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은 나무집, 동락재(東樂齋)

건축 / 육상수 기자 / 2019-05-31 14: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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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목수가 지은 집
가구와 절묘한 조화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집


건축가 류춘수의 에세이 글이다. “지난 10월 마지막 주말에는 고향을 다녀왔다. … 놀던 냇가, 오르던 산, 다니던 학교, 살던 집 - 남의 눈에는 평범한 길과 산천이지만 그곳에 사연이 있는 이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황량하고 가난한 들판이라도 조국 산하이기에 그리운 것이며, 시골 어느 변두리의 다방이라도 그곳에 추억이 있으면 그 분위기는 디자인을 초월한다. … 나는, 우리는, 그 모습이 변해가는 우리의 산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미력한 스스로가 부끄럽고 건축이, 도시가, 그 주변 경관이 모두 우리의 손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착각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일모(一毛)를 잡고 구우(九牛)를 논하지 않는가?” 

 

사랑방에서 본 정원

 

남쪽 정자


우리시대의 좋은 집
많은 집이 지어지는 만큼 그 집을 정의하는 개념도 다양하다. 하지만 동의하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해를 한 만큼 감동적이지 않았다. 구우일모를 다시 말하고자 함이다. 건축가 류춘수가 설계한 ‘삼하리 주택’은 가구식 목구조와 한국적 틀을 담고 있으면서 적정한 규모에 형태의 단순함과 섬세함, 그기에 풍요로움을 담고 있는 우리시대 최고의 건축물이다.


 

소나무와 합판으로 마감한 처마


류춘수의 삼하리 주택 영감에 전통가구의 깊은 숨을 더해 지은 집이 있다. 이름하여 ‘동락재(同樂齋)’다. 경기도 원삼면에 지어진 이 주택은 전통가구를 만드는 봉공진 목수의 집이다. 동락재는 경량목구조에 전통한옥의 보가 어우러진 개량한옥이다

주택이나 상업공간에 전통한옥이 되새김질되는 요즘이지만 주인의 용도와 감성이 나름의 이유가 되어 자유로운 변화 속에서 지어지고 있어 한옥의 표준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다보니 종종 일본식 건축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이날 동락재에서도 취재 일행이 대뜸 ‘일본식 건물’같다는 질문을 던졌고 봉 목수는 일본식의 정교함이 ‘좋다’라는 다소 선문답식 대화가 오갔다.


간결하게 처리한 중앙복도.

 

넓지 않은 거실

 

정갈한 부부침대가 놓인 안방

 

손님을 위한 사랑방과 침대

 

거실 옆 독서실

 

필자는 한옥이 불편한 공간임에도 보수하고 신축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한 적이 있다. 결론은 이렇다. 한옥의 작은 혹은 최소화의 공간이 주는 안정성이다. 그러면서도 개방성과 동시에 차단성이다. 작은 공간에 모인 사람들의 대화는 낮은 음성이 교차해 대화의 밀도를 높인다. 다시 말해 상대의 말에 집중하게 되고 은밀성도 높다. 두 평 남짓의 사랑방에서 남정네 다섯이 즐거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정말 좋았던 기억이 있다.

기능면에서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한옥의 핵심은 바로 곡선에 있다. 공간의 구조재들이 둥글거나, 직선이라 해도 대패질에 의한 완만한 곡선이 직선을 이루는 수작업에 있다. 삶이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직격탄으로 대항하는 것이라면 영혼과 육체가 머무는 공간은 여백과 부드러움이 절대로 필요한 것인데, 그렇다면 대안은 한옥이다. 나이 들면 한옥이 다시 보이고 연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마당 뒤의 사잇길


단순, 간결, 비움의 공간

동락재 역시 그런 이유로 한옥의 구조재인 기둥, 도리, 보를 중심으로 북미식 경량목구조의 효율성을 더해지었다. 맞배지붕·처마·한식창호·툇마루 등의 한옥에서의 절대적 기능과 이미지는 고스란히 유지했다. 그런데 지붕의 형태는 기와가 아닌 아스팔트 싱글이고 벽체도 경량구조라서 전통한옥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불러야 하나. 퓨전? 개량? 그 어느 것도 심정에 와 닿지는 않는다. 그저 한옥의 유・불리를 극복한 집으로 불렀다.

