제든 감상하실 수 있도록 했다. 

 

 

‘청산애 살어리랏다. 멀위(*머루의 옛말)랑 다래랑 먹고 청산애 살어리랏다.’선생님과 뒤뜰을 걷다가 산머루를 따 툭툭 털어먹으면서 이 노래를 떠올렸다. 청산별곡은 젊은이가 속세를 떠나 청산과 바닷가를헤매면서 자신의 비애를 노래한 고려가요다. 

 

산골에 사는 일이 한창 달려야 할 젊은이에게는 비애였을지 모르지만 이 선생님에게는 즐거운 노래로 들린다. 자연 속에서 어머니와 함께 그림 그리며 사는 것. 이보다 좋은 게 또 있을까. 적곡리에서 완성될 그의 신작은 어떨지, 더 단순하고 깊어진 그의 삶이 작품에 묻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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