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건축 ‘The Stable’: 소잃고 외양간 고쳤다

Architecture / 김은지 기자 / 2018-04-12 13:35:28
  • -
  • +
  • 인쇄
망양보뢰(亡羊補牢).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익숙한 속담은 일이 이미 잘못된 뒤에는 손을 써도소용이 없음을 비꼬는 말로 쓰인다. 선조들의 지혜로운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왕 소를 잃었으면 고쳐서 어떻게든 쓰는 게 낫지 않겠나. 벨기에의 젊은 건축가 쥬세페 패리스(Giuseppe Farris)는 버려진 외양간을 고쳐 사무실로 만들었다.

 

ⓒKoen Van Damme

 

농장 한 가운데 낡은 건물. 그저 낡았다고만 하기에는 녹색페인트와 벽에 걸린 사다리, 정갈한 지붕과 얄쌍한 외부 계단, 투박한 콘크리트 창문까지, 무언가 심상치 않다. 분명 깔끔하고 세련된 건물은 아니지만, 재치와 센스가 돋보이는 외관에 내부가 궁금해졌다. 위치도, 분위기도 수상한 이 공간은 뭐하는 곳일까.

 

프리랜서 변호사의 사무실
‘지옥철’에 올라 부랴부랴 출근시간을 맞추고, 눈치 보며 퇴근을 기다리는 일상을 보내다 보면 한 번쯤은 프리랜서를 꿈꾸게 된다. 하지만 모닝 커피를 마시고 여유롭게 노트북을 열며 하루를 시작하는 드라마 속 모습은 말 그대로 드라마일 뿐, 현실은 집이 곧 일터가 되는 고단한 생활의 연속이다. 

 

변호사인 The Stable의 건축주 역시 일의 시작과 끝이 모호한 프리랜서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집에서 가깝고 월세를 내지 않으며, 사무공간과 회의공간, 서재와 휴식공간이 모두 갖춰진 곳. 멀티-오피스랄까. 프리랜서에 대한 로망보다 더 허황되어 보이는 그의 사무실 로망은 외양간이라는 의외의 공간에서 실현되었다.

 

빨간 벽돌에 양철 지붕, 여러 번 보수한 흔적들로 얼룩진 벽이 돋보이는 이 건물은 1900년대 초에 지어져 농장의 곳간이자 외양간으로 쓰이다가 꽤오랜 시간 동안 비워져있었다. 두 개의 층과 몇 개의 작은방으로 구성되어 1층에서는 말과 소를 키우고 2층에 수확한 곡물을 보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설계를 맡은 패리스 건축스튜디오(Studio Farris Architects)는 공간을 복합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건물의 외형은 그대로 보존하고 내부 전체를 제거하기로 했다. 기존의 층과 벽을 모두 허물고 추가로 몇 개의 창을 더 만들어 최대한 자연광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고, 벽돌로만 되어있던 부실한 외벽을보강하기 위해 내부에 새로운 콘크리트 벽을 만들었다. 

 

얇게 바르는 정도가 아니라 새로 건물의 외벽을 만들듯 두껍게 도장해 하나의 ‘콘크리트 박스’를 만들어 넣은 것이다. 이 콘크리트 박스는 안과 밖이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오래된기존 건물의 바닥과 벽에서 뿜어져 나오는유해한 화학성분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사무실의 유일한 가구
내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나무 기둥을 쌓아 만든 기이한 오브제를 마주하게 된다. 이 목재 기둥 더미는 사무실의 유일한 가구이자 공간이다. 

구조를 헐고 벽과 바닥, 천장, 창 등 기본적인 작업들을 마무리하자 본격적인 공간 구획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30평 남짓한 공간에 여러 용도의 공간을 분리하자니 비좁아 보이고, 증축이나 확장 등 기존 건물 외형을 변형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기에, 내부의 전경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공간을 구분할 수 있는 ‘가구’를 직접 디자인하기로 했다.

 


단단하고 밝은 색감과 무난한 결의 오크를 통째로 가져와 에폭시로 나무의 틈을 메우고 단차가 생기도록 교차하여 쌓았다.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듯하지만, 총 50개의 오크 로그와 7개로 이루어진 각각의 층은 자기만의 역할이 있다. 

나무 기둥의 교차 면에는 수납이 가능한 공간이 만들어져 책장이 되고,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과 앉아서 책을 읽는 의자의 기능을 함께 수행한다. 여기에 의자와 철판 몇 개만 더 가져다 놓으니 다른 가구를 둘 필요 없이 모든 게 해결되었다. 

오브제의 맨 위에는 나무 기둥에 철판을 덧대어 책상을 만든 사무공간이, 하부에는 회의와 상담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있으며, 다양한 높이와 크기의 창문으로 인해 층마다 다른 외부 풍경이 펼쳐진다. 게다가 상황에 따라 나무 기둥을 빼거나 추가하여 변화를 줄 수 있도록 설계해 언제든 자유롭게 변형이 가능하다. 


‘신의 한 수’를 두기까지
해외 건축을 취재하며 재미있는 공통점 중 하나는 건축가가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결국은 기가 막힌 ‘신의 한 수’가 나온다는 점이 흥미로웠는데, 패리스 건축 스튜디오의 The Stable 역시 그랬다. 

외양간이든 헛간이든 쓰지 않는 공간을 사무실로 고치는 것 자체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100년 된 외양간에 사무실과 휴게실, 서재와 회의실을 갖춘 공간을 설계해달라는 요구 사항을 모두 수용하는 건 달랐다. 쥬세페 패리스는 이 과정이 하나의 도전이었다고 말한다. 오랜 고민 끝에 젊은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더해져 특별한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 패리스 건축 스튜디오
벨기에에 기반을 둔 건축 스튜디오이다. 패리스 건축 스튜디오의 쥬세페 페리스는 45세의 젊은건축가로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베네치아 건축대학(Istituto Universitario di Architettura di Venezia, IUAV)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에 벨기에로 넘어와 조 크레페인(Jo Crepain)과 협업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2008년에 패리스 건축스튜디오를 열었다.
2014년 10월에 완공한 파크 타워(Park Tower)로 런던 The WAN 21 for 21 Award와 뉴욕 The Architizer A+ Award 후보에 올랐고, 브루제 공공 도서관(City Library in Bruges), 앤트워프 동물원(Antwerp Zoo) 등 벨기에 내의 굵직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저작권자ⓒ 우드플래닛.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