둑일 바이에른 농가의 가구

Life / 배우리 기자 / 2018-03-20 13: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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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룽게(SAMMLUNG G.). 이 곳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오래된 가구가 있다고 해서 들렀다. 바다 건너 멀리에서 온 가구들은 한국의 계절을 온 몸으로 적응을 하느라 열병이 나기도 했지만, 모든 계절을 지내고 이제는 다시 단단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수백 년 전 독일 남부 바이에른 농부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가구가 서울 평창동에 온 지 벌써 1년이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가구가 눈앞에 있으니 도대체 무엇부터 살펴보아야 할지 모른 채로 외국인을 만난 것처럼 약간은 쭈뼛대며 천천히 다가갔다. 이 가구들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넌 이름이 뭐니?”


바이에른의 민속 가구, 바우엔묘벨


 

독일어로 ‘바우엔’은 농부, ‘묘벨’은 가구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독일남부와 오스트리아 농가를 중심으로 제작된 바우엔묘벨은 동네 목수가 만든 서민 생활가구다. 비교적 잘 알려진 비더마이어 양식의 가구와는 달리 굵직하고 큼직한 선에서는 섬세함보다는 투박함과 우직함이 드러난다. 나무도 소위 좋은 나무가 아니라 주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침엽수로 만들어졌다. 몇 백 년을 버티는 동안 닳기도 많이 닳았다. 좀 먹고 잘 안 열리기도 하고 단순한 수납장으로 전락한 것도 사실이지만 대부분 이사도 안 하고 대대로 물려받은 가구기 때문에 아직까지 멀쩡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런 가구가 대를 거쳐 소중히 다뤄주는 손길을 거치고 최고 500년을 버텨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어떻게 500년이나 된 걸 알 수 있는고 하면, 바우엔묘벨에는 제작 연도가 쓰여 있다. 나무색이 그대로 드러난 궤의 몸통에는 1580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뚜껑에는 1730이 새겨져 있다.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을 궤의 뚜껑은 200년이 지나자 망가졌을 것이고 누군가 다시 만든 모양이다. 로마카톨릭 문화가 강했던 독일 남부, 중세로부터 이어져 온 고딕 도상들은 가구에도 들어왔다. 초기에는 목수가 나무색을 그대로 두고 음각이나 기초적인 그림을 그렸지만 가구가 전성기를 맞으며 목수, 대장장이, 화가가 분업을 하고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림은 점점 강렬해지고 철물도 점점 정교한 장식을 갖게 된다.


그림 가구

 

 

 바우엔묘벨의 묘미는 누가 뭐라고 해도 그림이다. 재료는 우유 카제인과 재, 피를 비롯한 자연물, 그리고 유화 물감 등이다. 대부분의 옷장과 궤에는 과일과 꽃의 패턴이 건축의 기둥과 파사드를 연상케 하는 기하학적 무늬와 함께 그려져 있다. 가구에 들어간 독특한 패턴과 몰딩은 그대로 성당의 궁륭이 되고 액자가 된다. 서민들이 비싼 그림을 갖기 어려웠던 시절, 성화나 정물화를 가구에 그려 넣어 미적,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켰을 것이다.

 


바우엔묘벨은 그림이자 삶의 기록물이기도 하다. 각 가구의 제작연도는 단순하게 가구를 제작한 때가 아니라 개인의 중요한 기록인 것이다. 1804년,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 출신 테레지아 클라우펜은 시집을 갈 때 이미 귀족 사이에서는 한물갔을 수도 있는 예쁜 로코코식의 꽃 그림이 그려진 옷장을 혼수로 해갔고, 1810년에 바이에른에 사는 마리아와 조제프는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열정의 에덴동산을 그린 옷장을 장만했다. 가구화가들 중에서도 급진적인 부류는 파격적인 시도를 하기도 했다. 1830년에 만들어진 파란 가구의 그라데이션과 면 분할은 건축의 입체 표현을 넘어 옵티컬 아트나 입체주의를 이름으로 명명되기 전 이미 구현했다. 붓이 아닌 재료로 칠한 물감을 걷어낸 그림도 있다. ‘그림’ 가구답게 바우엔묘벨이 만들어진 시기의 경향은 물론이고, 미술사 전체의 흐름까지 가구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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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들은 흐려져서 덧칠되기도 하고 20세기에 와서 지워지기도 했다. 1900년에 만들어진 하늘색의 가구는 결코 새것으로는 낼 수 없는 그야말로 시간이 만들어낸 빈티지의 쉐비시크를 뽐낸다.


함께 모이는 가구


 

 옷장의 화려함에 홀려 한참을 구경하다가 놓여나게 되면 만나게 되는 것은 조용히 놓여있는 정사각형의 테이블이다. 특유의 비례감 때문에 실물로 보게 되면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다. 바우엔테이블은 식사용보다는 함께 앉아 맥주를 마시며 카드를 치는 용도로 쓰였다고 한다. 상판 아래 달린 커다란 서랍에는 카드를 넣어두기도 하고 커틀러리를 넣어두기도 했다고 한다. 그 중 다른 테이블보다 감촉이 좋은 것이 있었다. 알프스에서 오래도록 자라서 단단하고 결이 독특한 배나무로 상판을 만들고 참나무로 서랍을, 호두나무로 다리를 만든 테이블이다. 소나무나 가문비나무로 만들어진 다른 테이블들에 비해 꽤나 신경 쓴 것이다. 그림은 없지만 고딕의 문양이 등받이에 뚫려 있는 의자에 앉아 카드게임을 했을 켈트족의 후예들을 떠올리면 확실히 바이에른 사람들의 느긋한 여유를 엿볼 수 있다.


함께 모이는 건, 같은 시간에서뿐 아니라 시간을 넘어서도 마찬가지다. 만들어진 지 300년이 훌쩍 넘언 바우엔묘벨들은 여전히 시골집 여기저기에 놓여 쓰이고 있다. 자개장이 싹 사라진 한국에서 바라본 바우엔묘벨이 가진 문화는 단절되지 않은 전통 그 자체다. 기물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세대 간의 소통 단절이라는 현상도 요원해 보인다. 이 가구가 한국에 온 건 자신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함께 하는 법을 알려주려고 온 것은 아닐지.


이야기 수집가


 

 쌈룽게의 주인 남소영 실장은 지난 8년 간 뮌헨에 거주하면서 우연히 갖게 된 300년 된 바우엔묘벨이 주는 묘한 감응을 마음속에 차곡차곡 담아왔다. 처음에는 그저 “예쁜 가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바이에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고 그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옷장이 가진 300년의 세월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어느새 영감을 주는 사물로 변해 있었다. 그녀가 서울로 싸들고 온 보따리에는 말하자면 가구가 아니라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 이야기가 퇴색하지 않도록 그녀는 마른걸레로 닦는 일 외에는 가구를 억지로 꾸미지 않는다. 낡아빠진 것도 그대로 둔다. 그 옛날이야기를 간직하기 위해. 그래서 이 가구들은 첫 인상만 가지고 판단할 것들이 아니다. 오랫동안 두고 보면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쌈룽게가 언제나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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