 

동락재는 건축주인 봉공진 목수가 직접 지었다. 최고의 구조목을 얻기 위해 전국을 뒤졌고 많은 시간도 투자했다. 건축가 친구와 건축과를 나온 딸의 도움을 받아 도면을 그렸고 모든 재료를 직접 선택했다. 문제는 목수였다. 자신도 목수지만 소목장이라 감히 대목장의 그라운드에는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전통한옥이 아닌 도면에 한옥목수와 경량목구조의 목수를 합치시키는 것만으로도 동락재의 험난한 공사는 예견됐다. 하지만 느림의 지혜와 5년의 시간으로 해결해 나갔다.

집은 26평의 단순한 일자 구조로 북쪽 출입문에서 시작해 남쪽의 정자 조월루(釣月樓)에서 멈춘다. 통풍과 비바람을 막고자 길게 처마를 내렸고, 마주한 외부 마루는 국산 적삼목으로 마감했다. 주 공간은 2층으로, 1층은 작업실 및 창고로 활용하면서 습기를 막아내는 중요한 역할을 맡겼다. 내부는 직선을 따라 방, 거실, 안방 순으로 단순하다. ‘최소의 면적에 최소의 물건’만 있는 집을 전제로 시작한 집짓기여서 봉목수 내외만 산다지만 간결함이 훤히 드러난다.


대문에서 마당으로 이르는 계단 입구


집은 가구가 완성한다

동락재의 간결함은 소목장인 봉 목수가 제작한 전통가구 몇 점이 방점을 찍는다. 방과 복도에는 침대, 옷장, 서랍장 등이 유려한 감각으로 공간의 절제를 이끌었다. 집이라는 공간을 지배한하는 것은 사물이다.. 그렇다면 가구의 위치를 설계하고 그 외 사물의 목적과 용도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 집중하는 건축주를 많이 보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봉 목수의 집짓기는 자신이 만든 가구를 적확한 곳에 배치하는 집짓기의 즐거움이 더해졌을 것이다.



손님방에는 편백나무로 만든 단아한 침대가 서쪽 창을 향해 누워 있다. 봄볕에 고단한 몸을 누이면 피톤치드의 깊은 향이 고스란히 모세혈관으로 스며들 것 같다. 남쪽의 긴 빛은 안방 차지다. 그 방에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 나무 침대가 있다. 두 개를 이은 것인데 부부의 몸과 마음을 잇는 정결한 디자인이다. 그 옆의 벽면에는 한 쌍의 전통 서랍장이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매무새를 선보인다. 하루를 마감하는 부부에게 그 날의 노고를 위로하듯 조용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거실은 좌식 테이블이 정중한 자세를 취해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는 편안함 속에서 약간의 긴장감을 견지하고 있다. 동락재의 전통가구는 방문자에게 다양한 호기심을 유도하면서 우리에게 집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좌탁은 대화자가 서로를 낮추는 형식을 띠는 가구다. 


목수의 집
건축주 봉공진 목수는 전직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재직 시절 소목장 박명배 선생의 문하생이 되어 전통가구 작업에 심취했다. 그에게 소목장은 직업 이상의 가치를 담는 우주였다. 정년퇴임 후 그가 선택한 마지막 업은 필연적으로 목수였다. 그의 지하 작업실에는 시간의 질량과 부피를 껴안은 느티나무가 잘 재단되어 차곡차곡 쌓여있다. 다른 창고에도 가득하다는 봉목수의 귀띔에서 곡간의 쌀이 서민들의 풍요라면 목수에게는 좋은 나무가 가득해야 시름이 없음을 이해했다. 아무리 뛰어난 목수라도 나무 위에서만이 춤을 출 수 있다. 마치 자식 자랑하듯 나무 자랑에 가슴 충만한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집의 출입구 형식이 독특하다.

북쪽 출입구 정경

 

반나절 만남에서 봉목수 가슴 속의 이야기를 모두 담기에는 부족하다. 동락재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새벽 공기를 마셔봐야 집이 주는 삶의 맛을 폐 속 깊이 호흡할 수 있을 터인데 마치 동네 이장이 마실 다니듯 취재해서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다. 정자 난간에서 한참을 머물면서 봄바람과 천둥과 거센 비바람을 대입해 보았다. 외부 마루를 거닐면서 국산 적삼목의 질량도 느껴보았다. 햇볕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밤은 어떻게 찾아오는지를.
 

용목으로 마감 된 재봉틀


일을 마치고 현관을 나서는데 용목(龍木)으로 앞판을 마감한 재봉틀이 눈에 찼다. 공간과 사물이 유연한 관계가 시작에서 끝에까지 이어진 동락재는 구우일모(九牛一毛)에 예외도 있음을 알려준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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